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판에도 '거장'을 보고싶다
 
“뭇 백성이 기댈 만한 곳이 아무 데도 없습니다. 진경이 아닌 선경으로 그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다면 그 또한 환쟁이들의 천명이 아니겠습니까. 그림은 그림일 뿐 입니다.”

영화 취화선의 한 대목이다. 이 대사에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관이 그대로 베어나오는 듯하다. 그는 30년 동안 영화판에서 무수히 많은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 중에는 예술작품으로 불릴 만한 것도, 저급한 상업적인 작품도 또 성공한 작품도 실패한 작품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이 말은 아무리 작품에다 고매한 뜻을 달고 가치를 매기고 미사어구로 찬양하고 이론적으로 해석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작품일 뿐, 그것 이상의 가치 부여는 허무하다는 말 일 것이다.

영화란 무엇인가. 1900년 초에 영사기의 발명 이후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 대중에게 무궁한 위안을 준 ‘오락기’가 아니던가. 영화를 만들던 사람이나 영화에 출연한 사람이나 영화 관계자들이나 오랜 세월 동안 자신들의 천명을 다해 일해왔고, 그것은 아직도 황금알을 낳는 산업으로 지속돼 오고 있다. 젊은 시절 영화감독으로 입문해서 영화감독으로 생을 마감한 사람도 지금 생각해 보니 무수히 많다.

그러면 과연 게임도 게임개발자로서 생을 마감하는 천명을 가진 사람이 나올 것인가. 물론 게임은 영화보다 늦게 등장한 콘텐츠다. 더군다나 PC게임은 영화관 대신 PC라는 플랫폼이 자리잡은 후에야 등장한 콘텐츠이고, 게다가 초고속통신망이 등장한 후 나오기 시작한 온라인 게임이야 족보로 따지면 갓 태어난 아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과연 이 게임분야에도 영화판처럼 머리가 희끗해지고 인생의 전부를 바쳐 한 우물을 파는 그런 제작자가 나올 것인가.

물론 가능성은 있다. 단 게임작품의 성공이 제작자의 명성을 보장하고 그 제작자가 향후 성공 작을 지속적으로 발표해서 경제적으로 살아 남는다는 가정 하에서 말이다. 반대로 제작자가 이러한 경제적인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지속적인 게임 제작은 힘들 것이고 이것은 끊임없는 세대교체라는 모양새를 띄게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앞으로 머리가 희끗해진 게임제작자를 보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 같다. 우선 길고 긴 개발기간이 문제이다. 개발기간이 긴 만큼 작품의 승패에 따라서 게임회사의 존폐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물론 회사는 없어진다 하더라도 개발자는 남는다. 다른 회사로 스카우트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러나 그가 독립적인 장인이 될 확률은 그 만큼 희박 해지는 것이다.

또 하나 게임 개발자들은 흔히 ‘쟁이’ 나 ‘딴따라’라고 불리는 기질에서 한 수 밀린다. 신명을 다해 제작을 감당할 수 있는 기간은 인생 전체에 비추어 짧은 기간이다. 그 만큼 하는 일에 빨리 질려버린다고 볼 수 있고, 일 자체가 컴퓨터 모니터와 자판기와 씨름하는 것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 할 수도 있다. 이세상 어느 누가 인간이 아닌 컴퓨터와 작업하면서 평생을 보낼 수 있을까.

하지만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노련한 개발자는 게임제작이 영화제작보다 훨씬 어려운 현실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도 머리가 희끗희끗 해질 때까지 게임판을 외롭게 지킬 진정한 개발자들을 원한다. 그리고 그들이 언젠가 이런 말을 해주기 바란다. “게임은 게임일 뿐 입니다. 우리는 천명을 다해 게임을 만들었으니 대중이 그것을 단지 게임으로 즐겨주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이젠사장(saralee@e-z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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