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의 고향 '소림사' 실체없는 '무당파'
 
무림방파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무래도 소림사와 무당파일 것이다. 중국식 발음으로 하면 ‘샤오린쓰’와 ‘우탕파이’가 된다. 소림사의 사는 절 사(寺), 즉 템플(temple)이다. 그래서 소림사를 외국에서는 샤오린 템플이라고 부른다.

무당파의 파는 영어로 보통 클랜(clan)이라 번역된다. 무당파는 우탕 클랜인 셈이다. 미국의 유명 힙합 그룹이고 2003년에 내한 공연도 한 우탱 클랜(Wu-Tang Clan)이라고 있다. 바로 무협에 등장하는 무당파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한다.
 
# 인도인 발타선사가 창건
 
소림사는 달마대사가 창건한 것처럼 알려졌지만 사실은 그보다 30년 전에 인도에서 온 발타선사라는 사람이 창건한 절이다. 달마대사는 나중에 와서 달마동으로 알려진 동굴에서 9년 면벽을 한 후 깨달음을 얻어 선종 불교를 창시했다.

그러니 원래는 소림사가 무술로 유명해질 것이 아니라 선종불교의 정통으로 유명해졌어야 옳았겠지만 선종의 5대 조사가 6대 조사 혜능에게 의발을 전수하면서 의발을 노리던 다른 제자들에게 맞아 죽을까봐 몰래 도망을 보냄으로써 선종의 정통은 남쪽으로 넘어가 버렸다.

소림사 무술의 전통도 달마대사로부터 시작된다고 전설은 말하고 있다. 늘 참선과 채식으로 약해진 승려들의 건강을 위해서 무술수련을 권하고 그 유명한 역근경과 세수경을 만들었다고 한다. 무협소설에서 흔히 천하의 비급으로 일컬어지는 바로 그 역근세수경이다.

실제로 역근과 세수 중에서 세수경은 전해지지 않지만 역근경은 지금도 전해진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심오한 무공비급이 아니라 건강체조 수준의 수련법을 써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나마 청나라 때 위조된 저작으로 보인다. 그 이전의 믿을만한 저작들에는 역근이며 세수라는 이름도 보이지 않으니 역시 이 부분은 후세에 조작된 설화같다.

소림사 무술이 처음으로 사서에 언급된 것은 당나라 초기다. 왕세충(王世充)의 난이 일어나자 나중에 당태종이 된 이세민을 도와 소림사 승려 담종을 비롯한 13명이 왕세충의 조카 인측을 사로잡는 공적을 올렸다고 하는 기록이 전해오는 것이다.

이 기록을 근거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가 바로 이연걸의 데뷔작인 소림사다. 소림사를 배경으로 한 다른 영화들과 달리 역사적 사실에 상당히 가깝게 그려져 있다.
 
# 74년에 재건된 소림사
 
그 외에도 소림사는 원나라 때 침범해온 홍건적을 막은 노승이야기라거나 명나라 때 해적토벌에 힘을 보탠 소림사 승려들의 이야기 등으로 역사에 몇 번 등장한다. 하지만 명나라 말엽 당시의 명장이자 곤법의 명수이기도 한 유대유가 소림사에 갔을 때는 이미 소림사 승려들이 ‘옛사람의 진결(眞訣)을 잃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과 같은 소림사의 전설이 만들어진 것에는 반청복명 운동의 필요성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소림사 권법과 정통성이 과장되었던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청나라 말엽에 이미 언급한 ‘화소홍련사’를 비롯해서 ‘소림연의(少林演義)’니 ‘만년청(萬年靑)’ 등 소림사를 다룬 무협소설이 출판되면서 영웅숭배의 경향이 강한 무술가들 사이에서 무협소설 상의 이야기나 가공의 무술가들이 활약한 것마저도 자기 문파의 역사, 내력에 끌어들이게 됨으로써인 듯하다.

실제의 소림사는 1928년과 1944년 연이은 화재로 인해 장경각과 산문 등이 소실되면서 황폐해졌다가 1974년에야 정부의 지원을 받아 보수 재건되었다. 그리고 1988년 국가관광국에서 소림사 부근에 소림사무술관을 지어 무술을 가르치고 관광상품을 팔 수 있게 했다. 오늘날 소림사에 가서 무술을 배운다고 하면 이 소림사무술관에서 배우거나 혹은 그 인근에 다수 설립되어 있는 사립무술학원에서 배우는 것을 말한다.

