졌지만 자신감 '충만'
2주 후 재도전 신청
 
진정한 고수는 아무도 찾지 못하는 산중에 기거한다고 했던가. 조경철. 나이 29세. 태권도 사범이자 국내 ‘위닝’ 대회 최대 우승자인 그를 찾아 수원으로 길을 떠난 지 어언 2시간 째.

머리에 털 나고 처음으로 수원이라는 땅을 밟아 영통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입사한지 일주일도 안 된 사진기자와 20분을 기다려 겨우 올라탄 버스는 또 만원. 게다가 서울만 차가 막히는 줄만 알았는데 수원도 엄청난 교통 체증으로 도로가 꽉 막혀 있었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온갖 고생을 하며 길을 떠난지 장장 3시간 30분 만에야 국내 ‘위닝 최고수’ 조경철 선수를 만날 수 있었다.

사실 게임 기자라고 해서 모든 게임의 최고수인 것은 아니다. 밥 먹고 게임만 하는 프로게이머를 당할 순 없다. 특히 부단한 연습과 노력이 없으면 결코 실력이 높아지지 않는 ‘위닝일레븐’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최고수로 알려진 조 선수에게 기자가 도전한 것은 모두 독자를 위해서다. 앞으로 펼쳐질 김성진 기자의 파란만장한 위닝 도전기를 지켜보기 바란다. 혹시 아는가. 더 게임스의 1위 김성진 기자가 대한민국 최고수를 이길 지도 모르는 일(꿈이겠지만).
 
# 한 골이라도 넣으면 일단 성공
 
이미 조 선수에게는 이번 기사에 대해 자초지종을 설명했었다. 흔쾌히 허락한 그에게 더 이상의 형식상 멘트는 무의미한 법. 만나자마자 우린 곧바로 시합에 돌입했다. 열심히 카메라를 세팅하고 있는 한윤진 기자에게 말했다.

“사진 잘 찍어라, 혹시 알어? 내가 이길지도 모른다.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도 사진을 계속 찍어야 돼.”

져도 본전이요, 비기면 장땡이고 이기면 복권 당첨이라는 생각으로 시합에 임했다. 조 선수는 브라질을 선택했고 난 프랑스를 골랐다. ‘위닝일레븐 8’은 브라질이 가장 강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상대와 같은 팀을 초이스하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또 우리 나라에서 제일 잘한다는 사람이 제일 센 팀을 고르는 모습을 보자 오기도 생겼다.

“절대로 봐 주지 마쇼.”
“하하하하, 네.”

열심히 설정에 몰입하고 있는 조 선수에게 최선을 다해 달라고 주문했다. 슬슬하다 지는 것도 문제지만 일단 이것도 승부다. 승부에 임하는 자세가 허술하면 그것처럼 화나는 일이 없다. 난 속으로 생각했다. ‘한 골이라도 내가 넣으면 성공하는 거지.’
 
# 골을 넣다
 
첫 번째 경기는 4대 1로 조씨가 이겼다. 하지만 내가 골을 넣었으니 1차 목표는 성공한 것. 조 선수는 빠른 조직력과 측면 침투를 즐겨 사용했으며 수비는 최대한 뒤로 물러나 미드필드에 가담하지 않고 안정된 수비라인을 형성하도록 플레이했다. ‘위닝일레븐 8’이 스루 패스 성공률이 높아 그렇게 한다고 설명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첫 번째 골은 센터링에 이은 헤딩슛에 당했고 두 번째 골은 호나우두의 현란한 드리블에 이은 로밍슛에 먹혔다. 조씨의 로밍슛은 매우 특이해서 L1 버튼을 사용하지 않고 R1 버튼을 이용한 방식이다.

이를 이용하면 골키퍼의 머리를 살짝 넘기는 빠르고 낮은 슛이 가능하다. 이것에 세번째 골과 네번째 골을 모두 먹었다. 골키퍼의 움직임에 전혀 개의치 않고 슛을 날리는데 도저히 막을 방법이 없었다.

