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계 살아있는 '전설'
RPG의 처음과 마지막
 
게임 개발자들에게 PC게임 역사에서 가장 유명하고 좋아하는 작품을 하나 선택하라면 대부분 ‘울티마’를 꼽는다. 그리고 존경하는 게임 개발자를 얘기해보라면 ‘울티마’의 개발자 리처드 게리엇을 말한다.

그들은 개발자라면 누구나 알고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하는 거의 유일한 게임과 개발자다. ‘울티마’는 롤플레잉 게임의 가능성을 무한히 열어 줬으며 대중화를 선도하고 PC게임의 보급에 큰 힘을 실어 줬을 뿐만 아니라 MMORPG의 토대를 만들었다.
 
# 게임계의 살아있는 신 ‘리차드 게리엇’
 
PC게임에서 세계 3대 게임 개발자라면 ‘시드 마이어’, ‘피터 몰리뉴’, ‘리차드 게리엇’을 손에 꼽는다. 각기 독창적인 세계를 창조하며 게임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줬던 이들은 여전히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으며 개발자들의 영원한 사부로 인정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리차드 게리엇은 매우 특별한 존재다. 엔씨소프트와 손잡고 엔씨소프트 오스틴을 설립해 우리 나라 유저들에게 가장 친숙한 인물이지만 롤플레잉 게임의 태두로 우뚝 서 있는 사람이다. 흔히 말하는 ‘살아있는 신’이라면 바로 리차드 게리엇을 말할 수 있다.

리차드 게리엇이 개발한 ‘울티마’는 테이블에서 주사위로 역할 분담을 하며 즐겼던 TRPG를 PC 게임으로 완벽히 구현했다. 세계의 모든 롤플레잉 게임은 ‘울티마’의 영향을 받았고 어떤 타이틀도 ‘울티마’의 영역을 벗어 나지 못한다.

또 그가 창조한 ‘울티마 온라인’은 롤플레잉을 바탕으로 한 온라인 게임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정의내린 빛나는 역작이다. 지금도 국내외 많은 유저들은 ‘울티마 온라인’을 즐기고 있으며 그들은 가볍고 화려한 추세로 흐르고 있는 MMORPG를 비웃으며 자신들만의 가상 세계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 처녀작부터 대박 터뜨려
 
리처드 게리엇.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만인이 인정하는 천재였다. 소설 ‘반지의 제왕’을 읽고 ‘던전&드래곤’ 게임을 접하고 컴퓨터를 알게 되면서 그의 인생은 오로지 게임으로 맞춰졌다. 홀로 컴퓨터를 이용해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그의 재능을 알아본 학교 측에서 자유롭게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배려했다.

고등학교 시절 리처드 게리엇은 누구의 지도도 받지 않고 28개의 게임을 만들었는데 그의 마지막 작품은 ‘아칼라베스’로 완성됐고 여름 방학동안 컴퓨터 매장에서 판매원으로 일한 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게임을 팔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게임은 널리 퍼져 당시 게임 유통사 중의 하나였던 캘리포니아 퍼시픽에서 게임 퍼블리싱을 자처하고 나섰다. ‘아칼라베스’는 3만 장이 팔렸고 리차드 게리엇은 15만 달러를 벌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텍사스 대학에 입학한 그는 이 돈을 자본으로 켄 아놀드와 함께 불멸의 게임 ‘울티마’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 ‘울티마’는 곧 업그레이드
 
‘울티마 1’은 출시되자 마자 곧바로 유명세를 탔으며 ‘울티마2’로는 시에라와 계약을 할 수 있었다. 베이직을 접고 기계어 프로그램으로 개발한 이 게임도 호평을 받았고 ‘울티마 3’으로 리처드 게리엇은 자신의 역량을 더욱 발전 시켰다.

이때 중요한 결심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차기작을 만들 때는 전작의 코드(엔진)를 이용하지 않고 처음부터 새롭게 프로그램을 짜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때부터 ‘울티마’는 시대를 앞서가며 최고 수준의 하드웨어로도 돌리기 힘든 게임으로 탄생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울티마 9’이 국내에 처음 발매됐을 때 유저들 중에 이 게임을 원활하게 돌릴 수 있는 하드웨어를 갖고 있는 사람이 드물었고 ‘일단 구입한 다음 내년에 플레이해야 겠다’고 마음 먹어야만 했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자신이 세운 오리진을 매각하고 ‘울티마’ 개발을 중단한 채 엔씨소프트와 ‘타뷸라 라사’를 만들고 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큰 아쉬움이라고 할 수 있다.
 
#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
 
‘울티마’는 네번째 시리즈가 발매되면서 많은 의미를 갖게 됐다. 이전의 작품들은 롤플레잉 세계관이 확립되지 못했고 이야기 구조가 중구난방식으로 흘렀으나 ‘울티마 4’부터는 이후에 개발되는 작품들과 이야기를 연계하면 일관된 세계가 창조됐다.

‘울티마 4’에서 ‘울티마 6’까지 오는 동안 로드 브리티쉬로 통하는 울티마 세계관이 확립됐으며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게임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울티마 7’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래픽은 3D에 근접했고 게임의 자유도는 엄청나게 넓어졌다. 리처드 게리엇은 ‘울티마 7’을 ‘울티마’ 시리즈의 완결편으로 생각해 만들었고 그의 의지는 ‘울티마 온라인’으로 이어져 여기에는 ‘울티마 7’의 요소가 대부분 구현됐다.

하지만 ‘울티마’의 영광은 8편부터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액션에 너무 치우진 나머지 정통 롤플레잉의 흥미를 잃었으며 오랜 개발기간을 거쳐 완성한 ‘울티마 9’도 엄청난 고사양과 떨어지는 완성도로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울티마’의 영향력은 이후 ‘디아블로’와 ‘발더스 게이트’ 등으로 이어지면서 롤풀레잉의 르네상스를 구가할 수 있었다.
 
# 왜 ‘울티마’인가?
 
최초의 롤플레잉 게임은 ‘던전&드래곤’이라는 타이틀이다. 테이블에서 주사위로 이뤄진 TRPG를 컴퓨터 게임으로 역사상 처음 만든 작품이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울티마’는 여기서 힌트를 얻어 독자적인 세계관과 팬터지를 밀도있게 그려내 성공했다. 초반 시리즈는 엉성한 면이 있었고 이야기가 짜임새가 없었으나 갈수록 탄탄한 세계관을 창조해 롤플레잉 게임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인정받았던 것이다.

 롤플레잉 게임을 PC로 구현하고 계속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며 방대한 이야기와 환상을 창조한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또 리처드 게리엇은 스스로를 로드 브리티쉬로 승격화시키고 자신의 게임에 자신이 등장하는 독특한 재미를 유저들에게 서비스했다. ‘울티마’에 빠져든 전세계 유저들은 롤플레잉은 곧 리처드 게리엇으로 공식화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많은 PC 게임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울티마’는 지금도 ‘울티마 온라인’으로 살아남아 꾸준히 그 호흡을 이어가고 있다.
 
김성진기자(김성진기자@전자신문)
저작권자 © 더게임스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