무당파는 소림사보다 훨씬 더 실체가 모호하다. 소림사처럼 구체적인 장소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불교의 사원을 사찰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도교의 사원은 도관(道觀)이라고 부른다. 무당산에는 무수히 많은 도관들이 있다. 그것들을 통칭해서 무당파라고 하는 것일까? 원래는 그래야 맞다. 하지만 지금은 그 도관들이 모두 관광지가 되어 버렸다. 도관마다 정부에서 파견한 관리인은 있어도 도사는 찾아볼 수 없다. 무당파는 어디로 간 것일까?

도교 종파로서의 무당파라는 것은 있었다. 무당도라고 부른다. 당나라 말기에 탄생해서 명나라 때까지 이어진 종파다. 그러나 명나라 초에 당시 황제였던 영락제가 무당산에 대대적으로 도관들을 건립하면서 그 총 관리인으로 역시 도교 종파의 하나인 전진교의 도사를 임명하면서 종래의 무당도를 신봉하던 도사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태극권은 어떤가? 전설에 따르면 태극권은 무당파를 창시한 대종사 장삼봉이 만든 무술이라고 한다. 청나라의 대학자 황종의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긴 바 있다.

“소림권의 용맹함은 천하에 두루 알려져 있는데 사람을 치는 데에 그 중심을 둔다. 많은 사람들이 이 권법을 배워 따르고 있다. 또한 ‘내가(內家)’라 불리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고요함으로써 움직임을 제어한다. 남을 범할 때 손으로 응수를 하면 쓰러지게 된다. 그렇기에 외가(外家)라고 불리는 소림과는 별도의 것이다. 장삼풍은 무당의 단사(丹師)였는데….”

송나라의 도사였던 장삼풍은 어느 날 우연치 않게 뱀과 까치가 싸우는 것을 보게 되었다. 여기서 그는 고요함으로써 움직임을 제어하는 방법과 부드러움으로써 사나움을 극복하는 순리를 깨닫게 되었다. 훗날 그는 내가권을 창시하게 된다는 전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태극권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웃고 말 것이다. 오늘날에는 누구나 태극권이 진가구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안다. 무당태극권이라 부르는 유파도 있긴 하지만 그게 정말 장삼풍으로부터 전해오는 것인지, 아니면 진가 태극권의 변형일 뿐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 모호한 인물 '장삼봉'
 
저 무당파의 개파시조로 알려진 장삼풍도 무당파만큼이나 모호한 인물이다. 이름도 모호해서 장삼풍이라고도 하고 장삼봉이라고도 한다. 송말 명초에 활동했다고 하고 태극권을 창시했으며 검술에도 뛰어나서 혼자 몽고 병사 백 명을 상대해 모두 죽였다거나 민간을 떠돌며 뛰어난 의술로 병자들을 치료했고, 도술도 쓸 줄 알아서 귀신을 쫓아내는 등 당시 백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명나라를 건국한 황제 홍무제가 사람을 풀어 2년이나 찾았지만 찾지 못했고, 그 아들 영락제도 무당산에 대규모의 도관을 건립하고 전답을 하사하면서 장삼봉을 초대했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김용은 민간 전설에 의지해서 ‘의천도룡기’에 장삼봉을 등장시켰다. 그에 따르면 장삼봉은 원래 소림사의 사미승인데 소림사에서 파문당한 뒤 세상을 떠돌다가 세 개의 봉우리를 보고 도를 깨달아(그래서 이름이 세 개의 봉우리, 곧 삼봉이라고 한다) 무당파를 개파했다고 한다.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김용은 한 문파를 개파한 대종사로서의 장삼봉이라는 인물형을 작품 속에서 훌륭하게 그려냈다. 그가 묘사한 태극권은 실제 태극권의 고수가 시전하는 것을 보듯이 유려하면서도 정밀하게, 거기 담긴 철학까지 묘사된 듯 심오하기까지 하다.

실제로 김용은 태극권의 달인인 친구에게서 조언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좌백(左栢) jwabk@freechal.com
 
무협작가로 ‘대도오’, ‘생사박’, ‘혈기린외전’ 등의 작품이 있다. 무협게임 ‘구룡쟁패’의 시나리오를 쓰고 이를 제작하는 인디21의 콘텐츠 담당 이사로 재직 중이다.

[사진설명 : 사진 순서대로..]
◇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공연하는 소림사 무술 시범단.
◇ 우탱 클랜.
◇ 우탱 클랜의 음반 ‘The W’
◇ 소림사 승려의 수련장면.
◇ 무당산의 도관 중 하나인 금전.
◇ 도관 안에 있는 신상. 도상(道像)이라고도 부른다.
◇ 도사의 복장. 머리에 반드시 상투를 틀고 비녀를 꽂는다.
 
좌백(左栢)(jwabk@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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