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함의 미학’ 퍼즐 설계 게임의 원조
 
# 테트리스는 PC 역사에 동반자

국내에 PC라는 ‘전자계산기’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게임기의 전유물이었던 게임이 가정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필자가 기억하는 최초의 PC는 ‘XT’라는 제품으로 IBM에서 기본 설계를 한 컴퓨터였고 당시 애플사의 애플 컴퓨터와 세력을 양분하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XT’가 CPU 086의 닉네임이었고 ‘AT’가 286 그리고 386, 486으로 이어졌으며 586부터는 ‘펜티엄’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현대 컴퓨터의 간략한 역사다. 그러니까 지금 한 가정마다 한 대씩 가지고 있다는 PC의 가장 초창기 모델에도 게임이 존재했고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파괴력을 지녔던 작품이 지금 소개하려는 ‘테트리스’다.

‘테트리스’는 정말로 간단한 게임이다. 총 7개의 조각이 위에서부터 천천히 떨어지면 유저가 좌우를 조정해 빈틈없이 조각을 맞추면 되는 게임이다. 추가로 실력에 따라 다른 난이도를 줘서 일정 개수 이상의 줄을 맞추면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시스템을 갖췄다. 이를 제외한 다른 어떠한 장치나 아이템, 스킬 등은 찾아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게임계에 미치는 ‘테트리스’의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아 각종 플랫폼은 물론 국내 게임포털 사이트의 기본이 바로 ‘테트리스’다. 현재는 그 모습이 조금씩 변형되어 초창기 모델과 많이 변형된 형태로 소개되고 있지만 ‘7개의 조각이 위에서부터 천천히 떨어지면 그것을 맞추는’ 룰은 변하지 않고 있다.


# 문제의 인물, 알렉세이 파지노프

그렇다면 도대체 이 게임을 만든 사람은 누굴까? 이렇게 단순하면서도 미묘한 두뇌 플레이를 요구하는, 감칠맛이 철철 흐르는 게임을 만든 인물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그 사람은 바로 러시아의 프로그래머 ‘알렉세이 파지노프(Alexey Pajitnov)’이다. 알렉세이 파지노프는 러시아의 정부기관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던 사람으로 인공지능이나 음성인식 같은 일을 담당했다. 따라서 원래부터 프로그램을 짜고 계획하는 것은 손에 익숙했던 일이었다. 그러다 알렉세이 파지노프가 즐겨하는 퍼즐게임인 ‘펜토미노스’에서 어떤 영감을 얻게 된다. 이 게임은 일종의 보드게임으로 정해진 상자의 크기에 맞춰 여러 개의 조각들을 맞추는 간단한 놀이다. 파지노프는 ‘펜토미노스’에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를 응용한 게임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서 시작된 것이 바로 '테트리스‘인 것이다.

‘펜토미노스’에서 ‘테트리스’가 탄생하는 과정도 그리 복잡하지 않다. 파지노프는 5각형의 도형인 ‘펜토미노스’를 보다 단순화시켜 4각형으로 바꾸고 조각의 모양을 모두 7개로 제한했다. 테트리스의 조각은 모두 7개이지만 거울처럼 반사된 형태도 하나로 치기 때문에 실제로 테트리스는 총 5개에 불과하다. 하지만 회전을 하기 때문에 조각들의 변형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진다. 이렇게 정해진 조각들은 좌우이동과 회전이 가능하지만 위에서 천천히 떨어지는 규칙을 가졌다. 빈틈없이 맞춰진 줄은 점수로 환산되며 사라졌다. 그리고 테트리스라는 이름은 4를 뜻하는 그리스어인 테트라(tetra)에서 따왔고 이렇게 하여 불세출의 게임 ‘테트리스’가 탄생한 것이다. 파지노프는 너무 심플한 구성이라고 염려하면서 완성된 버전에서 다시 다양한 변형을 시도했으나 결국은 처음 모습 그대로 두는 것이 최고라는 결론을 내리고 일절 손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생각은 옳았다.


# 온 가족이 즐기는 최초의 PC게임

이렇게 만들어진 ‘테트리스’는 전세계에 급속하게 전파됐다.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희박했던 초창기 게임들 중에서도 ‘테트리스’는 무료게임에 가까웠고 정확한 인기도 가늠하기 힘들었다. 또한 알렉세이 파지노프도 자기가 만든 게임이 이렇게 많은 인기를 얻을 줄 몰랐으며 라이선스에 대한 생각도 깊게 하지 않았다. 하지만 ‘테트리스’의 인기는 엄청난 것이어서 닌텐도에서 게임보이용으로 발매한 ‘테트리스’는 총 7000만개라는 어마어마한 숫자가 판매되었고 지금까지 발매된 모든 콘솔 게임기와 PC, 온라인 게임 사이트에서 ‘테트리스’를 발견할 수 있다. 몇 년 전 국내에서 발매되었던 ‘휴대용 테트리스’는 열쇠고리의 역할을 하면서 엄청난 인기를 얻기도 했다.

