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군 앞세워 탁록에 나타난 황제와 건곤 일척의 일전
 
이날 아침은 마른 바람이 불던 어제와 달리 습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이 사방 팔방에서 불어왔다.

하늘은 여전히 노을마냥 붉게 물들어 있었다. 치우군이 천천히 일어나 판천으로 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할 때였다. 갑자기 쿵쿵하고 유망이 달아났던 남서쪽에서 지축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달아난 유망의 소식을 듣고 격분한 황제가 직접 군대를 끌고 달려오는 소리였다. 잠시 당황했으나 곧 침착함을 찾은 치우는 군대를 독려하여 서둘러 무기를 들고 대오를 갖추도록 명령했다.
 
# 탁록의 들판에서 만난 양 진영
 
탁록의 들판 끝으로 드디어 황제군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어제의 숫자에는 비길 수도 없을 만큼 어마어마하게 많은 수의 군대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황제를 상징하는 용이 그려진 누런 깃발이 셀 수 없을 만큼 들판의 가장자리를 덮어 마치 황룡(黃龍)이 춤을 추듯 꿈틀거렸다. 그 엄청난 수에 용감한 아홉 군대의 얼굴에도 잠시 공포가 스쳤다.

 “침착하라. 우리에게는 갑옷과 투구와 좋은 무기가 있다.” 치우는 군대를 독려하며 맨 앞에 나섰다. 그랬다. 처음에 황제가 그 수를 믿고 단숨에 쓸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치우의 군대에게 패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갑옷과 무기의 힘에 밀렸기 때문이었다.

이제까지 갑옷의 쓸모조차 알지 못하던 사람들은 든든한 갑옷으로 무장한 치우군의 모습에 간담이 서늘해졌고, 미리부터 겁을 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도망간 병사들의 입을 통해 이때부터 치우와 그들의 무리는 쇠를 먹고 모래를 씹는 사람들로, 철로된 머리와 구리로 된 이마를 가진 동두철액(銅頭鐵額)이라는 별명이 따라붙게 되었다.

 “황제여, 귀를 열고 들으시오!” 치우가 앞으로 나서며 황제군을 향해 외쳤다.

“그대는 세상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하늘과 땅의 사이를 갈라버리고 사람들을 모독하고 핍박했으니 이것은 천지가 열리고 만물이 생겨난 뜻을 해친 것이오! 우주에 생겨난 모든 것은 함께 어울리고 모두가 평등하게 나고 자라난 그대로 두는 것이 바로 올바른 이치인 것이오! 이제 내가 그 순리를 따르지 않는 모든 신들과 인간들과 생명을 가진 것들과 세상에 자리한 모든 것을 대신하여 그대를 벌하니 그대는 조용히 앞으로 나와 죄를 고백하고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시오! 만약 이에 따르지 않는다면 천지가 노하고 만물이 일어날 것이오.”
 
# 세번째 전투에서도 기선 제압한 치우
 
눈살을 찌푸린 황제는 오만한 표정으로 이것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공격!” 마침내 치우의 명령이 떨어지자 군사들은 깃발을 앞세우고 엄청난 함성을 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번에 치우는 아홉 군대를 둘로 나누어 좌우에서 공격하도록 명령하고 자신과 형제들은 가운데를 공격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안개를 피워 올려 적의 시야를 흐렸다. 안개 사이로 이쪽 저쪽에서 튀어나오는 치우군을 맞아 황제의 군대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적인지 같은 편인지도 구분하지 않고 무조건 칼을 휘둘러 대어 자기들끼리 목을 베기도 했다.

 쓰러져 죽은 군사들의 피가 내를 이루어 들판을 적셨다. “후퇴하라! 퇴각하라!” 황제의 명령이 떨어지자, 안개 속에서 이리저리 허둥거리던 황제의 군사들은 뒤쪽을 향해 내달렸다. 이 세 번째의 일전도 또한 치우군의 승리였다.

황제는 흩어진 군대를 정비하고 전열을 가다듬어 다음 진격을 준비했다. 비록 첫 전투에서 패했지만 황제에게는 목표를 위해서는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지지치 않는 마음을 가진 무적의 병사들이 있었다.

그것은 앞서 미리 준비시켰던 숙촉국(叔?國)?중용국(中容國) 등 유사 주변의 나라들에서 길들이고 훈련시킨 곰·표범·말곰·호랑이 같은 4가지 짐승으로 구성된 부대였다. 전투에 있어서, 그러한 맹수들은 분명 사람들보다 강인한 마음으로 임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동물 군대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오랫동안의 굶주림으로 살기를 키워 온 그런 짐승들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 황제, 동물군 앞세워 전세 반전
 
치우의 군대가 멈칫하는 마음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동안, 황제의 동물 군대는 치우의 진영 깊숙한 곳까지 단숨에 달려왔다. “이런 일이...” 치우는 바드득 이를 갈았다.

아무리 잇단 패배에 몸이 달았다고는 하지만, 쉬고 있는 적군을 습격하는 것은 큰 신의 군대가 아니라 잡신들 같은 무뢰배나 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치우는 허둥지둥 자신의 형제들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워낙 수적으로도 열세했던 치우의 군대는 한 번 기선을 제압당하자 좀처럼 황제의 군대를 뚫고 나갈 수가 없었다. 더욱이 적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나운 짐승들이 아닌가. 그것은 싸움이 아니었다.

황제가 보낸 맹수의 무리는 말도 통하지 않았고 맞닥뜨려 물리칠 수 있는 그런 상대도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몰아닥치며 보이는 대로 먹어치우거나 짓밟았다. 사방으로 피가 튀고 살점이 나가 떨어져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두려워 물러서는 일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그저 굶주린 짐승들이었기 때문이다. 치우의 형제들은 온 힘을 다해 싸웠지만, 구려의 백성들은 이미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사방에서 굶주린 맹수 떼에게 짓밟히고 있었다.


[사진설명]
도견:궁기와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식인 괴물. 몸빛이 푸르며 생김새는 개를 닮았다
궁기:규산에 사는 식인 괴물. 사막의 바람속에서 태어났다고 하며, 사막의 바람을 일으킨다.
시육:곤륜에 사는 생물. 고기를 베면 베인 자리에서 다시 살이 자라나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므로 아무리 먹어도 없어지지 않는다.
무지기:회수의 소용돌이 속에 사는 물의 정령. 9마리 코끼리보다 힘이 세며 바람처럼 빠르다.
무상:땅 속이나 물속에 사는 요괴. 죽은 사람의 간을 좋아하며 호랑이와 잣나무를 무서워한다.
 
정재서(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저작권자 © 더게임스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