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게임 특성 접목 새로운 시도 주목
 
우리 시대의 대표 개발자 김학규(31)가 돌아왔다.
‘라그나로크’로 일약 스타덤에 오를 무렵 돌연 사라졌던 그가 약 1년여만에 새로운 게임 ‘그라나도 에스파다’를 들고 나타났다. PC게임의 특성을 접목한 신개념 온라인 게임으로 새로운 신화를 만들겠다는 각오다. 이름도 생소한 ‘그라나도 에스파다’는 김 사장이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게임업계에서 초미의 관심사다. 국내 대표 게임업체인 한빛소프트가 그를 잡기 위해 53억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한 것만 봐도 그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해볼 수 있다.

#초라한 컴백(?)
2001년 ‘라그나로크’를 개발할 때 기자와 처음 보고 3년만에 다시 만난 김학규는 여전히 수염이 덥수룩한 옆집 아저씨의 모습 그대로였다. 당시 군복같은 얼룩무니 옷차림이던 것과 달리 캐주얼한 복장을 입고 있는 정도. 2003년 3월 새롭게 창립한 IMC게임즈의 사무실도 2001년과 비교해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압구정동에서 서초동으로 위치가 바꼈다는 것을 빼고는 동네 이름에 걸맞지 않게 사무실이 초라하긴 마찬가지. 최근 외부에서 투자를 받기 전에는 개발비까지 걱정했다는 것도 비슷하다. 국내 온라인 게임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박게임인 ‘라그나로크’를 히트시켰던 그가 차기작 개발비까지 걱정해야 할 지경이라곤 아무도 상상치 못했다. 우리의 기대처럼 그의 컴백은 그리 화려하지 않았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라그나로크’는 그에게 성공과 실패를 동시에 안겨준 작품이다. 그는 ‘라그나로크’가 상용화된지 1개월만에 돌연 그라비티에서 퇴사했다. 김 사장이 93년 아마추어 게임 개발팀인 ‘그라비티’로 출발해 10년 가까이 애정을 쏟아온 회사를 떠났다는 것은 충격 자체였다. 소문도 무성했다. 내부 지분다툼에서 밀려났다는 얘기에서부터 휴식을 위해 떠났다는 등 각종 추측과 억측이 난무했다. 돌이켜볼 때 김학규의 중도하차는 개발자로서의 그의 한계를 드러낸 대목이다.
"많은 것을 배운 시기였습니다. 악튜러스에서 라그나로크까지 5년 동안 쉬지않고 개발에만 내달려 정신이 피폐한 데다 경영과 관련된 개인적 불화까지 겹쳐 더이상 버티기 힘든 실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제2의 그라비티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미련없이 떠날 수 있었습니다"

#‘감성, 동기, 연결’이 게임의 원칙
김학규가 새로운 둥지로 지난해 4월 설립한 IMC게임즈는 현재 약 30여명의 개발진과 운영진으로 구성돼 있다. IMC란 ‘Impress, Motivate, Connect’의 머리말을 따온 표현으로 그의 게임원칙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감명(Impress)은 최상의 퀄리티로 유저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자는 것이며 동기(Motivate)는 유저들의 도전 욕구를 자극할만한 게임성을 채워넣겠다는 각오를 표현한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관계를 나타내는 Connect은 플레이어들을 연결해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를 형성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업체명이 마치 구호처럼 거창하게 들리지만 이를 만족시키지 못한 게임은 시장에 내놓지 않겠다는 그의 각오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시간에 쫓겨 급조한 프로젝트는 실패로 이어질 수 밖에 없으며 이것이 반복되면 게임산업 전체가 위축될 수 밖에 없습니다. 게임업계에 만연한 거품을 걷어내기 위해서도 기존 게임을 뛰어넘는 신선한 시도가 필요합니다."

#장르의 경계를 넘나는 드는 신개념의 게임
김학규가 새롭게 들고 나온 ‘그라나도 에스파다’는 10여년간 PC 게임을 개발해온 그의 경험이 모두 녹아든 총화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온라인 게임의 전형적 구조에서 벗어나 pc게임의 특성을 접목시킨 점이 두드러진다. ‘그라나도’의 플레이어는 게임 내에서 동시에 3명이상의 캐릭터를 컨트롤할 수 있다. MCC(Multi Character Control)이라고 명명한 이 시스템은 마치 pc 게임의 ‘던전시즈’나 ‘네버윈터 나이트’와 같이 한 사람이 여러 캐릭터를 팀단위로 구성해 전략을 펼칠 수 있다. 이 게임은 전투와 아이템을 흥미를 높이기 위해 ‘스탠스’란 개념도 도입했다. 플레이어가 취하는 자세에 따라 전투결과가 가변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나무막대처럼 꼿꼿하게 서서 특징없이 서로 무기를 휘두르는 기존 온라인 게임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부분이다. 또 환타지 일색의 기존 게임과 차별화시키기 위해 프랑스 대혁명기의 근대 유럽을 배경으로 설정한 점도 독특하다.
‘그라나도 에스파다’는 이번달 프로토타입이 공개되고 여름쯤 클로즈베타테스트를 시작할 예정이다. 배급사인 한빛소프트는 가을 오픈베타, 내년 3월 정식 서비스를 목표로 하고 있다.
"저는 아주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보다는 다양한 장르의 특성을 결합해 게임을 만드는 데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라나도 에스파다’가 각종 게임의 범주를 넘나들며 게이머들에게 새로운 감성을 창조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디아블로+울티마온라인 구조를 벗어난 새로운 타입을 만드는 것이 이번 작품의 목표입니다."
아픔을 딛고 새로운 각오로 돌아온 대표 개발자 김학규가 이번에도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낼 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학규는 누구
 
김학규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 손노리와 공동 개발한 PC게임 ‘악튜러스’가 국내에서만 5만장 이상 판매되는 쾌거를 기록하면서 부터다. 특히 2001년에는 온라인게임 ‘라그나로크’로 일본에서 한류 열풍까지 일으켰다. 하지만 이미 게임업계에서는 90년대부터 그를 주목해 왔다.
92년 서강대 수학과에 입학한 그는 전공과는 무관하게 게임과 질긴 악연을 맺기 시작했다. 입학 1년 만에 대학을 휴학하고 게임개발에 뛰어들었다. 소프트맥스의 조형기, 최연규 등과 함께 PC통신 하이텔에 게임제작관련 모임을 결성해 PC게임 ‘리크니스’를 개발한 것. 당시 이렇다할 국산 게임이 없던 시절 이들은 황무지를 개척하는 프론티어의 정신으로 도전에 나섰다. 이후 병역 특례로 나하나컴퓨터에 입사했던 그는 병역 의무를 마친 후에도 바로 ‘그라비티’ 팀들과 함께 ‘라스더원더러’를 개발했다.
"97년 부모님의 원성에 못이겨 다시 대학에 복귀했지만 게임개발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남들은 그 어려운 길을 왜 선택했느냐고 묻지만 게임이 좋아 게임을 만들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김 사장은 98년 결국 동료들과 함께 그라비티소프트를 설립해 본격적인 승부수를 던졌다. 남일소프트의 ‘개미맨2’ 아웃소싱 작업을 하며 틈틈히 마련한 종잣돈과 집에서 끌어온 수천만원을 밑천 삼아 ‘악튜러스’ 개발에 착수했다. 그리고 2003년 4월 새 둥지로 IMC게임즈를 마련하고 또 다른 신화창조에 나서고 있다.
 
김태훈 기자(taehu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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