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전략'의 진수
실시간과 턴제의 '진국' RTS의 새로운 방향 제시도
 
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에서 개발한 ‘토탈 워’ 시리즈는 심오한 전략을 구사하는 턴제 방식과 빠르고 경쾌한 액션을 중시하는 실시간 방식의 장르를 하나로 묶고 각 요소를 더욱 높은 수준까지 끌어 올린 명작이다.

최신작 ‘로마: 토탈 워’는 지난 E3 2004에서 최고의 게임으로 선정됐으며 각종 해외 언론에서 만점에 가까운 찬사를 받는 등 게임성과 작품성은 이미 검증된 지 오래다. 다만 게임이 어렵다는 이유로 소수의 국내 유저들만 즐기고 있는 이 게임은 저주받은 걸작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는 원래 스포츠 게임을 만든 회사였다. ‘럭비’ 게임 두 편만 만들고 곧바로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으로 눈을 돌렸다(그 럭비 게임이 완성도가 떨어진 것은 아니다). 식상한 중세 시대나 SF는 지양하고 서양인들이 신선하게 인식하는 동양으로 눈을 돌렸는데 눈에 딱 잡힌 것이 바로 일본 전국시대.

개발자들은 일본 역사와 문화에 대해 연구(!)했고 엄격한 고증을 거쳐 마침내 2000년 ‘쇼군: 토탈 워(이하 쇼군)’를 세상에 공개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실시간 전략의 빠르고 경쾌한 액션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턴제 수준의 엄격한 전략을 그대로 살렸던 이 게임은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았다.

뒤이어 몽골이 일본을 침약한다는 스토리를 가진 확장팩 ‘몽골의 침략’을 개발했고 2002년에는 중세 시대로 자리를 옮겨 ‘미디발: 토탈 워(이하 미디발)’를 완성했다. 그리고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한 최신작 ‘로마: 토탈 워(이하 로마)’가 얼마전 북미에서 발매됐다.
 
# 역사책보다 어려운 역사 게임
 
이 게임은 일반 역사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지식을 담고 있다. ‘쇼군’은 일본 1503년 전국 시대를 배경으로 막부말 혼란의 무로마치 세력이 약하됨에 따라 각 지방의 다이묘들이 세력 다툼을 벌이는 때다.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군사들과 복장, 무기, 조형물, 표기, 장군, 건축물 등은 실제 그 당시 그대로다. ‘신장의 야망’이나 ‘천상기’ 등 일본 개발사들이 만든 작품보다 일본적이었고 심오했다.

‘미디발’은 또 어떤가. 1095년 십자군 원정부터 1453년 콘스탄티노플 전투까지가 배경인 이 게임도 전작보다 한술 더 뜬다. 400년의 역사 동안 무수히 등장했던 각종 군사 장비와 복장, 건축물, 도시, 표기 등이 그 당시 그대로 재현됐다.

실제 발생했던 역사적 사건과 사고는 게임이 진행됨에 따라 진짜 일어나며 일부 몽고와 중국까지 동유럽 시대에 영향을 준다(징기스칸이 돼 전 유럽을 통일하는 것도 가능하다). 십자군 원정은 기본이며 사자왕 리처드나 잔 다르크 등 유명한 인물들은 빠짐없이 등장한다. 게다가 나이를 먹으면 죽어 버리기까지 한다. 충실히 게임을 진행하다보면 어느새 세계사에 익숙한 박사가 돼 있을 것이다.
 
# 스케일이 크다는 말은 바로 이것!
 
많은 게임들이 스케일이 크다고 호언장담을 한다. 그러나 공개된 스크린 샷이나 이미지와 달리 실제 게임 화면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흔하다. 또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의 특성상 하나의 화면에 수십 개 이상의 유닛을 동시에 구현하기란 대단히 어려우며 2D가 아닌 3D로 제작된 게임은 더욱 불가능하다.

하지만 ‘토탈 워’는 3D임에도 불구하고 수백 개의 유닛이 동시에 등장한다. 그렇다고 슈퍼 컴퓨터급의 엄청난 PC 사양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일반 FPS 게임이 무난히 돌아갈 정도면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군을 완전히 둘러싼 수백 명의 적 대군이 매끄럽게 구현된다. 산을 하나 가득 메우는 대군과 대군이 격돌하는 장면이 프레임하나 느려지지 않고 처리되는 모습은 감동에 가깝다.

3D 그래픽도 조잡한 수준이 아니라 훌륭하다. 줌 인/아웃이 가능해 유닛 하나하나가 디테일하게 전투를 벌이는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볼 수 있다. 줌 인을 사용하면 기병과 사투를 벌이는 창병이나 무기를 버리고 도망가는 궁병, 도망친 적병을 쫓는 추격대 등 전투 상황에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장면이 펼쳐진다.