‘테트리스’의 위대한 점을 모든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가정용이라는 것이다. 게임에 대한 편견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다를 바가 없었고 아케이드 오락실을 출입하는 것을 달가워했던 부모님은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테트리스’는 달랐다. 총을 쏘거나 전투기도 등장하지 않았고 복잡해 보이지도 않았다. 학부모들이 보기에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를 RPG도 아니었으며 머리를 짜고 또 짜야하는 퍼즐 게임도 아니었다. 천천히 떨어지는 조각을 회전시키며 양옆으로 움직이고 조각을 빈틈없이 맞추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게임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즉, ‘테트리스’는 초등학생과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대학원생, 직장인, 부모님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최초의 게임이었다. 이것은 가히 혁명적인 사건이었고 온 가족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놀이를 PC에서 구현하는 놀라운 일이 발생한 것이었다.


# ‘재미’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 게임

또 하나 중요한 점은 ‘테트리스’는 게임에서 ‘재미’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케하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현재의 게임들은 스케일과 그래픽에 심혈을 기울이며 2D 그래픽은 취급도 하지 않고 3D 그래픽 정도는 되야 한다고 떠든다. 캐릭터의 표정과 눈썹, 그림자, 옷차림새는 기본적으로 적용하고 게임 아무리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맵이나 실제 살아있는 스타와 똑같은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정작 게임이 재미없다면 이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테트리스’를 보고 그래픽이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테트리스’를 보고 스케일이 크고 다양한 시스템으로 밸런스를 잘 맞췄다고 주장할 사람도 없다. 단순도 이렇게 단순함이 없는 왕단순 게임이지만 ‘재미’있는 게임이 바로 ‘테트리스’다. ‘테트리스’는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재미’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게임은 진정 재미있어야 하고 즐거워야 한다. 게임을 하면 할수록 짜증나고 화가 난다면 그건 게임의 의미를 상실한다. 게임은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


# ‘테트리스’가 보낸 법정싸움의 세월

하지만 ‘테트리스’는 그 유명세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며 법정에 서야 했다. 1985년 파지노프가 처음으로 IBM PC용 ‘테트리스’를 만든 후 다양한 경로를 통해 게임이 전파되었다. 이 와중에 헝가리 태생의 사업가 로버트 스테인은 이 재미있는 게임을 발견하고 자기 마음대로 영국의 미라소프트에 라이선스를 팔아 버린다. 그리고 러시아로 건너가 ‘테트리스’에 대한 라이센스를 취득하려고 노력했으나 실패하고 만다.

하지만 미라소프트는 이 사실도 모른 채 스펙트럼 홀로바이트라는 회사에게 PC용 라이선스를 팔아 버리고 콘솔용 라이선스는 아타리 자회사인 텐겐으로 넘겨 버린다. 그 후 헨크 로저스라는 사람이 박람회에서 텐겐의 ‘테트리스’를 보고 라이선스를 얻어 닌텐도 패미콤용으로 ‘테트리스’를 발매하는 상황까지 발전한다. 여기까지는 아무도 ‘테트리스’에 대한 문제가 없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게임보이용으로도 ‘테트리스’를 발매하기 위해 라이선스를 취득하기 위한 과정에서 드디어 이 모든 것이 사실은 불법이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헨크 로저스는 닌텐도에서 재미 본 ‘테트리스’를 게임보이에서도 발매하기 위해 러시아로 건너가 알렉세이 파지노프를 직접 만나고 마침내 실제 ‘테트리스’의 라이선스를 어느 회사에도 판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일본으로 돌아간 로저스는 닌텐도에게 이와 같은 일을 알리고 라이선스를 취득했고 닌텐도도 이를 인정하고 아타리와의 기나긴 법정싸움에 들어간다. 아타리와 닌텐도와의 ‘테트리스’에 대한 법정 싸움은 수 년 동안 계속되었으며 1993년에야 마침표를 찍는 엄청난 싸움을 치렀다. 그리고 1996년에 이 모든 상황을 정리한 '테트리스'에 대한 모든 독점적인 라이센스를 가진 ‘테트리스 컴퍼니: 블루 플래닛 소프트웨어’가 설립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김성진 PC파워진 기자(hanrang@power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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