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쯤 마침 아이들이 보고 싶다는 영화가 있어 함께 본 적이 있다. ‘웰레스 & 그로밋’이라는 영화였을 거다. 사실 이 영화가 중요한 것은 아니고, 중요한 이야기는 이 영화를 보고 난 다음 주차장에서 차를 기다리며 일어난 일이다.
 
 주차장에서 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아이가 영화의 예고편에 나왔던 펭귄 인형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꼬마야~ 펭귄 이쁘네~” 하니 그 아이가 다짜고짜 “이거 펭귄 아니에요~ 제비에요!”라는 것이 아닌가? 내가 보기엔 부리도 그렇고 그 애니메이션의 분위기도 그렇고 펭귄이 분명한데 이 아이는 제비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형의 구석구석을 다시 꼼꼼히 살펴보니 처음부터 제비라고 생각했으면 충분히 제비라고 믿을만한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가지 이야기 더. 1970년대에 데이비드 로젠한이라는 심리학자가 정신병 진단의 타당성에 대한 실험을 하였다. 8명의 멀쩡한 사람이 정신병자 행세를 하고 정신병원으로 들어가서 진단을 받았는데, 8명 모두 우울증, 정신분열증 등 정신병 진단을 받은 것이다. 이 실험에 당황한 정신의학계에서는 로젠한에게 도전장을 냈다. 로젠한이 100명의 실험자를 보내주면 정신병 여부를 정확히 가려내 주겠다는 것이다.
 
 3개월 후 정신의학계에서는 로젠한이 자신들의 병원에 보낸 100명의 실험자 중 91명의 정상인을 가려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발표 후 로젠한은 실제로 이 병원에 단 한명의 실험자도 보내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신의학계는 또 한번 로젠한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로젠한의 실험은 편견을 가지고 사물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며, 오류투성이의 결과를 가져다 주는지를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다.
 
 우리 게임업계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엘리베이터 관리 소프트웨어, 공장 자동화 소프트웨어 등과 같이 목적이 분명한 것들은 그 목적에 따라 잘 만들면 된다. 하지만 게임이라는 것은 그렇지 않다. ‘그래픽이 뛰어나야 한다’, ‘퀘스트가 많아야 한다’, ‘스토리텔링 방식이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게임의 목적인가?
 
 게임의 목적은 단 한가지 ‘재미있어야 한다’이다. 이 얼마나 추상적인 목적인가? 이렇다 보니 많은 게임 개발자들이 밤새워 고민하고, 엄청난 시간과 공을 들여서 만든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한다. 게임과 같이 그 어떤 누구도 분명하게 정의하지 못하는 주관적인 목적을 달성해야 할 때는 개발자의 편견이라는 것이 엄청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뜬 게임들을 한번 살펴보자. ‘카트라이더’, ‘프리스타일’, ‘서든어택’ 등. 이 게임들은 개발 당시에는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당시 업계에서 유행하던 편견, 즉 ‘게임이라면 당연히 00 해야 한다’라는 기준에 전혀 부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게임들은 시장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게임 이용자들은 항상 새로운 것을 원한다. 그렇다면 오히려 게임 산업의 종사자들은 ‘상식화된 편견’을 역으로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지금 ‘00 해야한다’라는 생각을 바꾸면, 좀 더 게임에 대한 아이디어의 범위가 넓어질 것이고, 새로움이라는 과제를 훨씬 더 편하게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게임이라는 것이 어차피 우리의 상상력을 기술로써 표현하는 것이라면, 편견을 가지고 한계를 규정짓고, 불가능을 설파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이번 지스타 전시회를 가본 사람들은 ‘이 게임 좀 전에 본 게임인데’라는 생각을 한번쯤은 했을 것이다. 이런 현상이 우리가 ‘게임은 00 해야한다’라는 편견을 가져서가 아닐까? 한국이 세계 최고의 게임 강국이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편견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할 것 같다.
 
 <사진설명: 나우콤 대표이사 문용식 greenmun@nowc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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