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밀한 구성·절제된 대사 돋보이는 수작
 
‘천하장사 마돈나’는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하려는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 오동구(류덕환 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아버지(김윤석 분)는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지만 지금은 포크레인 기사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일하는 날보다 술주정뱅이로 공치는 날이 더 많고, 아버지의 폭행을 피해서 집을 나간 어머니(이상아 분)는 놀이공원에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성정체성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뚱보 소년 오동구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남자로 태어났지만 여자가 되고 싶은 그가 갈등하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여자가 되기 위해 수술비를 모은다.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기 위해 인천 부두에서 무거운 짐을 지게에 지고 나른다.

학교 울타리를 비집고 들어가는 동구가 거꾸로 엎어 놓은 빈 화분을 들쳐서 화장지를 꺼내는 동작과, 교실에서 동구의 단짝 종만이가 동구의 빈 책상 위에 책을 펼치고 연필까지 완벽하게 셋팅하는 모습의 연결동작은, ‘천하장사 마돈나’가 뚱보 소년의 여성되기라는 낯설고 관념적인 소재를 어떻게 살아 꿈틀거리는 영화로 탈바꿈 시켰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여자가 되고 싶은 뚱보 소년 동구를 중심으로 그의 학교생활과 가정생활 양대 축을 구성하는 과정에서도 감독의 시선은 세밀하게 살아 움직인다. 학교에서 동구는 왕따다.

다른 학생들은 여자아이같은 동구의 등에 낙서를 써붙이고 놀리지만 단짝 종만은 “강호동처럼 열심히 씨름을 해서 유명한 개그맨이 되겠다”고 말하다가 다음 날은 힙합 가수가 되기 위해 열심히 춤을 추기도 한다. 동구가 짝사랑하는 일어 선생님(초난강 분)과의 관계도 넘치지 않게 묘사되어 있다.

씨름대회 우승자에게는 장학금 500만원이 주어진다는 것을 알고 오동구는 씨름부에 들어간다. 자신을 여자로 만들 수 있는 수술비가 그만큼 모자라기 때문이다. 누가 500만원 준다면 그 사람의 오줌에 똥을 말아 먹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동구의 수술에 대한 집념이 그를 씨름부원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씨름부 내의 구성인원들도 맛갈나게 표현되어 있다. 3학년 주장(이 언 분)은 동구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다른 부원들인 덩치 트리오는, 덩치는 천하장사급이지만 실력은 안따라주는 선수같지 않은 선수들이다. 그리고 씨름 감독(백윤식 분)은 도대체 정체 불명이다. 틈만 나면 화장실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그는 그러나 선수들의 움직임을 꿰뚫고 있다.

또 동구의 가정생활은 문제아 아버지, 이혼하고 집을 나간 어머니, 그리고 동생으로 설정돼 있지만 핵심은 아버지와의 갈등이다. 여고시절 아버지를 만나 동구를 임신을 하게 되면서 학교를 그만 둔 어머니는 이혼 후 놀이공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아버지는 알콜중독자로 늘 소주병을 끼고 살며 툭 하면 아이들을 폭행한다. ‘가드 올리고 원 투’하면서 아이들에게 주먹을 날리는 아버지는 동구가 여자가 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형제 사이도 아니고 연인 사이도 아니라는 이해영, 이해준 감독은 김지운 감독의 ‘커밍아웃’ 각본을 쓰며 함께 공동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 ‘품행제로’의 시나리오를 썼고 ‘신라의 달밤’ 원안을 내놓았으며 ‘아라한 장풍 대작전’을 각색했다. 공동 작가 출신의 공동 감독 데뷔 자체도 한국 영화에서 처음 있는 일이지만, 그들의 영화는 캐릭터를 살아 숨쉬게 만드는 세밀한 구성과 넘치지 않고 모자라지 않는 이야기의 힘으로 절제된 감성적 미학과 그것이 형성하는 위대한 폭발을 보여준다.

균형을 조금만 잃어도 삼류 코미디로 전락할 수 있는 소재의 아슬아슬함을 이겨낸 것은, 결국 뛰어난 각본과 감독의 연출력 때문이다.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도 나무랄 데 없다. 실제보다 25kg을 살을 찌워서 동구역을 소화한 류덕환은 진정성으로 무장해서 관객들이 거부감을 가질 수 있는 오동구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아버지 역의 김윤석과 어머니 역의 이상아도, 자칫 오동구의 학교생활과 씨름부 이야기로 흘러갈 것 같은 이야기를 가정생활에 무게를 줄 수 있는 인상 깊은 연기로 극복해냈다.

의심할 바 없이, ‘천하장사 마돈나’는 올해 개봉된 가장 뛰어난 한국영화 중의 하나이다. 올해의 화제작은 봉준호 감독의 ‘괴물’도, 김기덕 감독의 ‘시간’도 아니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김기덕이나 홍상수의 어느 단점들을 뛰어 넘으며 또 한사람의 완성도 높은 작가가 출현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는 뛰어난 작품이다.
 
영화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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