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뇌신까지 불러내 재공격 채비 갖춰
 
“공격!”

황제는 마침내 전군에 진격 명령을 내렸다. 우선 말의 다리를 지녀서 하루에 천리를 가는 정령국(丁令國)의 부대를 선봉으로 세우고 솜씨좋은 외팔이 기굉국(奇肱國) 사람들이 만든 수레를 빽빽이 배치한 후 치우의 진영을 향해 공격을 명했다.

이번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전쟁은 장기화될 것이다. 장기화되는 전쟁은 아무것도 유리할 게 없었다. 지금은 치우의 하극상을 응징한다는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전쟁이 장기화되면 잠잠한 다른 신들까지 들썩거릴지 모를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황제는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도 발 빠른 정령국 사람들을 선봉으로 뽑았으니 이번 전투는 속전속결로 승리할 수 있겠지”하고 삼군(三軍)의 지휘 전차에 올라 전황을 살피는데, 예상치 못한 결과가 눈에 들어왔다.
 
# 용맹한 묘민들의 활약
 
삼묘의 출현으로 사기백배(士氣百倍)해진 치우군은 잠시도 쉬지 않고 무서운 속도로 황제군의 공격에 맞공격을 해 왔던 것이다.

더욱이 힘세고 사납기로 용맹한 삼묘의 묘민들은 제 몸을 돌보지 않고 선봉에 서서 황제군의 진영으로 돌진해 왔다. 변방의 묘민들은 황제가 하찮은 인간이라고 천시했던 일 등, 그의 부당한 처우와 모욕을 하나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황제의 지휘 전차를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다.

“황제다! 이제야말로 그에게 우리 삼묘의 힘을 보여줄 때다!”

그 말을 듣기가 무섭게 삼묘의 정예군들은 앞을 다투어 황제의 전차를 향해 달려들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벌떼처럼 달려드는 묘민들을 보고 황제는 흠칫 몸을 떨었다.

그래서 황제는 어쩔 수 없이 몸을 빼내어 피하기로 했다. 지금 치우군의 예봉(銳鋒)을 꺾는 길은 그 방법뿐이었다. “퇴각하라!” 황제가 타고 있는 지휘 전차는 하늘로 훌쩍 떠오르더니 후방을 향해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그대로 물러났다.

그러자 판천의 들을 거의 뒤덮었던 황제의 대군 또한 썰물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물러나기 시작했다.
 
# 퇴각하는 황제
 
하지만 대치 중인 치우의 눈에 그 퇴각의 행렬은 상당히 정연했고, 그것은 아직 황제군의 전열이 흩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치우는 일단 전군에게 추격하지 말 것을 명했다.

그러나 황제의 참 모습을 보고 그 동안의 분노가 폭발한 삼묘의 정예군들은 공격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삼묘의 우두머리를 비롯 이성을 찾은 몇몇은 전투의 수장(首將)인 치우의 말에 따라 퇴각했지만, 혈기 들끓는 젊은 용사들은 내친걸음에 황제의 수레를 쫓아 황제 진영 깊숙한 곳까지 따라 들어가고 말았다.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부나비처럼 그들의 운명은 뻔한 것이었다. 제아무리 뛰어난 정예군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황제군 전체를 당해낼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황제의 진영 깊숙이 쫓아 들어간 삼묘의 젊은 용사들은 그대로 차갑게 식은 주검이 되어, 머리나 팔이 없는 온전치 못한 모양새가 되어 돌아왔다.

묘민의 진영은 순식간에 비탄에 빠졌고 이 사건으로 인해 맹렬했던 삼묘의 예봉은 일단 꺾였다. 그런 까닭으로 선제공격 중 퇴각이었지만 결과는 황제에게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표면상 치우군의 승리처럼 보이는 다섯 번째 싸움이 끝난 뒤에 탁록의 전투는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 도깨비들의 도움을 얻어라
 
폭풍전야와도 같은 그믐밤에 탁록의 벌판을 바라보면서 치우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장기전으로 갈수록 전쟁이 몸에 익지 않은 구려군과 삼묘군의 연합은 불리했다.

황제의 군대는 이미 수없이 많은 전쟁을 치러낸 경험이라는 무엇보다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 무기는 때로 잘 벼려진 칼이나 창날보다 두려운 것이었다. 아직 삼묘와 구려군의 사기가 살아있을 때 전투를 마무리지어야 했다.

전쟁이 길어진다면 어떤 신도 치우의 편에 서 주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정면으로 맞붙어 싸우는 일은 치우군에게 수적으로 불리했다. 비교가 되지 않는 병력의 차이를 줄일 방법이 없을까 고심하던 치우는 널려진 산과 시내에 깃들어 살면서 신과 인간 사이를 제 멋대로 오가던 산도깨비 이매와 물도깨비 망량들을 생각해냈다.

황제가 세상의 주인이 된 뒤로 천진한 그들은 또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았던가? 그들은 마음껏 하늘과 땅 사이를 누리던 과거의 자유를 아직도 꿈꾸고 있었다. 구려의 사람들은 평소 그런 그들을 이해하고 친구로서 받아들여 주었다. 이 때문에 이매 망량의 무리가 구려의 백성들을 둘도 없는 벗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치우는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을 끌면서 치우군의 날카로운 기세가 꺾이기를 기다리던 황제는 전군의 전력이 회복되자 다시 한 번 출동 계획을 세웠다. ‘이번에야말로 버릇없는 치우와 그의 형제들을 제압하고 더 이상 이 같은 분란이 일어나는 일이 없도록 단속하리라.’ 황제는 내심 이번 전투를 이 전쟁의 마지막 싸움으로 작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되는 전투에서 황제 역시 수적인 우세만으로는 치우군을 제압하기 힘들다는 나름의 판단을 내린 참이었다. 더 이상 쓸데없이 힘을 낭비하지 않고 싸움에서 이길 방법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황제는 마침내 저 깊고 신비한 못 뇌택(雷澤)에 몸을 담그고 숨어살면서 그의 명령만을 기다리던 뇌신(雷神)을 불러냈다.

<사진설명>

뇌신:뇌택에 사는 우레의 신. 신수 기의 가죽으로 만든 북을 치기 위한 북채로 뇌신의 뼈가 사용된다.
이매:깊은 산세 숨어사는 산도깨비로 사람의 얼굴에 원숭이 같은 몸을 하고 있다.
망량:북쪽의 천신 전욱의 아들로 약수에 머물러 사는 물도깨비
정령:무릎 아래쪽에 털이 많고 말발굽을 한 사람들. 걸음이 무척 빨라 달리는 말을 쫓아갈 수도 있다.
오회:축융의 아우이며 불을 다루는 자, 야장의 비술을 간직한 자. 초(楚)의 선조라고도 함.
장비:동해 먼 곳에 산다는 팔이 긴 이민족. 한쪽 팔의 길이가 3길이라고 한다.
 
정재서(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저작권자 © 더게임스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