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충돌' 게임으로 완벽 재현
교육적 재미와 플레이 쾌감으로 '두 토끼 잡기'
 
수많은 에듀테인먼트(교육과 게임이 혼합된 형태의 소프트) 작품들을 보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재미가 별로 없다’라는 것이다. 물론 꼭 그렇지만은 않다. 요는 교육에 게임을 입히느냐, 아니면 게임에 교육을 입히느냐다.

교육을 기본으로 하여, 그것만으로는 흥미를 얻기 힘들다는 입장에서 게임의 요소를 도입한다면 미안하지만 재미없는 그저 그런 에듀테인먼트가 되기 쉽다. 그렇다면 반대로 게임의 재미를 기본으로 해 거기에 교육적인 요소를 입힌다면? 그 결과는 ‘대항해시대’ 시리즈, ‘카멘 샌디에고’ 시리즈, ‘심시티’ 시리즈 등이 증명한다.
 
 에듀테인먼트라고 여기지 않는 명작 게임들을 잘 살펴보면 그것들이 진정한 의미의 에듀테인먼트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교육적인 요소가 강해지면 그만큼 재미는 약해지는 것일까? 대답은 No다. 위의 예시로 들었던 몇 가지 게임들을 잘 곱씹어보면 결코 교육적 요소가 약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에듀테인먼트와 게임의 절묘한 경계에 서 있던 또 하나의 작품이 지금 소개할 ‘문명(Civilization)’이다.
 
# 교육적인 게임은 이미 있었다
 
‘문명’은 1986년 아발론 힐이 제작한 동명의 보드게임에서 영감을 얻어 1991년에 만들어진 턴 방식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이 작품 안에서 게이머가 하는 역할은 자신의 문명을 발전시켜나가는 것. 그 속에서 다른 문명들과의 마찰, 영토 분쟁들이 마치 실제 문명의 발전처럼 일어난다.

주위 문명과의 마찰은 전쟁으로 해결하거나 외교와 협상을 통한 평화로 해결할 수 있다. 실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문명의 발전사 속에서 흘러가는 게임의 진행은 플레이하는 것만으로도 인간 역사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으며 자신만의 문명을 발전시켜가는 성취감과 다른 문명들과의 마찰에서 생기는 전투와 외교의 재미는 수많은 유저들에게 밤을 새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덕분에 1편만 무려 400만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했고 이후 시리즈도 언제나 밀리언셀러가 되는 인기 타이틀이 됐다.

물론, 앞에서 예로 들었던 여러 작품들처럼 교육적인 요소를 첨가한 게임들은 많다. 또 그것 뿐이라면 ‘문명’을 명작으로 인정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게임은 여러 의미에서 혁명적인 게임 제작방식을 만들어 내 그만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문명’이 가진 첫 번째 특징은 바로 철저한 설정이다. 이 게임에 담겨있는 여러 문명에 대한 철저한 설정은 그야말로 대단히 정교하고 복잡하게 짜여 있다.

플로 차트(Flow Chart) 형태로 된 이 게임의 구조는 하나의 문화를 개발하기 전에는 다음 문화로 발전할 수 없는, 그리고 여러 조건에 따라 문화가 발생하는 등 환경을 철저하게 만들어 둠으로써 자신만의 문명을 만들어 간다. 여러 번 플레이해도 그 재미를 잃지 않는 다양함을 유저에게 선사했던 것이다.

이런 형태의 설정 방식을 매우 치밀하게 도입한 것이 재미를 이끌어 낸 형태가 되었고 이후 수많은 개발자들이 ‘테크 트리’와 ‘스킬 트리’라 일컫는 구조를 만들게 했다.
 
# ‘문명’의 아버지 시드 마이어
 
이 게임의 바탕에는 ‘시드 마이어’라는 걸출한 제작자가 있다. 1980년대 초반부터 스무 종류가 넘는 게임을 만들어내는 정력적인 활동을 펼쳤다. ‘레일로드 타이쿤’, ‘게티스버그’, ‘알파 센타우리’, ‘파이럿츠’, ‘에일리언 크로스파이어’, ‘심골프’ 등을 비롯해 자신이 만든 대부분의 타이틀을 히트시키며 완성도와 재미면에서 인정 받았다.

그런 덕에 호사가들은 그를 ‘PC 게임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까지 부르는 것이며 그가 만든 각 게임의 제목 앞에는 항상 ‘시드 마이어의’ 무슨 게임이라는 식으로 자신의 이름을 붙일 만큼 자신감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가 만든 작품들 중에서 그의 입지를 전세계적인 제작자로 세운 것이 ‘문명’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의 의미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문명’ 시리즈의 또 다른 특징이자 흔히 우리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라고 부르는 다른 작품들과 가장 차별화되는 부분은 게임에 등장하는 시민들의 행복에 집중하는 게임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게임에서 유저가 만든 문명이나 국가가 전쟁을 벌이는 가장 큰 이유는 지나친 자원의 부족으로 빈곤을 겪거나 상대 문명이 부당한 요구를 할 때다. 유저는 끊임없이 자원 부족과 사회 구조, 이데올로기 등을 고려하면서 게임을 풀어나가야 한다.

물론 유저의 성향에 따라서는 전쟁 위주의 플레이를 펼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쟁에 이겨 점령한다고 하더라도 점령한 지역의 시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금새 폭동이 일어난다. 흔히 전투의 재미에 최고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대부분인 유사 장르에서 ‘문명’의 특성은 ‘문명’을 ‘문명’이게 한다.
 
# 성장하는 시리즈 ‘문명’
 
그러나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것은 게임이 발전하는 모습이다. 타이틀의 인지도가 높은 만큼 지금까지도 시드 마이어는 자신의 이름을 단 ‘문명’ 시리즈를 제작하고 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1편부터 이 시리즈를 함께 제작했던 또 한 사람의 인물이 있다. 바로 브루스 셀리다. 당시에는 시드 마이어의 후광에 밀려 인정받지 못했던 제작자지만 지금은 너무나 유명해져 있다. 바로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가 그의 손으로 만든 작품이다. 또 그들과 함께 ‘콜로니제이션’과 ‘문명 2’ 등을 개발했던 브라이언 레이놀즈는 최근 ‘라이즈 오브 네이션즈’를 개발하기도 했다.

 게다가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시리즈를 제작하던 릭 굿맨은 ‘엠파이어 어스’로 방향을 돌렸다. 모두 ‘문명’에서 뿌리를 두고 있으며 하나의 작품에서 분화한 다양한 시리즈를 보고 있으면 ‘문명’이 게임계에 미친 영향을 느낄 수 있다. 뿌리가 튼튼하면 거기에서 자라난 가지들도 튼실한 법. 어떤 작품이 진정한 ‘문명’의 후계자라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각 작품들은 완성도가 높고 많은 인기를 얻으며 발전하고 있다.
 
이광섭 월간플레이스테이션 기자(dio@gamer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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