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굴의 투지 갖춘 불로불사의 신으로 후대 추양
중국의 시조 황제에 대항했던 동방민족의 영웅
 
파란만장했던 치우와 황제의 큰 싸움, 탁록 대전은 치우의 죽음으로 일단락되는 듯 했다. 그러나 치우의 죽음은 표면상이었지 신화의 세계에서 그는 다시 부활했다. 우선 그는 처형당하자마자 몸을 변화시켰다. 응룡이 그를 잡아 목을 베었을 때 그의 손에는 나무로 만든 수갑, 발에는 족쇄가 단단히 채워져 있었다.

 그런데 그가 죽은 후 그의 피가 흘러 수갑과 족쇄를 적시자 이것들이 홀연 붉은 단풍나무로 변하기 시작했다. 처형을 집행했던 응룡과 이를 지켜보던 황제가 경악했음은 물론이다. 붉은 단풍나무는 치우의 처절한 죽음을 암시하기도 하고 그의 불같은 투쟁 정신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한데 어쨌든 우리는 치우가 인간의 몸은 상실했지만 자연의 다른 형태로 되살아났음을 알 수 있다.
 
# 한나라 고조 치우를 전쟁신으로 섬겨
 
치우의 변신에 놀란 황제는 치우의 시체에 대해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즉 황제는 치우가 머잖아 진짜 몸으로 다시 태어날지도 모른다고 겁을 먹었다. 그래서 황제는 치우의 목과 몸을 한곳에 묻지 않고 서로 멀리 떨어진 지역에 따로 따로 묻었다. 그런데 치우의 목이 묻혀있는 산동성 수장현(壽張縣)에서는 매년 이상한 일이 일어나 다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수장현의 주민들은 해마다 10월에 치우께 제사를 드렸다. 산동성은 원래 치우 일족들이 살았던 터전이기 때문에 주민들은 치우를 여전히 숭배하고 있었다. 그들이 제사를 지낼 때면 무덤 위로 갑자기 붉은 빛의 안개 같은 기운이 나타나 하늘 높이 치솟았다. 사람들은 기운이 하늘에 걸려있다 해서 그것을 치우기(蚩尤旗)라고 불렀는데 치우기는 죽은 치우가 자신의 투혼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징표였다.

후세에 치우의 투혼은 세상을 지배하려는 군주들에 의해 숭배됐다. 한(漢) 나라를 세운 고조(高祖) 유방(劉邦)은 초(楚) 나라의 패왕(覇王) 항우(項羽)와 천하를 두고 다툴 때 치우를 전쟁의 신으로 섬겨 자주 제사를 드렸다. 그는 치우에게 제사를 드리면 맹렬한 투혼의 화신인 치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때문인지 한 나라 때에는 치우 숭배가 하나의 민속으로 자리 잡았다.

 민간에서는 두 사람이 머리에 쇠뿔을 달고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놀이가 유행했는데 오늘날의 씨름과 태권도를 결합한 듯한 이 놀이를 각저희(角抵戱) 혹은 치우희(蚩尤戱)라고 불렀다. 머리에 쇠뿔을 단 것은 소머리를 한 염제 계통인 치우의 모습을 형용한 것이고 힘겨루기를 한 것은 치우의 투쟁 정신을 본받고 기리려는 모방주술적인 행위라고 볼 수 있다.
 
# 산동지방에선 불로불사의 신
 
치우 일족의 고장인 산동 땅에서는 치우 숭배가 그에 대한 완전한 신격화로 표현됐다. 산동 땅에는 해의 신, 달의 신, 산의 신 등 8개의 숭배하는 신격이 있었다. 치우는 이중 ‘병주(兵主)’라는 이름의 신으로 제사를 받았다. 병주란 군대의 신, 전쟁의 신이란 뜻이다.

 한 나라 때에 산동 땅에서는 신선설(神仙說)이 크게 유행했다. 신선설이란 불로불사의 존재, 곧 신선이 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로 불사약을 만드는 비법이라든가, 신선들이 사는 삼신산(三神山)에 대한 설화 같은 것들이 그 내용을 이루고 있다.

산동 땅에서는 방사(方士)라고 부르는 마술사들이 활약했는데 이들은 불사약을 만들 때 치우신을 비롯한 산동 땅의 여덟 신에게 제사를 드려야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여기에서 치우가 그의 불굴의 투지, 불멸의 변화술로 인해 불로불사의 경지를 달성해주는 신으로까지 간주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당시 사람들이 치우가 사라졌을 뿐 결코 죽지 않았다고 믿었던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중국에서 치우가 좋은 이미지로만 찬양된 것은 아니었다. 고대 중국의 청동기에는 도철(??)이라는 괴물이 새겨져 있었다. 이 괴물은 툭 튀어나온 두 눈과 크게 벌린 입만 있고 몸은 없었다. 이 괴물은 그칠 줄 모르는 탐욕의 상징으로 청동기에 새겨져 후세 사람들에게 교훈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바로 이 도철이 목이 잘려 죽은 치우의 모습을 새겨놓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분수를 모르고 황제에게 덤볐다가 죽은 치우의 흉측한 모습을 청동기에 새겨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지 않도록 경계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치우를 몹쓸 반역자로 보는 일부 중국 사람의 시각에서는 그러한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 고구려에선 대장장이 신으로 표현
 
치우는 동이계의 영웅이었던 만큼 우리 민족에게도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대장장이신이 등장하는데 훌륭한 무기 제작자인 치우는 대장장이신이기도 했으므로 치우를 표현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각저희를 하는 장면도 벽화에 남겨져 있는데 역시 고구려에서 치우를 숭배했다는 증거이다.

 최근 월드컵 경기를 전후해 한반도는 온통 붉은 악마의 응원 열기에 휩싸였고 그들을 상징하는 깃발에는 치우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치우의 불굴의 투지가 시공을 초월해 붉은 악마로 부활한 것이라고나 할까?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로 오늘날 중국인의 시조로 추앙되는 황제와 투쟁했던 치우가 당시 우리 민족을 포함한 동방 민족의 영웅이었음을 재확인할 수 있다.

치우:염제의 후예. 동북지역 구려의 신으로 황제에게 대항해 전쟁을 일으킨다. 탁록의 전쟁 이후 새로운 형상으로 변화해 초월적인 세계로 승화한다.
염제:불을 관장하는 농업과 의술의 신(神). 인간에게 이로움을 준 공로를 인정받아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의 경계를 약속하는 성지(聖地) 판천(阪泉)의 수호자가 됨
형천:황제에 의해 목이 잘리게 되지만 굴하지 않고 젖가슴을 눈으로 삼고 배꼽을 입으로 삼아 춤을 추며 불멸하는 투혼을 보여준다.
제준:10개의 해와 12개의 달, 온갖 새들의 왕 소호를 비롯한 수 많은 신(神)들, 그리고 은 민족, 삼신·사유·중용·백민 등 많은 종족과 나라들의 시조가 되는 동방의 천신
 
정재서(이화여대중문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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