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PC게임 국산 1호 살아있는 전설을 만나다
 
‘국산 창작 게임 1호의 전설을 만나다’

국산 창작 게임의 역사는 아직 채 20년도 안될 만큼 일천하지만 그 포문을 연 개발자가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남인환(35).

흔히 남 감독이라 불리는 그는 87년 고등학생 신분으로 1호 창작 게임 ‘신검의 전설’을 내놓았다. ‘울티마’에 푹빠져 있던 그가 애플컴퓨터를 붙잡고 수개월 씨름한 끝에 만들어 낸 것이 국산 창작 게임의 효시다.

87년 ‘신검의 전설’로 시작해 최근 온라인 게임 ‘프리프’를 개발하기까지 17년이란 시간 동안 게임 개발에 매진해온 이온소프트의 남인환 부사장을 만나 짧지도 길지도 않은 괴짜 개발 인생에 대해 들어봤다.

# 전설을 만들다

남 부사장이 게임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초등학교 3학년. 외가집에 놀러가 삼촌들이 즐기는 ‘벽돌깨기’ 등의 게임을 접하면서 부터다. 운 좋게도 남 부사장의 외가는 공대 출신이 많아 일찍부터 컴퓨터를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처음 게임을 맛본 후 컴퓨터를 갖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졸업할 때까지 한 10만원 정도 모았던 것같네요. 이를 기특하게 여긴 부모님이 10만원 정도 보태서 사준 애플 컴퓨터가 게임 개발과 인연을 맺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애플 컴퓨터와 씨름하며 프로그램을 익히던 그가 본격적으로 게임 개발에 나선 것은 건대부고 전산부에 들어가면서 부터다. RPG 게임의 대명사인 ‘울티마’를 접하면서 자신도 한번 이런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던 남 부사장은 혼자 그래픽과 프로그램을 모두 짜는 신기를 발휘하며 ‘신검의 전설’을 개발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는 게임 시장의 개념조차 없던 시절. 그런 상황에 고등학생이 만든 게임이 정식 패키지로 출시됐다는 것조차 기적이다.

당시 이 게임의 유통을 맡았던 아프로만이란 회사를 찾기까지 남 부사장이 치기어린 심정으로 청계천을 이러저리 뛰어다니지 않았다면 ‘신검의 전설’은 아마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 애플 게임에서 온라인까지

국내에 개발환경이 원숙해지기 전부터 개발에 나섰던 덕택에 남 부사장은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신검의 전설’ 후속으로 개발했던 잠입액션게임은 세상에 빛을 보지도 못했다.

“‘잠입액션게임의 개발을 거의 마칠 때 쯤이었던 것같습니다. ‘신검의 전설’처럼 애플용으로 게임을 개발했는데 정부에서 교육용 PC로 IBM 16비트 컴퓨터를 선정하는 바람에 게임 출시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땐 아무 생각없이 프로그램 자체를 날려버렸는데 남겨뒀다면 지금 에뮬레이터라도 즐길 수 있는 좋은 자료였는데 아쉬움이 남더군요.”

게임 업계에 이름 날리기 시작한 그를 잡으려는 회사들도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 개발자 송재경과의 조우다. 남 감독의 전력을 익히 들어온 송재경이 당시 머그게임을 같이 개발해보지 않겠냐고 제의해 온 것.

하지만 당시 게임업계에서는 아무도 송재경의 프로젝트가 성공할 것이라고 보지 않았다. 물론 남 감독도 마찬가지 생각이었기 때문에 이 제의를 거부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1호 창작 게임에 이어 국내 게임사에 기록될 또 하나의 작업에 동참하지 못한 아쉬운 결정으로 남는다.

# 고등학교 친구와 의기투합하다

남 부사장은 ST랩, 엑스타시엔터테인먼트, 디지털임팩트, 사이오넥스 등 여러 곳을 거치며 ‘신검의 전설1, 2’ ‘에이리언 슬레이어’ ‘아케인’ 등 다양한 작품을 개발했다. ‘아케인’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날 무렵, 그는 2002년 건대부고 전산부 동기인 김광렬 사장과 의기투합해 이온소프트를 설립한다.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모두 쏟아낸다면 작품성과 흥행 모든 면에서 부끄럽지 않은 타이틀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뭔가 새로운 게임을 만들기 위해 착안 것이 하늘을 나는 ‘플라잉’이라는 요소였습니다. 여기에 기존 RPG들의 장점을 버무려 탄생한 것이 ‘프리프’입니다. 어느날 방랑자 앞에 떨어진 비공정. 이에 대한 비밀을 풀고 비공정을 타고 공성전까지 펼치는 것이 ‘프리프’의 세계입니다”

# B급 감성의 괴짜 개발자

‘프리프’라는 게임을 접했을 때와 남 부사장을 만난 느낌은 사뭇 다르다. ‘프리프’가 아기자기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귀여운 게임인 것과 달리 남 부사장에게는 다소 마이너틱한 감수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가 앞으로 만들고 싶은 게임도 SF, 호러, 성인물 등 시장에서도 마이너 장르에 속하는 부류다. 이런 불일치에 대해 그는 “시장성을 생각하다보니 그동안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지는 못했다”며 “모든 개발자들이 돈을 벌면 자신만의 색깔을 담은 게임을 만들고 싶어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독특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87년 ‘신검의 전설’을 내놓은 이후 그는 잠시 영화배우로의 외도를 감행한다. 90년에는 국내 단편영화 역사에서 빼놓지 않고 언급되는 ‘호모비디오쿠스(감독 이재용, 변혁)’의 주연으로 출연했다.

이 영화를 찍은 이재용 감독은 최근 ‘정사’ ‘순애보’ ‘스캔들’로 스타 감독 대열에 오른 사람. 또 93년에는 ‘무사’로 유명해진 김성수 감독의 단편 ‘비명도시’에도 단역으로 출연했다. 영화아카데미 출신의 형을 둔 배경 탓에 영화와도 묘한 인연의 끈을 맺게 된 것.

“게임으로 돈을 번다면 조감독인 형부터 시작해 내가 아는 사람들을 모아 삼류 호러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삼류라고 표현하지만 혹시 우리 형제가 한국의 코엔형제가 될지 또 모르는 일 아니겠습니까?”

남 부사장과의 인터뷰는 이렇듯 유쾌한 농담으로 마무리됐다. 1세대 개발자, SF, 호러, 성인물을 좋아하는 B급 감성의 소유자, 거기다 3류 호러영화를 꿈꾸는 남인환 부사장이 만들어낼 차기작이 더욱 궁금해지는 것은 기자 혼자 만은 아닐 것이다.
 
김태훈기자(김태훈기자@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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