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제목의 이 영화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에서 두 남자는, 아버지와 아들 즉 부자지간이다.
 
 발칙하게도 부자는 한 여자를 대상으로 작업을 건다. 아버지 동철동(백윤식 분)은 부인이 죽고 몇년째 홀아비 생활을 하고 있다.
 
 아들 동현(봉태규 분)은 고등학생이지만 성적으로 무척 조숙하고 알 것은 다 안다. 그리스 비극에 뿌리르 두고 있는 고전 ‘페드라’에서처럼 도덕적 문제가 생길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비극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영화의 초점은 철저하게 집안 내부로 국한돼 있다. 고등학생인 동현의 학교생활이나 친구들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것이 그 좋은 예다. 부자는 2층 건물에 살고 있다.
 
 영화의 도입부에서는 1층 빈 공간을 전세 놓는 장면이 등장한다. 방을 얻는 사람은 이혼하고 혼자 사는 오미미(이혜영 분)이다. 그녀는 그곳에 ‘민트’라는 카페를 연다. 말이 카페지 술 파는 곳이다. 동철동은 지인들을 동원해서 영업을 도와주고 미미의 환심을 산다. 그러나 원래 동철동의 직업은 따로 있다.
 
 둥근 쵸코볼을 가위로 반을 잘라 쵸코가 안들어 있는 제품을 체크하거나, 50미터라고 되어 있는 화장지의 실제 길이를 재서 평균을 내 보니까 8미터가 부족하다고 해당 회사에 전화를 걸어 압력을 넣는 것이다. 물론 입막음을 위해서 회사는 촌지를 준비해서 동철동을 찾아 온다.
 
  동칠동과 동현은 쭉쭉빵빵 미미를 보고 뿅 가서 작업을 건다. 그것이 영화의 전부다. 하이 코미디는 아니다.
 
 슬랩스틱류의 단순 코미디물이다. 다만 관객의 허를 찌르는 필살기를 갖고 있는 백윤식의 능청스러움과, 일탈 청소년의 삶을 그린 ‘눈물’로 데뷔한 후 비슷한 캐릭터인 류승범에 밀려 고전하고 있는 봉태규의 역전 한 방 노림수가 영화를 볼만하게 만든다. 그러나 류승범을 뛰어 넘기에는 카리스마가 부족하다. 연기의 폭도 좁다. 봉태규의 생존방식은 다른 방법으로 탐구되어야 한다.
 
 한 여자를 두고 벌이는 아버지와 아들의 날카로운 신경전에는 의미있는 충돌이 있을 법 한데 모두 거세되어 있다. 동철동과 미미의 데이트를 방해하기 위해서 잠든 동철동의 잠옷을 잠자리의 요와 꿰메어 버린다거나, 동현이 미미에게 접근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수면제를 탄 삼겹살을 먹인 뒤 꽁꽁 묶어서 소변까지 호스로 받아내게 하는 모습은 일반적인 부자지간의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 사건을 지나치게 과장되게 희화해서 웃음을 주는 데 그친다.
 
 전은강의 소설을 각색해서 만든 대본은 너무 말초적으로 남자들의 애정전선에만 시선이 제한되어 있다. 부자가 맞부딪치는 데는 훨씬 더 많은 이유가 있고, 훨씬 더 많은 변수를 가정할 수 있는 데, 영화는 지나치게 단세포적으로 흐르고 있다. 미미는 이 영화의 그리고 두 남자의 액세서리에 불과한 존재인가? 이혼 부부들의 모습도 깊이 있게 묘사될 수 있는 데 지나치게 상투적으로 그려져 있다.
 
 심리학적 분석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이 영화의 제목은 제목에서 그친다. 정말 애정결핍증이 두 남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우리는 전혀 알 수가 없다. 탐구되지도 않는다. 자극적이며 유혹적 제목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끄는 데만 일조할 뿐이다. 킬링타임용이라면 모를까 권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동철동의 진짜 직업인 불량식품을 고발하겠다고 해당 회사에 엄포를 놓아서 촌지를 받아내는 모습 등이 더 적극적으로 보여졌다면, 그것이 영화의 서사구조에 어떤 식으로든지 작용했다면 훨씬 재미있는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아무리 개인기가 뛰어난들, 애초에 대본 자체의 방향이 잘못되어 있는 것을 어떡하겠는가. 더구나 나이 든 이혜영의 주름진 얼굴이 스크린의 커다란 화면에 클로즈업되면 그때부터는 슬슬 괴로워지기 시작한다. 세상 시끄럽게 하고 있는 그녀의 사적인 모습과 영화 속의 이혼녀의 모습이 뒤엉키면서 불쾌감은 증대된다.
 
 영화는 영화로 보면 된다. 허구는 허구고 현실은 현실이다. 그러나 허구를 통해 현실을 되비쳐보는 영화의 거울기능은 애정결핍증을 가진 두 남자에게 전혀 유용하지 않다. 그게 문제다.
저작권자 © 더게임스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