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안 바닷가서 삼각관계에 빠진 남녀
 
홍상수의 ‘해변의 여인’은 홍상수 영화 중에서 가장 대중성이 높은 작품이다. 김기덕과 홍상수 영화에 나타나는 반복의 차이를 비교하면 매우 재미 있다. 김기덕의 반복이 행위의 반복에 집중하는 외형적 반복이라면, 홍상수의 반복은 이미지의 반복, 그러니까 내적인 반복에 더 가깝다. 김기덕은 반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향이 강하다면 홍상수의 반복은 오히려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해변의 여인’은 새로운 시나리오를 쓰려는 영화감독 중래(김승우 분)가, 후배 미술감독 창욱(김태우 분)에게 서해안에 다녀오자고 윽박지르면서 떠난 여행으로 시작한다. 유부남인 창욱은 여자 친구와 약속이 있다면서 가수인 문숙(고현정 분)을 동행시킨다. 두 남자, 한 여자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내러티브가 진행될수록 한 남자 두 여자로 바뀐다.

일상적 삶의 공간에서 벗어나는 것은 홍상수 영화의 출발점이다. 이작품에서는 서해안 해변 신두리가 그들의 목적지다. 아직 피서객으로 붐비는 여름철이 되지 않아서 신두리 해변은 한산하다. 콘도나 펜션은 텅텅 비어 있다. 홍상수 영화의 정석대로 세 남녀는 술을 마신다.

그리고 중래와 문숙은 눈이 맞는다. 그들은 창욱의 눈을 피해 밤바다로 산책나왔다가 비어있는 펜션의 방으로 들어가 몰래 섹스를 한다. 여관과 술집이 나오지 않는 홍상수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술집에서 여관으로 이어지는 홍상수 영화의 행로를 따라가다 보면, 인간의 겉치레와 위선을 발가벗기는 통과제의에 우리는 동참하게 된다.

섹스를 하기 전까지는 저돌적인 추진력으로 문숙을 유혹하던 중래는,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차갑게 돌변한다. 골치가 아프면 도망가는 성격인 그는 아침이 되자 어제밤의 행동을 후회까지는 안하지만 문숙에게, 그리고 자신의 충동적 행동에 발목 잡히기 싫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그것을 재빠르게 간파한 문숙은 먼저 그에게서 빠져나간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가지만 장면은 다시 신두리 해변.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다시 이곳에 내려온 중래는 역시 여자 친구와 함께 이곳으로 여행온 유부녀 선희를 만난다. 커피체인점 부지점장으로 일하고 있는 그녀는 남편과 이혼할 것인가 갈등하고 있다. 선희에게 접근한 중래는 그녀를 유혹해서 자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때 찾아온 문숙은 감정을 폭발시키며 중래를 괴롭힌다.

홍상수 영화의 반복은 대구라고 해야 할 구조적 특징을 갖고 있다. 홍상수는 항상 삼각형의 구도를 사용한다. 한 여자에 두 남자라든가, 한 남자에 두 여자 식의 삼각형 도식은 그에게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남녀관계의 핵심적 구도다. ‘해변의 여인’에서도 일상의 사소함으로 삶의 거대함을 드러내려는 홍상수적 어법은 여전히 지속된다.

그의 다른 어떤 영화보다도 인물들은 생생하게 살아 있다. 물론 그것은 김승우 고현정 김태우 송선미라는 배우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런 배우들이 최상의 연기를 할 수 있도록 이끈 감독의 힘이다. 수많은 영화를 찍었지만 내세울만한 작품이 없던 김승우는 위기에 처한 감독의 딜레마를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고, 고현정은 ‘지랄하네’ ‘똥차’ 등 그녀의 기존 이미지를 깨는 파격적 대사, 그리고 복잡한 감정선을 대담하고 단순하게 드러내는 인상 깊은 행동으로 문숙을 뛰어나게 형상화하고 있다.
 
영화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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