경기 전반전에는 하프라인을 넘을 수 없을 정도로 밀리는 졸전을 펼쳤으나 후반부터는 프랑스도 만만치 않은 반격을 가해 몇 번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번번히 막강한 수비에 고전하다 결국 로밍 스루 패스를 앙리에게 연결, 골키퍼와 일대일 찬스를 만들고 반대편 대각선 슈팅을 날려 골을 넣고야 말았다.

‘어라? 이거 할만한 걸?’
 
# 은근히 자신감이 붙다
 
첫 번째 경기를 끝내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 한 기자가 ‘각도가 안 나와서 찍기 힘들다’며 다른 곳으로 이동해주길 주문했다. 어떤 행사나 이벤트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은 바로 사진 기자다. 대통령도 사진 기자가 원하는 포즈를 취해주는 마당에 누가 저항할 수 있으리. 우리는 메모리 카드와 시간체크 카드를 손에 꼭 쥐고 사진 기자가 마음에 들어 하는 자리로 이동했다.

다시 시작된 두 번째 경기. 이번에도 브라질과 프랑스의 대결이었다.

“왜 브라질로 하는 거에요?”
“그냥, 처음부터 계속 브라질로 했기 때문에요.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정말일까. 혹시 내가 속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최고 고수라는 사람이 어떻게 팀을 별 생각 없이 선택한단 말인가. 물론 나도 아무 생각없이 프랑스를 선택하는 것이지만 나랑 비교가 돼서야 말이 돼나. 날 안심시키기 위한 고도의 전술인가? 설마.

“자, 합시다. 절대 봐 주시면 안되요.”
“당연하죠.”
 
# 두 골이나 넣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내가 두 골이나 넣어 버린 것이다. 피레스가 센터링을 올렸고 몸싸움 좋은 앙리가 머리로 트레제게에게 패스 다시 헤딩슛∼ 골인! 또 다른 골은 튀랑이 올려준 롱 패스를 앙리가 몸으로 트래핑과 동시에 수비수를 제끼고 전력 질주. 골키퍼가 튀어 나오는 것을 보고 살짝 옆으로 피한 후 슛!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다섯 골을 먹은 상태에서 두 골을 넣었기 때문에 다소 의미가 퇴색된 면이 있지만 두 골이나 성공시켰다는 것에 의의를 둬야 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조 선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을 다 동원해 다섯 골을 넣었다.

특히 마지막에는 해골처럼 생긴 호나우딩요로 3명의 수비수를 따돌리고 멋진 오른발 강슛으로 마무리했다. 도저히 뺏을 수 없는 드리블이었다. 좁은 페널티 지역에서 그처럼 멋진 드리블을 할 수 있다니. 하지만 수비가 특기라고 말하는 조경철씨에게서 두 골이나 뽑아낸 사실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 눈썹을 못 깎고 수련에 몰두하다
 
두 경기 모두 졌지만 자신감이 생기고 말았다. 한 골도 못 넣으리라 생각했는데 0패는 면할 수 있었다. 첫 경기 초반에만 일방적으로 밀렸을 뿐이고 계속해서 밀고 당기는 공방전을 펼쳤다. 조 선수에게 내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물어봤다. 그러자, “잘 하시는데요. 못하시는 것은 아니고 중간 정도는 하십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군. 역시 내가 못하는 것은 아니였어. 더 게임스에서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우물안 개구리라고 생각했는데 조금만 연습하면 나도 인정받는 고수가 될 수 있었던 거다. 조경철 선수와는 2주 후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다시 도전하기 위해서는 수련을 쌓아야만 한다. 생각 같아서는 눈썹을 모두 밀고 ‘위닝일레븐’만 붙잡고 연습하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면 처자식이 굶어 죽는다. 그래서 조 선수가 지적한 ‘수비’와 ‘골 결정력’만 집중적으로 연마하기로 마음 먹었다. 파란만장한 연습의 날들. 다음 호를 기대해 주시길 바란다.
 
김성진기자(김성진기자@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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