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이 검찰에 추파를 던지는 까닭은?
극명한 선악논리.. 배우 색깔도 제대로 못 살려 아쉽다
 
‘공공의 적 2’는 검찰청 홍보영화다. 영화 속 대사이기도 한 ‘대한민국 검찰을 사랑합시다’가 영화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고 있다. 왜 강우석은 검찰에 추파를 보내는 것일까.

‘공공의 적’이 경찰서를 무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다루는 범죄도 살인이나 강도 사건에 머물러 좀 더 구조적 큰 비리를 다루기 위해 검찰청으로 영화의 무대를 옮긴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검찰 고위층과 정치권 최고 실세와 재벌들이 실핏줄처럼 연결돼 부패를 저지르는 ‘공공의 적 2’의 부패 시스템이 일방적으로 검찰을 옹호하고 있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공공의 적2’가 검찰청 홍보 영화로 비춰지는 것은, 사회 정의를 위해 정치권 최고 실세들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검사들의 입장을 너무나 앞장서서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철중(설경구 분) 검사와 그의 보스인 부장검사(강신일 분)는 그보다 더 윗 세력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싸워 나간다. 수사를 지휘하는 일선 검사들에게 압력을 행사는 그 윗 세력은, 검찰 최고위층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집권 여당의 부총재(박근형 분) 등 정치권이며 비리의 주범인 사학 재단 이사장 한상우(정준호 분)가 그 뒤에서 온갖 뇌물로 정치권을 조종하고 있다.

즉 재벌과 결탁한 부패한 정치권을 검찰이 소신 있게 수사해서 비리의 주범들을 체포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한다는 내용이 ‘공공의 적 2’다. 그러나 이런 내용이 지나치게 경직되게 다뤄졌다. 강철중 검사의 입에서 사회정의를 외치는 도덕적 구호가 수없이 반복되고 정치권의 압력에 맞서 싸우는 검사들의 모습이 영웅적으로 그려져 있는 것은 ‘공공의 적 2’에 일반 대중들이 동화되지 못하는 요소가 된다.

국민들이 체감하는 것은 검찰에 압력을 행사하는 정치권 못지않게 힘을 가진 검찰의 내부 비리다. ‘공공의 적’이 공감대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강철중 형사가 지나치게 결백하지 않고 적당히 부패했고 결함도 있지만 그보다 더 악독한 근친살인범을 체포하는 데 몸을 던지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선명하게 선악을 가르고 내부의 모순이나 비리를 드러내지 않고 일방적 옹호로 검찰을 그려내는 ‘공공의 적 2’가 대중적 동의를 구할 수는 없다.

설경구는 좋은 연기자지만 칠면조 요리와 같다. 요리사인 감독에 따라서 천의 색깔을 낼 수 있는 배우다. 강우석은 괜찮은 감독이지만 최고의 연기를 끌어내지는 못한다. 상상력의 새로움이나 창조적 개성과는 거리가 먼 감독의 캐릭터에 따라 기존의 이미지 범위 내에서 충실히 재활용된다.

강철중 검사의 모습에서, 우리는 자신을 찾아온 첫사랑 순임의 남편 앞에서 관자놀이에 권총을 겨누며 울부짖는 ‘박하사탕’ 비닐하우스 신의 강영호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너무나 똑같다. 이것은 설경구가 자신의 연기를 자기 복제하는 것도 되지만 강우석 감독이 그를 창조적으로 재활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방증이다.

가령 ‘오아시스’를 봐라. ‘박하사탕’과 똑같은 이창동 감독이지만 ‘박하사탕’의 강영호의 모습을 우리는 전과 3범 홍종두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창동 감독이 설경구를 다시 환골탈태시켜 전혀 다른 이미지로 쓰기 때문이다.

‘공공의 적2’는 주무대를 경찰에서 검찰로 옮겼다. 보다 큰 사건을 다루기 위해서다. 그러나 대한민국 검사들의 모습은 여전히 ‘공공의 적’에서의 경찰서 형사들의 이미지를 크게 못 벗어난다. 나중에 권력 실세를 둘러싼 샅바싸움에서 조금 시스템의 거대한 규모가 드러나기는 하지만 내러티브는 신문 지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상이 절대 아니다. 식상한 이야기를 검찰 측 입장에서만 강조하는 ‘공공의 적2’는 균형을 잃고 있다.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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