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끼 주체 못해 하루 24시간 게임 생각
보람 · 좌절 교차 다이나믹한 삶에 매력
 
# 게임 마니아에서 개발자로

‘화요 데이트’를 위해 몇달 만에 다시 정사장을 만났다. 이번에는 사업 얘기가 아니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함께 점심식사를 하며 10여년 전 과거로 돌아갔다.

어떻게 게임과 인연을 맺게 됐느냐는 물음에 정사장은 이렇게 답했다. “어려서부터 게임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특히 일본 코에이사의 ‘삼국지’ 시리즈에 푹 빠졌었는데 게임을 하면서 ‘내가 만든 게임을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렇게 해서 직접 게임을 개발하기로 마음먹은 정사장은 백방으로 수소문을 하던 끝에 게임에 관해서는 미리내소프트웨어와 막고야가 각각 어셈블리와 C언어의 최고봉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는 국내에 미리내, 막고야, 소프트액션 등 3개의 개발사가 게임개발업계의 전부였죠. 당시 비록 소규모 개인회사였지만 '그날이오면' 시리즈로 가장 유명했던 미리내소프트웨어를 찾아가 월급도 필요없고 게임개발만 가르쳐 달라고 문턱이 닳도록 찾아갔어요.”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정사장은 꿈에도 그리던 미리내소프트의 명함을 받아들 수 있었다. 처음으로 명함을 받던 날 그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이 기뻤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그가 개발하거나 기획한 게임은 코믹자동차 레이싱게임 '카트레이스', 무궁화위성 발사기념 게임 '사이버폴리스', '아트리아 대륙전기', '드로이얀I', '아라크네', '칸온라인' 등 이었다.

# ‘칸온라인’과 ‘디오’에 각별한 애정

10년 세월 동안 많은 게임을 개발하고 기획했을 텐데 그 중에서도 가장 애정이 가는 게임이 있을 법 했다.

“제가 직·간접으로 참여한 작품 모두에 애정이 가는건 당연하지만, 가장 최근에 정말 멋진 몽골제국을 온라인게임으로 완성하고 싶어서 직접 기획하고 개발에 비지땀을 흘렸던 '칸온라인'에 가장 애정이 많이 간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러나 그는 '칸온라인'의 완성을 보지못한 것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을 것이라고 털어 놨다.

물론 지금은 현재 오픈베타서비스 중인 '디오(d·o)'에 가장 애정을 쏟고 있고, 평소에는 게임을 하기 힘들어도 휴일엔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종일 작심하고 '디오'를 플레이하고 있다.

이런 열정 때문에 게임개발자들도 정 사장의 말이면 꼼짝을 못한다. 직접 게임을 개발해 봤을 뿐아니라 마니아의 마인드로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업계에 10년을 있으면서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았다. 정 사장도 모든 면이 다 어려웠지만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개발자와 개발팀간의 이견조율이라고 꼽았다.

핵심개발자가 어느날 갑자기 연락이 두절된 채 출근을 안해서 확인해보면 하드디스크를 포맷하고 무단퇴사 해 낭패를 봤던 일, 팀원간의 반목으로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무산되고, IMF 때는 소속회사에서 게임개발팀을 지방 지사로 발령해 팀을 이끌고 간지 얼마되지 않아 대표이사가 해외도피를 해서 망연자실 했던 일 등 주로 사람과의 관계가 그를 괴롭혔다고 한다.

# 다시 태어나도 게임개발자가 될 것

그래도 보람을 느낀 일도 많았다.내 손으로 개발한 게임을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즐기고 사랑해주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었다고 한다. 또 늘 스트레스와 동거하는 생활이지만, 일에 대한 결과가 빠르게 보람과 좌절로 교차하는 다이나믹한 요소가 게임개발을 업으로 삼는 이유라고 했다.

“제 아내가 매일 그렇게 마음고생 하면서도 게임개발이 그렇게 좋으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나는 다시 태어나도 게임개발을 할 것'이라고 대답했죠.”
이 말을 하며 환하게 웃는 정 사장을 보니 ‘일편단심 민들레’를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게임 개발에만 매달려 왔던 그에게 2003년은 일대 변혁의 해였다. 10년 동안이나 입고 있던 개발자의 옷을 벗고 CEO로 새롭게 출발한 것이다.
“책임감이 더욱 무겁습니다.”

이 한마디로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제가 씨알스페이스의 CEO로 취임하면서 임직원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는 일에 가장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내 손으로 개발한 게임을 인정받는다는 것, 개발자들에게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는걸 알기 때문에 '디오' 개발자로서 또 씨알스페이스의 임직원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반드시 만들겠다는 약속을 했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에게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도록 한 '디오'를 세계 어디에서나 또 어떤 플랫폼에서나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듬직한 그의 뒷모습을 보며 머지 않아 세계 곳곳에서 ‘디오'에 열광할 게이머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상상을 해 봤다.
 
[프로필]
 
 
1994. 미리내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
1997. 재미시스템개발 기획팀 과장
1998. 진영테크놀로지 게임개발팀장
2000. 지디온 개발이사·청강문화산업대학 컴퓨터 게임학과 강사
2001. 미리내엔터테인먼트 개발팀장
2002. 미리내엔터테인먼트 개발이사
2003. 미리내엔터테인먼트 경영기획이사
2003. 씨알스페이스 대표이사
 
취재부장(be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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