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웃음 부추기는 지리멸렬한 코미디
성적 관계에만 집착.. 호기심 자극하는 연출로 일관
 
‘여고생 시집가기’는 삼국사기에 나와 있는 고구려 평원왕의 딸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의 고사에서부터 시작한다.

고전의 현대적 해석에 기초한 영화가 아닐까 생각하고 기대를 갖게 하는 오프닝신은 그러나 단지 얄팍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위장적 제스처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곧 드러난다.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이 전해주는 고사의 핵심은 남성 위주의 가부장제 사회 질서 속에서 능력 있는 여성이 자신의 남성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해서 훌륭한 인물을 만든다는 것이다. 또 이 고사 속에는 바보가 위대한 장군이 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의 변화와 함께 여성의 능동적 힘에 대한 재해석이 숨어 있다.

그러나 ‘여고생 시집가기’에는 고전의 핵심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대적 재해석도 없다. 왜 주인공의 이름을 안평강과 박온달로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 영화 속에서는 평강공주가 16살에 결혼했기 때문에 평강공주의 귀신이 씌워진 안평강도 여고생 신분이지만 16살 생일 전까지 박온달과 결혼해야 죽지 않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는 설정으로 밖에 작용하지 않는다. 부채도사의 점괘에 따라 평강은 온달을 만나기 위해 노력한다. 즉 고전의 핵심은 사라지고 겉모습만 차용해서 흉내 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이 영화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더구나 ‘여고생 시집가기’는 짜증 날 정도로 성적 관계에 집착하고 있다. 여고생 친구들이 평강에게 성에 대한 학습을 시도하는 것이라든가, 평강이 온달에게 접근해서 신체적 접촉을 유도하고 합방을 시도하는 일에 감독은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문제는 그것들이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기는 커녕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고생 시집가기’로 데뷔하는 신인 오덕환 감독은 독창적 캐릭터를 창조하겠다거나 고전의 현대적 해석으로 이 시대에 왜 평강과 온달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설파하는 대신, 얄팍한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가벼운 연출로 일관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연출의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지 관객들을 유인하기 위한 미끼로 평강과 온달의 고사를 덧씌우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증거를 우리는 여러 군데서 찾을 수 있다.

우선 온달의 위치다. 알다시피 고전에서 온달은 그 시대 고구려의 가장 못난이였다. 신분적으로도 가장 비천한 산속의 나무꾼이었다. 그러나 가수 은지원을 캐스팅하면서 현대판 온달의 신분은 부자집 귀공자로 변했다.

아버지는 정원에서 골프를 치고 어머니도 귀부인의 자태를 뽐내며 우아하게 앉아 있다. 온달의 부모는 평강이 집을 나와 온달네 집으로 들어와도 평강 부모님들에게 연락 한 번 하지 않는 비상식적인 행동을 한다.

이런 것은 이 영화 속에서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그들이 부모 몰래 합방을 해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반면에 평강의 부모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아버지는 화투나 치고 있는 백수에 불과하다. 평강상회라는 작은 구멍가게를 꾸려 나가는 사람은 어머니지만 그녀 역시 천하게 그려져 있다. 여자와 남자의 이러한 신분의 역전은 마땅히 고전과는 다른 행동의 역전으로 이어져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여전히 고전처럼 남자에게 구애하는 것은 여자다.

이것은 온달 역의 은지원이 갖고 있는 대중적 풍모를 유지하면서 흥행에 순작용으로 기여하기 위한 방편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 상업적 흥행을 위해 동원된 인기가수 출신 연기자와 그 이미지 유지를 위해 고전의 현대적 재해석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다.

‘여고생 시집가기’는 억지웃음을 유발하는 지리멸렬한 코미디다. 배역의 캐릭터도 독창성이 전혀 없으며 신선함을 잃고 상황 역시 우리들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긴장감은 전혀 없다. 한국 영화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왜 이런 어설픈 코미디들이 제작되는지 뼈아픈 반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어느 한 부분 가슴에 새겨둘만한 장면이나 대사도 없고 기억에 남는 캐릭터도 없으며 새로운 이야기도 아닌 이런 영화들이 단지 웃기기만 하면 흥행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헛된 믿음 아래 제작이 된다. 상업영화라고 해서 관객들이 찰라의 웃음만을 요구한다고 생각하면 잘못된 판단이다. 더구나 ‘여고생 시집가기’는 찰라의 웃음을 전해주는 데도 한참 부족하다.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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