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시리즈 망가진 모습 제대로 보여준 작품
 
이 가문은 애초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가문이다. 그러나 이 가문을 키워준 것은 우리 관객이다. 한국영화의 평균수준을 깎아먹는 이 영화에 우리 관객은 왜 그렇게 열광했을까?

추석 시즌마다 찾아와 우리들의 논리적 사고와 이성을 무장해제시키며 우리를 무뇌아로 만드는 이런 영화에 관객들이 높은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숨막히는 일상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넉넉한 웃음을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보다는 관객들의 그런 심리를 재빠르게 간파하여 상품으로 만든 제작자들의 기획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가문의 영광’ 시리즈 3편 ‘가문의 부활’은 코미디 시리즈물의 말로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시리즈를 가능케 했던 반짝 빛나는 작은 아이디어와, 자빠지고 넘어지는 슬랩스틱류의 코미디는 이제 거의 유효기간이 끝난 것처럼 보인다.

소가 뒷걸음 치다가 엉겹결에 쥐를 잡듯이 뜻하지 않은 성공을 거두었다고 폄하할 것까지는 없지만, 그 이면에는 보수와 진보의 끝없는 대립, 서로의 상처까지 인정하는 화해와 아름다운 타협이 존재하지 않는 짜증 나는 사회, 그것을 잊어버리고 싶은 관객들의 무의식적 욕망이 존재했었다.

그러나 이 시리즈물은, 이제 아이디어는 고갈되고 더 이상 새로운 상황을 끌고 갈 능력도 되지 않자 배우들의 개인기로 시간을 때우려고 한다.

조폭 가문을 해체하고 김치 사업에 뛰어든 백호파? 왜 조폭 가문을 해체했을까? 착하게 살겠다고? 역시 대중들이 요구하는 도덕적 시선을 의식한 결과다. 흥행이 되고 주목을 받으면 갑자기 점잖아지고 목에 힘이 들어가며 폼을 잡으려고 한다. 폼잡을 것 없다. 애초부터 망가져서 태어난 영화니까.

여전히 배우를 망가뜨려서 관객들의 원초적 본능에 호소하는 접근방식은 ‘가문의 부활’에서도 유용하게 활용된다. 카리스마의 지존 황장군에게 개그를 선보이며 권위의 종말을 보여주었던 시리즈 두 번째 작품 ‘가문의 위기’의 연장선상에서, 신현준은 더 추락할 것도 없는 바닥까지 막나가고 있다.

국민 여동생 문근영이 ‘어린 신부’에서 노래방신으로 관객들의 귀와 눈을 사로잡은 이후, 상업 영화에는 팬 서비스 차원에서 톱 스타들의 망가지는 노래방신이 꼭 삽입된다. 이 영화에도 필수 불량식품처럼 노래방신은 삽입되어 있다.

원래 가수였던 탁재훈의 조용필 모창은 그렇다 치고, 영화 속 부부인 김원희와 신현준의 사정없이 망가지는 노래방신은 아무 개연성 없이 오직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만 삽입되어 있다.

어머니 김수미를 정점으로 세 아들과 두 며느리가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구도는, 이형적으로는 남녀의 비율을 3 대 3으로 팽팽하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힘의 주축이 여성에게 넘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머니가 지배하는 모계사회에 두 며느리 김원희와 신이의 힘은, 상대적으로 신현준 탁재훈으로 이어지는 세 아들에 비해서 월등하게 강하다.

남존여비의 유교적 가부장제 질서는 이제 무너졌다. 이 작품에서는 가문을 일으켰던 사람도 어머니, 그것을 부활시키는 주역도 어머니와 며느리들이다. 오히려 둘째 아들은 미인계에 빠져 가문이 몰락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다.

‘가문의 부활’은 부계 위주의 유교적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을 월등히 강화시켜, 모계지배 사회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남녀공존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남성적 권위가 추락하고 있는 우리의 사회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조폭마누라’나 ‘엽기적인 그녀’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현재의 한국사회는 마초적 남성성을 조롱하고 희화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머물러 있다’고 표현한 것은, 권위의 종말을 가져온 도전은 성공했지만 그것이 그 이상의 단계로 진화되지 못하고 답보상태에 있다는 뜻이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코스튬의 남발 때문이다.

‘가문의 부활’은 특히 탁재훈의 개인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백호파 가문은 주식회사 엄니손을 만들어서 홈쇼핑까지 나와 대박을 터트릴 정도로 김치사업으로 번창한다. 하지만 감옥에서 출소한 조직의 라이벌 검사(공형진 분)의 방해공작으로 순식간에 몰락한다. 그들이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는 굳이 줄거리를 설명하지 않아도 ‘안봐도 비디오’다.

유일한 미덕이 있다면 염치나 체면, 이성적 판단을 내려 놓고 그냥 웃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도 박장대소가 아니라 코가 간질간질거리는 재채기 수준에 불과하지만 이것을 한국적 시리즈물의 성공이라고 자만해서는 안된다. 관객들이 이 시리즈에서 원하는 것은 단순한 웃음만은 아니다. 조폭 집단의 희화화를 통한 권위주의의 종말, 삶을 탄력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넉넉한 지혜가 담겨 있을 때 비로소 이 시리즈물은 관객들과 팔 걷어붙이고 씨름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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