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감 안겨주지 못한 '미완의 作'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언제나 허구적 구조물의 모델이 된 현실 속의 실제와 긴장관계를 갖는다. 허구적 실제와 실제적 허구가 대립각을 세울 때도 있다.

철저하게 실제에서 소재만 가져올 뿐 그것을 재해석해서 전혀 다른 구조로 탈바꿈시킬 경우에도 현실과 하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전선이 형성된다. 더구나 ‘맨발의 기봉이’처럼 명백하게 영화적 대상이 된 현실적 인간들의 진솔한 삶을 전달하려는 영화들은, 최대한 실제에 밀착해야 된다는 부담감을 갖는다.

‘말아톤’의 배형진군 이야기나 ‘맨발의 기봉이’의 엄기봉씨의 삶은 각각 영화적 선택에 의해 재구성 된 것만 관객들에게 보여졌다. 영화 속에 보여진 삶만이 그들 전부의 모습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관객들은 그게 전부라고 믿어버린다. 이것이 무서운 것이다.

감독은 실제의 많은 부분에서 어느 부분을 취사 선택해 그것을 다듬어 극적으로 재구성했지만 관객들은 눈에 보이는 그것만이 그들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허구와 현실의 아득한 절벽이 존재한다. 그 위로 아슬아슬하게 외나무 다리가 놓여져 있다.
그 다리가 영화가 완성될 때까지 원래의 형상대로 존재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현실에서의 그들의 삶이 주는 감동을 영화를 통해 재구성하려고 했다면 왜 굳이 극영화인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다큐멘터리는 있는 그대로의 삶을 진솔하게 드러낼 수 있다. 그러나 배우들이 실제 모델들의 삶을 연기하면 허점이 생기기 마련이다. 극적 구성 또한 인위적인 치장으로 본질을 왜곡시킬 수 있다. 그러나 허구적으로 재구성 된 삶은, 현실에서 볼 수 없는 부분을 더욱 확대해서 또렷하게 볼 수 있게 해주는 마력을 가졌다. 이것이 극영화의 힘이다.

허구적 내러티브로 재구성된 실제 인물들의 삶은 현실과 비슷하기도 하고 많은 거리가 있기도 하다. 어디까지가 실제 모습 그대로인가 하는 논란은 불필요하다. 소모적인 것이다. 우리는 영화를 영화로 보면 된다. 이 작품은 실제 인물 기봉씨와는 다른 또 하나의 기봉씨이다. 북영 영화학교를 졸업한 권수경 감독은 일상적 삶의 리얼리티를 최대한 확보 삶의진정성을 담기 위해 배우들의 기존 이미지를 벗어난 파격적 탈바꿈을 시도했다.

틀니를 끼우고 굽은 손으로 불편한 걸음걸이를 하는 신현준은 어느 순간 기봉씨가 되어 버린다. ‘은행나무 침대’의 황장군 이후 신현준 배우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변신이다. 김수미는 일용 엄니와는 조금 다른 시골 어머니의 순박하고 따뜻한 정서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강렬한 애드립과 솟구치는 기를 절제의 미학 속에 담아내는 내공 깊은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러나 진정성을 갖고 우리들 곁으로 다가오지만, 또한 지나치게 손쉬운 화해의 메시지를 전해주기도 한다. 이장과 아들의 갈등이 봉합되는 수순은 너무나 익숙하게 헐리우드 가족영화의 틀에서 우리가 확인한 것들이다. 기봉씨의 하프 마라톤 이야기도 지친 우리의 마음에 카타르시스를 일으키기에는 드라마틱한 흡입력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성찰의 순간을 제공하는 거리두기의 방식으로 찍혀져 있지도 않다.

삶의 뒷편에 숨겨진 진실을, 화려하지는 않지만 진정성을 담아 빛나는 영상언어로 드러낼 줄 아는 재능있는 신인 감독 권수경이라면, 더 처절하게 소재와 싸웠어야 했다.

소재가 주는 광휘로운 핵우산 아래서 어떻게 자신의 영화적 컬러를 드러낼 수 있을까 고민했어야 했다. 영화는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영화를 만들기 원했다면, 소재를 자신의 내면 프리즘으로 굴절시켜 자신만의 독특한 영상언어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그 부분이 부족했다.
 
영화 평론가 - 인하대 겸임교수(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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