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한 복판에서 펼쳐지는 씻김굿
선명한 내러티브 없지만 발칙한 상상력 꿈틀
 
‘귀여워’의 등장인물이 모두 귀엽다고 말할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중심인물인 박수무당 장수로는 귀엽다. 그것은 장수로 역을 맡은 장선우 감독 개인의 캐릭터와 근접성을 가지면서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세상에 대해 무심한 듯 하면서도 한 마디씩 내뱉는 촌철살인의 대사는 한때 ‘세상을 뒤엎으려던’ 혁명아 장선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장선우 감독이 5년 동안 자신의 연출부에 있었던 김수현 감독의 데뷔작 ‘귀여워’에 배우로 출연한 것이 꼭 개인적 인연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남산을 올라가는 케이블카 안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의 야경, 영험한 부적을 하나 만들어 달라는 순이에게 장수로는 서울의 불빛들을 바라보며 ‘저것들이 다 일종의 부적’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거의 득도의 수준이다. 광주의 비극 후일담인 ‘꽃잎’에서 포르노그라피 ‘거짓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를 다양한 방법으로 이야기하면서도 개인을 억압하는 권력과 집단의 부패함에 대해 비판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던 장선우의 작품세계가 ‘귀여워’와 만나는 접점은 바로 그 부분이다.

‘귀여워’는 결국 일상의 초월과 해탈의 몸짓으로 썩어가는 거대 도시 한 복판에서 진행되는 씻김굿이다. 장수로의 셋째 아들인 행동하는 건달 뭐시기가 막판에 동료들로부터 부조금을 받기 위해 아버지 결혼식을 추진하는 신은 불가능한 축제의 현대적 고찰이다.

하얀 플라스틱 의자들이 놓여 있는 곳은 철거가 진행 중인 아파트촌의 공터. 주변에는 아파트 폐기물로 가득 차 있고 뒷면에는 거대한 시체처럼 내장을 다 드러내고 허물어져 가는 빈 아파트 단지가 버티고 서 있다. 도대체 이런 곳에서 결혼식이라니.

신랑은 각각 배다른 세 아들과 살고 있는 박수무당 장수로. 신부는 막히는 도로에서 뻥튀기를 팔다가 효심 가득한 장수로의 둘째 아들 개코에 의해 황학동 철거 아파트에 온 순이다.

그러나 순이는 장수로와 만나기 전 이미 개코와 섹스를 했고, 자신을 좋아하는 퀵서비스 배달원 첫째 아들 후까시의 애정공세를 받고 있으며, 아파트 잔여세대를 쫒아내라는 명령을 받은 건달 뭐시기의 젖가슴을 만지고 싶다는 요구에 거리낌 없이 옷을 벗는 여자다.

‘귀여워’의 한 여자 네 남자의 구성은 우리의 도덕관념을 어지럽게 한다. 각각 배가 다른 세 아들 사이에서 여자가 돌아다니는 것이야 브래드 피트의 ‘가을의 전설’이나 아니면 성의 전도는 있지만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에 등장한 것이니까 새로울 것은 없다. 문제는 그 여자가 그들의 아버지의 부인이 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애초부터 ‘귀여워’는 이 지상의 허울 좋은 도덕관념 같은 것은 걷어차고 진행된다.

‘귀여워’는 재개발이 한참 진행 중인 서울 청계천변의 황학동 아파트 철거촌을 무대로 한다는 점에서 산업화에 따른 거대도시화에 대한 반성도 찾아볼 수 있다. 주민들이 빠져나간 을씨년스러운 철거 직전의 아파트촌은 마치 자본주의의 세속화와 물신화에 따라 영혼이 빠져나간 현대인들의 내면을 비춰주는 것 같다. 필자는 불빛 휘황찬란한 거대도시의 이면을 이렇게 섬뜩하게 배경으로 거느린 영화를 본 적이 없다.

‘귀여워’는 혼돈스러운 세상의 번잡함을 초월하고 싶은 영화다. 논리정연하고 인과관계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내러티브는 없다. 만약 이 발칙한 상상력과 전복적 주제로 꿈틀거리는 영화가 상업적 흥행에 성공한다면 한국영화의 미래에 대해서 적어도 5년 정도는 장밋빛 청사진을 가질 수 있다.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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