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끓는 열여섯 청춘 진솔한 내면 엿보기
 
열여섯 살 소년에게는 세상이 불만투성이인 법이다. 그 나이에 이 세상이 살만한 것이고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이제 더 이상의 미래가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해도 좋다.

 그때부터 내리막길만 남은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아직 세계의 정체에 대해 모르며, 출구 없는 길을 질주하는 스포츠카 처럼 좌충우돌 이쪽저쪽의 벽에 격렬하게 머리를 부딪친다. 어디가 출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질풍노도의 시절을 보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젊었고/오만했으며/우스웠고/극단적이었으며/성급했었다. 그래도 우린 옳았다”(호프만) ‘마지막 키스(2001년)’ ‘리멤버 미(2002년)’ 등으로 이탈리아에서는 대중적 폭발력을 갖고 있는 가브리엘 무치노 감독의 초기작 ‘나에게 유일한(1999년)’은 고통스러운 청소년기의 통과제의를 다룬 작품이다.

학교에서는 획일적 교육을 강조하는 학교 권력에 맞서 친구들과 함께 농성을 하고 집에서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님과 사사건건 대립한다. 가까운 친구는 자신의 비밀을 주위 사람들에게 누설해 배신감을 맛보게 하고 첫 키스를 한 여자는 갑자기 냉랭한 시선으로 절교를 선언한다.

‘그놈은 멋있었다’나 ‘늑대의 유혹’과 비슷한 나이의 주인공들이 등장하지만 현실을 벗어나는 팬터지는 없다. ‘나에게 유일한’이 열여섯 피 끓는 그 시절을 통과한 관객들에게 깊은 동감을 불러일으키고 감동을 주는 이유는 현실에 밀착해서 전개되는 이야기, 생생하게 구축된 캐릭터, 정직한 연출 때문이다. 관객들의 말초적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억지로 삽입된 이야기, 비현실적 캐릭터 같은 것은 없다. 열여섯 젊은 청춘의 내부로 깊숙이 들어가 그들과 같이 호흡하면서 폭발할 듯한 에너지를 두레박으로 길어 올렸기 때문이다.

영화의 처음에 섹스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찬 십대 소년들의 고백이 있고 마지막에 첫 섹스의 경험이 펼쳐진다. 영화의 처음과 끝에 이렇게 소년에서 성년으로 통과해 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섹스를 위치시킴으로써 호기심을 집중시키고 대중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그러나 그것은 내러티브의 필연적 전개과정에서 생성된 것이다. 우리는 절대 상업적 의도에서 섹스가 노출된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만큼 섹스는 주인공들의 진정성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부당한 학교 당국의 처사에 항거하기 위해 친구들과 학교를 점거하고 농성하는 그들의 정치적 의식은 사실 빈약하다. 지도자격인 학생은 경찰에 붙잡힌 뒤에는 변호사인 아버지를 앞세워 먼저 빠져나가려 하고 다른 학생들도 역시 정신적 사치로 농성을 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68세대인 그들의 부모세대가 격렬하게 투쟁했던 파시스트와의 투쟁은 이제 사라졌다. 본질은 없고 코스튬만 남은 불안한 혁명기의 아이들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이 아이들의 티셔츠에 인쇄된 체 게바라의 모습이다. 혁명가 체 게바라는 이제 패션 아이콘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러나 한때는 격렬한 체제의 저항아였던 68세대 역시 이제는 사회의 주류세력으로 편입되면서 부르조아적 일상을 보내고 있는 모습들을 보여줌으로써 감독은 정치적 균형감각을 찾으려 한다.

주인공 실비오 역의 실비오 무치노는 감독인 가브리엘 무치노의 친동생이다. 실비오는 자신의 여자 친구, 그리고 감독인 형과 함께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집필하기도 했다. 학교와 가정과 친구들로 둘러싸인 열여섯 청춘의 모습이 이렇게 솔직하고 이렇게 강력하게 묘사된 영화를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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