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다 그렇지 않은가
삶을 생각케 하는 영화…넘쳐 나는 활기와 에너지
 
‘사는 게 다 그래.’ 칠십 줄에 들어선 노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면 우리는 경청해야 한다. 하지만 십대들의 입에서도 이런 말은 거침없이 흘러나온다. 도대체 사는 게 뭘까. 영화가 그 본질적 질문에 대해 해답을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영화 속에는 다양한 질문의 순간들이 존재한다.

멍청한 은행 강도의 이야기 ‘돈을 갖고 튀어라(69년)’ 이후 30년 넘게 우디 알렌은 거의 매년 1편씩의 작품을 발표해왔다. ‘애니씽 엘스’는 최근 그가 만든 영화 중에서 가장 활기 넘치고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우디 알렌은 초기작에서 상황 코미디로 내러티브를 전개해 나갔지만 뉴요커들의 일상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한나와 그의 자매들’ 부근에서는 대사의 비중이 훨씬 증가한다. ‘애니씽 엘스’도 신인 코미디 작가 제리와 그의 철부지 동거녀 아만다, 그리고 제리에게 인생 상담을 해주는 늙은 코미디 작가 도벨 등이 나누는 대사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제리는 떠오르는 코미디 작가다. 그의 문제는 크게 안과 밖으로 나눌 수 있다. 친구의 여자친구였던 아만다와 서로 눈을 맞추고 동거까지 돌입한 것은 좋다. 아만다는 예쁘지만 성격은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분위기 안 잡힌다고 6개월째 섹스를 거부하지만 알고 보면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

아만다라는 뻔뻔한 캐릭터가 구축됨으로써 ‘애니씽 엘스’는 활기를 띈다. 그녀는 다른 남자와 자고 와서도 자신이 정말 불감증인지 궁금해서 그냥 살짝 자본 거라고 변명을 한다.

더구나 아만다의 어머니 폴라는 마땅히 있을 곳이 없다고 원룸 아파트인 제리의 집으로 무작정 쳐들어와서 거실 한쪽을 점령해버린다. 그곳은 제리가 글을 쓰고 생각에 잠기는 가장 사적인 공간이었다. 더구나 폴라는 그 나이에도 가수 지망생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피아노를 두드리며 소리를 질러댄다.

제리의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매니저 하비는 무능하다. 그러면서 수수료는 많이 챙긴다.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하자 죽겠다고 제리를 협박한다. 도대체 제리가 무슨 죄가 있는가. 그는 거칠게 꼬여가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공원에서 만난 늙은 작가 도벨에게 털어놓는다. 그런데 이 도벨이라는 사람도 사이코 같다.

그는 실제로 정신과 상담을 갔다가 의사와 시비가 붙어 소화기로 머리를 내리친 뒤 구금된 경력도 있다. 그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권총을 항상 휴대해야 한다고 말하는 편집증적 증세를 보인다. 그러나 어지러운 그의 말 속에는 삶을 꿰뚫는 통찰이 들어 있다.

제리를 중심축으로 집 안의 아만다와 폴라, 집 밖의 도벨과 하비의 캐릭터는 각각 선명하게 구축돼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캐릭터가 아만다다. 그녀는 선수다. 남녀 관계의 줄다리기에서 언제 잡아당기고 언제 풀어줘야 하는지 그 힘의 강약과 타이밍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다. 이런 선수들을 만나면 백전백패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이기적이고 뻔뻔하지만 남자를 휘어잡는 정열과 유혹의 성감대가 발달해 있다. 크리스티나 리치는 탐미적인 열정으로 아만다를 소화해낸다.

애니씽 엘스. 그렇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무책임한 것 같지만 사실 특별한 것도 없는 게 보통 사람의 삶이다. 많은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 같지만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인류의 삶이 시작된 이후 조금씩 겉모습만 바뀌면서 수없이 반복되어 온 문제들이다. 제리의 갈등도 마찬가지다. 아만다도, 하비도, 도벨도, 그리고 당신도, 모두 언젠가 인류사에 존재했던 인물들이다. 그렇지 않은가?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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