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1세대 '젊은 철학자'
 
게임의 바닥부터 시작해 국산 전략시뮬레이션계를 이끌었고 게임개발자협회를 설립, 사비를 털어가며 지금까지 이끌고 있는 남자. 정무식 과장은 국내 게임 산업의 든든한 일꾼으로 밝은 미래를 가져다 줄 인물이었다.

"본질적인 것에 대해 고민하라. 제가 강의할 때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왜 버튼이 동그라미고 색깔은 녹색이며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과 연구하는 자세가 개발자에게 필요합니다. 그 곳에서 창의력과 아이디어가 생기는 거죠."

요즘 횡행하고 있는 국내 게임계의 베끼기 실태에 대해 정무식 과장은 이렇게 말했다. 많은 개발자들이 유명한 게임들의 시스템을 아무 생각없이 그대로 갔다 집어 넣는 일이 많다며 자신이 강의하는 학생들에게 말했던 내용을 언급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정무식 과장의 눈빛은 흡사 무술의 고수처럼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 국내 게임 태동기부터 함께한 인생

열악한 국내 게임판을 만들고 바닥부터 시작해 온갖 고생을 맛봤던 사람들이 있다. 이원술 사장이나 최연규 실장, 홍동희 사장, 정영희 사장 등이 그들이며 이들을 가리켜 흔히 게임 1세대라 부른다. 그러나 여기에 빠지면 슬퍼할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정 과장이다.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사장 못지 않은 이력을 가지고 있다. 94년에 김문규 사장과 함께 트리거소프트를 하숙집(!)에서 창립해 슈팅게임 ‘인 투 더 선’을 만들었고 95년에 독자 타이틀 ‘라스트 레이버즈’를 개발해 인정받아, 자취방에서 조금 넓은 오피스텔로 이사했다. 이 게임은 전략 시뮬레이션이었고 턴 방식이었지만 오렌지소프트를 통해 국내에 유통, 당시로선 성공했다.  

하지만 당연히 월급같은 것은 없었고 미래에 대한 비전도 뚜렷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HQ 팀과 ‘충무공전’을 만들었는데 이게 대박이었다. 국산 게임 중에서 전략 시뮬레이션은 극히 드물었고 ‘워크래프트’로 넓어진 시장에 때마침 편승돼 성공한 것이었다.

계속해서 ‘장보고전’도 만들고 ‘충무공전2’도 개발하다 보니 트리거소프트가 국산 전략시뮬레이션의 명가로 인식됐고 정무식이라는 이름도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퇴마전설’로 롤플레잉과 전략 시뮬레이션을 결합한 시도로 유저들의 인정도 받았고 트리거 소프트 마니아도 생겨나 전성기를 달리기 시작했다.

"많은 것을 경험했고 얻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당장 먹고 살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지 못했던 점이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정 과장은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 최소한 2년 이상이 필요한데 국내에서는 1년에 타이틀이 1개 정도 나오지 않으면 회사가 굶는다는 현실이 뼈져렸다고 덧붙였다.

# 병특을 5년이나 한 사람

엔씨소프트로 옮기는 것도 쉽지 않았다. 2003년 3월에 병특이 끝났고 2003년 7월에 엔씨소프트로 옮겼으며 2003년 8월 대학을 졸업했는데 그 사연도 기막히다.

"국방부와 3심까지 재판하고 병특을 겨우 해결했습니다. 이유요? 제가 트리거소프트의 이사로 있었는데 임원은 병특의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사항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법정싸움을 한 5년 했고요. 병특 대상자는 대학을 졸업하면 모든 것이 무위로 끝나 입대를 해 다시 시작해야한다고 해 졸업도 계속 연기한 거죠."

하지만 많고 많은 게임 회사 중에서 특별히 엔씨소프트를 선택한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군대문제가 마무리되면서 정말 많은 회사에서 절 불렀습니다. 여기 연봉의 2배를 준다는 곳도 있었어요. 하지만 좋은 조건 다 뿌리치고 엔씨소프트를 선택한 것은 대기업에서 배울 점이 많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들어간 엔씨소프트는 자신의 생각대로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고 한다. 대기업들이 하는 일이 소모적인 것 같지만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고 조직이 크고 부서가 많아 일 진행이 빠르진 않지만 정말 여러가지를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 MSN 게임에서 새로운 분야 개척

그러고 보니 지금 뭘 하는지 묻지도 않았다. 정무식 과장 정도면 대단한 게임을 엔씨소프트에서 히든 카드로 준비할 법도 하다.

"지금은 MSN 게임 분야 기획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토이 스트라이커’를 지원했고요."

정 과장의 손에는 방금 회의에 참고했다는 두툼한 기획서가 들려져 있었다. MSN 게임이 엔씨소프트와 손을 잡았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고 답보상태에 있어 자신에게 맡겨졌다는 설명과 함께 메신저를 이용한 게임은 MMORPG, 고스톱과 같은 캐주얼게임과도 또 다르다고 강조했다. 자신은 여러 사람이 어울려 재미있게 즐기는 게임을 좋아하지만 채팅을 목적으로 하는 유저에게 재미를 선사하는 게임이란 어떤 것일까를 고민하고 있다고. 그는 개발자지만 유저 입장을 먼저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 회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사나이

정 과장은 회장이라는 또 하나의 명함을 가지고 있다. 게임개발자협회를 혼자 힘으로 만들어 지금까지 이끌었고 얼마전에는 사단법인으로 등록까지 했다.

"사단법인으로 등록하면 조건이 붙습니다. 일정한 공간을 가져야 하고 상주하는 직원이 있어야 하는 것 등 이죠. 지금 개발원 건물에 직원 2명이 있는데 가끔 제가 월급을 줍니다. 하하하…." 어색한 웃음을 보인 그는 협회를 통해 돈을 벌 생각은 추호도 없고 게임 개발자간의 정보 공유와 커뮤니티 형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협회의 존재 가치를 설명했다.

그는 비록 스물아홉살이었지만 중년같은 인생의 깊이를 지녔으며 자신이 선택한 길에 확고한 신념을 가진, 진정한 남자이자 게이머, 개발자였다. 우리의 게임이 해외에서 활기찬 날개짓을 할 때 그 선봉에는 정무식 과장이 서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김성진기자(har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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