“김선생, 이번에 박사논문 주제로 온라인 게임을 하는 어른의 심리를 탐색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논문 주제를 무엇으로 잡을까 고민하는 박사과정생에게 던져본 이야기이다.
  “아니, 교수님. 온라인 게임요, 그건 아이들이 하는 거잖아요. 게임 하는 아이라면 몰라도 어른들의 심리는 좀 이상해요. 그런데 어른들이 온라인 게임에 빠져 있으면 그건 폐인 아닌가요?”
  “그렇죠. 폐인이지. 무엇에 빠져있다는 측면에서는. 하지만, 그렇게 보면 대한민국 성인들은 거의 돈이나 부동산 폐인이라고 봐야겠네요. 일단, 한번 온라인 게임 폐인의 심리를 탐색하도록 합시다.” 
 
  약간의 유혹과 압력이 가미된 연구 진행이었다. 하지만, 온라인 게임을 아이들의 놀이라고 믿는 그 대학원생의 연구는 별로 진전이 없었다. 놀이의 심리, 재미, 라이프스타일, 자기통제, 정체성, 세대차이 등의 심리학 개념을 가진 말 장난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냥 짜고 치는 고스톱 정도로 끝내야 할 일만 남은 듯 보였다.
 
  마지막 경고처럼 던진 말이 책에 있는 이야기를 하지말고, 직접 온라인 게임 성인 폐인들을 만나보라는 당부였다. 그것이 무엇이든 실재 인간을 만나 체험하는 현상을 구체적으로 탐색할 필요가 있었다. 연구 방법과 방향을 전면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
  
  많은 사람들은 성인들이 온라인 게임을 한다면 이상하게 본다. 고스톱이나 바둑은 당연하지만, 온라인 게임은 이상하다는 것이다. 그냥 심심풀이로 할 수는 있겠지만, ‘와우(WOW)’, ‘리니지’, 또는 ‘마비노기’ 같은 다중역할놀이 게임에 빠진다는 것은 심리적 문제를 연상한다. 마치 현실 세계에서 욕구불만 크거나 현실을 도피하려는 성향이 있는 사람, 또는 심리가 불안하거나 대인관계 문제가 있다고 연상한다. 온라인 게임을 ‘나쁜 습관’ 또는 ‘중독’으로 보는 선입관에 ‘전혀 어른답지 않는 일’이라는 연령규범이 추가된다.
 
  놀이는 아동이 하는 것이고 어른은 일을 해야한다. 이런 생각은 아닐까? 또 어른들의 놀이활동은 따로있다. 무엇일까? ‘주색잡기(酒色雜技)’? 온라인 게임도 그 중의 하나일 지 모른다. 하지만, 온라인 게임세계는 인간이 바로 놀이와 치열한 삶을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을 경험하는 또 다른 생활 전선이다. 현실의 삶과 비슷한 때로는 완전히 다른 이 공간에서 일과 놀이가 결합하거나, 자신이 미루어왔거나 이루지 못한 또 다른 성취를 경험한다. 
 
  논문을 고민하던 그 대학원생은 결국 친구의 도움을 받아 게임을 시작했다. 어느 날 논문 세미나에서 그 친구가 불쑥 던진 한마디가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교수님, 어제는 너무 스트레스가 쌓여 바다를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정말 말을 타고 달려갔지요. 말을 달려가는 저의 모습을 보고, 무엇인가 내가 이루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내 말을 구하는 게 정말 힘들었거든요. 바로 이 연구실에서 바다로 달려 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르겠어요. 가슴이 뻥하고 뚫린 기분이었어요.”
  
  심각한 세미나 분위기가 일순간 바뀌었다. 자신의 경험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열정, 구체적인 현상과 경험을 책과 논문에 있는 단어와 생생하게 연결시키는 순간이었다. 지적 희열을 모두 경험할 수 있었다.
 
  게임을 문화상품이라 하면서도, ‘문화=돈 벌기‘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온라인 세상을 편견과 선입관에서 해방시켜달라고 요청하고 싶다. 여전히, 온라인 게임을 ’여가활동‘, ’즐겜‘, 또는 아이들 놀이로 밖에 보지 못하는 무지의 상태에서 탈피하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온라인 게임의 사회적 유용성과 개인적 체험을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사회적으로 공유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나도 일부 몰지각한 인간들이 던지는 ‘대학원생을 게임중독자로 만드는 악덕교수’라는 돌팔매를 피할 수 있지 않겠나.
  
 <황상민 교수/ 연세대 심리학  swhang@yonsei.ac.kr>

저작권자 © 더게임스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