전체 전투 상황을 보기 위해 마우스 휠을 밀면 각 부대의 이동과 전투 상황, 산과 등성이에 잠복한 부대, 뒤에 정렬한 부대 등이 한눈에 보인다. 개발자가 아닌 초보 유저가 봐도 PC의 CPU는 엄청난 계산을 수행하지만 플레이에 별다른 지장이 없는 뛰어난 게임 엔진이 탑재돼 있다.
 
# 하나의 턴을 위해서는 담배 한 개피가 필요
 
이 게임은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이지만 전략과 전술에서는 턴제를 차용하고 있다.

국가의 정책과 전술을 정하고 부대 육성, 군사 모집, 건축 설립 등은 모두 턴 방식으로 진행한다. 그런데 ‘토탈 워’에서 턴은 담배 한 개피가 필요할 정도로 많은 생각을 해야하는 엄청난 수준을 자랑한다. 뛰어나다고 평가받았던 ‘쇼군’ 턴 요소는 ‘미디발’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제대로 된 군대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무려 100 턴을 해야하고 툭하면 반란이 일어나며 겨우 차지한 땅으로 쳐들어 오는 나라가 끝도 없다. 강력한 나라에게 잘 보여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세금도 바친다. 자식을 많이 낳지 않으면 각 지역을 맡을 믿을 만한 인물이 없어 발등에 도끼가 찍히는 일도 수시로 발생한다.

배신과 배반이 난무해 하나의 나라를 잘 다스리기는 커녕 단 하나의 지방도 구슬리기 어려울 지경이다. 이 모든 것을 해결하고 문제를 발생시키는 것이 하나의 턴에서 좌우되기 때문에 쉽사리 마우스를 클릭하기가 두려울 정도다.

또한 유저를 제외한 다른 나라들을 컨트롤 하는 컴퓨터의 인공 지능 수준도 사람을 뛰어 넘는다. 예를 들어, 가장 단순하다는 ‘쇼군’에는 장군을 암살하기 위해 닌자와 게이샤 유닛이 있다. 장군은 군사들의 사기와 전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엄중한 경호를 받는다.

난이도가 중간이면 닌자와 게이샤에 당할 확률이 적지만 난이도를 올리면 유저의 장군들은 다 죽는다. 그것도 결정적인 순간에 장군을 암살해 군사를 후퇴하게 만들어 버린다.
 
# 부대 지휘는 완벽한 사실에 근거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전투도 완벽하게 사실에 근거한다. 무한 자원에 힘입어 개떼 방식으로, 아무리 약한 유닛이라도 중국의 인해전술을 사용하면 승리할 수 있는 전투가 여기에는 없다.

한정된 유닛만으로 싸워야 하며 치밀한 진형과 전술이 없으면 승리는 고사하고 전멸되기 십상이다. 같은 궁병이라도 평지에 위치하는 것과 높은 지대에 자리잡은 명중률이 다르며 숲속의 기마병은 평지보다 느리게 이동한다.

군사의 수가 현격히 차이가 벌어져도 적의 지휘관만 집중 공격하는 전략을 사용하면 승리가 가능하다. 모든 유닛은 전투 경험에 따라 전투력이 다르며 ‘작전상 후퇴’도 농담이 아니라 진짜 활용해야 한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이 사용했다는 전격 작전도 실제 통한다. 아니, 통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이길 수 있다.
 
# 불멸의 게임을 향해
 
‘토탈 워’ 시리즈의 단점은 게임을 컨트롤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10개가 넘는 부대를 유저가 일일이 작전을 짜 지정을 해주고 전투를 벌여야 하기 때문에 천천히 진행되는 게임 화면과 달리 손과 눈은 정신없이 바쁘다.

카메라 시점도 다소 불편해 원하는 장면과 시점을 쉽게 찾을 수 없다. ‘로마’에서 이런 부분을 대폭 개선하고 인터페이스와 전투 명령을 간소화, 심지어는 장군에게 지휘를 맡겨 버릴 수 있으나 게임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유저들이 게임에 선뜻 손을 대지 못하는 몇 가지 요소만 해결하면 ‘토탈 워’는 게임사를 찬란히 장식하며 대중적 성공을 거둘 자격이 충분하다.

이제 막 ‘로마: 토탈 워’가 나왔으나 차기작이 벌써부터 기대되는 것은 개발사와 게임이 주는 믿음에 근거한다. 일본과 중세 시대, 로마 시대를 이어갈 다음 시대는 과연 무엇이 될지…. 1차 세계 대전이나 2차 세계 대전이 될 확률이 높지만 우리나라의 삼국 시대라면 얼마나 즐거울까.
 
김성진기자(김성진기자@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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