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표현으로 가려진 치밀한 정치적 계산
 
 장이모우 감독의 신작 ‘천리주단기’는 그의 다른 영화들, 가령 인간의 성적 본능과 욕망의 세계를 청홍의 대비되는 색채 감각을 통해 표현한 초기 걸작 ‘붉은 수수밭’이나 ‘국두’ ‘홍등’과도 다르고, 사회주의 세계 속의 삶의 진실함을 그린 신리얼리즘 계열의 ‘귀주 이야기’ ‘인생’ ‘책상 서랍 속의 동화’와도 다르다. 그렇다고 중국 정부와의 밀월 관계 속에서, 현 체제의 통치이념을 과거 역사를 통해 형상화 한 ‘영웅’ ‘연인’의 화려한 색채감과 비장미 넘치는 영화들과도 닮지 않았다.

‘삼국지연의’ 속에 등장하는 관운장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경극 ‘천리주단기’는, 이 영화의 제목이지만 그것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 ‘천리주단기’라는 경극이 주 테마가 아니라 그 경극을 둘러싼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장이모우 감독은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작품의 20% 분량인 일본쪽 촬영은 ‘철도원’의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이 찍었다.

영화는 일본인 다카타 부자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일본 동경대 교수이며 경극 연구가인 다카다 켄이치 교수는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아 병원에 입원한다. 그러나 그는 소식을 듣고 어촌에서 달려온 아버지 다카다 고우이치(다카쿠라 켄 분)의 병문안을 받지 않겠다고 거절한다. 오래 전 자식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떠난 아버지를, 죽음 직전의 아들은 용서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이 약속한 ‘천리주단기’ 촬영을 위해 대신 중국 운난성으로 간다. 그가 중국에서 만난 경극 배우 리쟈밍은, 자신에게 사생아가 있다고 놀리는 사람을 칼로 찔러 3년형을 선고 받고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천리주단기’는 장이모우 감독이 자신의 어린시절 우상인 일본 배우 다카쿠라 켄을 위해 구상한 작품이다. 국내에서도 ‘철도원’ 등으로 알려진 일본의 국민배우 다카쿠라 켄은 가장 일본적 정신을 잘 표현한 배우다. 물론 나의 이 말에는 긍정적 의미와 부정적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다. 나는 ‘철도원’에서 연기한 일본 군국주의의 환영이 어른거리는 다카쿠라 켄의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2차대전을 겪으며 상처난 일본인들의 집단무의식을 다카쿠라 켄만큼 잘 표현하는 배우도 없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그를 국민배우로 추앙하는 것이다.

하지만 ‘영웅’이나 ‘연인’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처럼, 장이모우의 정신세계 속에서 다카쿠라 켄과 만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유교적 가부장제 질서 아래서 소집단인 가족이든, 사회조직이든, 가장 크게는 한 국가든, 그것을 책임지고 앞서 나가는 고독한 영웅의 모습에 대한 갈망을 중국의 감독과 일본의 국민배우인 두 사람은 공유하고 있다.
이영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부자 관계를 중심축으로 한 수직적 질서 속에서(아들의 부인이자 아버지의 며느리는 철저하게 교량 역할만 하고 있다)의 용서와 화해다. 일본인의 시선으로 바라 본 중국의 현재가 묘사되고 있고, 일본인 다카다 부자와 중국인 리자밍 부자의 사연이 이중으로 겹쳐지는 서사구조를 갖고 있다.

장이모우 감독은 상실된 부자 관계를 영화적으로 복원하면서, 상실된 동아시아 질서의 회복을 정치적으로 꿈꾸고 있다. 물론 구질서의 회복의 중심에는 중화사상이 자리잡고 있다. 장이모우는 뛰어난 예술적 능력을 바탕으로 매우 치밀한 정치적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coming soon - 카
자동차들의 화려한 나들이
 
장난감과 곤충, 괴물, 물고기, 슈퍼 히어로 등을 통해 관객들을 마법과 환상의 세계로 이끌었던 픽사애니메이션스튜디오 (대표작: ‘인크레더블’ ‘니모를 찾아서’ ‘몬스터 주식회사’)에서 이번엔 자동차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코믹한 모험담을 내놓았다.

디즈니에서 배급하는 신작 ‘카’는 유머와 액션, 감동 그리고 새로운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어우러진 스피디하고 배기량 높은 애니메이션으로 모든 연령층의 관객들이 좋아할만한 작품이다. 특히 이 영화는 픽사의 20주년에 맞춰 개봉된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갖고있는 동시에 최근 디즈니 사에 합병된 후 개봉되는 영화라는 점도 특기할 만 하다.

화려한 성공과 갈채를 꿈꾸는 주인공 라이트닝 맥퀸(목소리 오웬 윌슨)은 경주에서 성공하는 것만이 인생의 모든 것이라 생각하는 타오르는 청춘. 하지만 피스톤 컵 챔피온십에 참가하기 위해 달리던 중 경쟁과 함성과는 동떨어진 ‘래디에이터 스프링스’란 한적한 시골로 들어서게 된다.

이제는 지도에 조차 표시되지 않는 한적한 66번 국도, 조용하지만 다양한 캐릭터들이 큰 열정을 간직하고 있는 이곳에서 맥퀸은 미스터리한 과거를 지닌 닥 허드슨(목소리 폴 뉴먼)과 샐리(목소리 보니 헌트) 그리고 메이터(목소리 래리 더 케이블 가이)를 만나게 된다. 그들을 통해 인생이란 목적지가 아닌, 여행하는 과정 그 자체이며 명성과 스폰서, 트로피 뒤에 가려진 소중한 가치를 깨닫게 된다.
 
영화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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