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게임물관리위원회가 불법 프로그램에 의한 피해액이 매출액 감소에 의한 피해 1조 1921억 원, 핵 방지 등 이를 위한 대처 비용 증가에 따른 피해액은 약 1조 2402억 원으로 추정했다. 총 2조 원이 넘는 피해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돈으로 따지지 못한 손해를 입는 경우도 있다. 올해 초 출시된 일렉트로닉아츠(EA)의 온라인 배틀로얄 게임 ‘에이펙스 레전드’는 출시 전 유저들 사이에 높은 기대를 받고 있던 신작이었다. 하지만 서비스가 시작된 후 각종 핵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유저들은 이탈했고 게임 몰락은 걷잡을 수 없이 가속화됐다.

후에 개발 업체 측에서 수많은 핵 계정을 제재하는 등 대처했지만 이미 ‘에이펙스 레전드’의 이미지는 ‘게임 들어가자마자 핵 홍보 음성을 듣는 게임’이 돼버렸다. 일반적으로 핵이라 불리는 불법 프로그램은 종류도 여러 가지기 때문에 원천적인 예방은 힘들다는 것이 현실이나 사후 대처 미흡은 이처럼 치명적인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역설적이게도 에이펙스 레전드가 기대작이 된 이유도 바로 핵 덕분이었다. 당시 국내 인기 배틀로얄 게임 ‘배틀그라운드’가 핵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장르 특성상 소리와 에임, 판단력이 중요한 만큼 단순 에임 보정 핵만으로도 게임 결과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에임 보정 핵은 때에 따라 핵처럼 느껴지지 않게 사용 가능하다는 점이다.

핵에 가장 민감한 것은 FPS 장르인데 두 게임 모두 FPS를 기반으로 한 배틀로얄 게임이다. 지금까지도 핵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유다. 단순 매출 하락뿐만 아니라 핵으로 이탈된 유저들은 쉽게 돌아오지 않으며 한번 박힌 ‘이미지’는 바뀌기 어렵다는 게 핵의 무서움이다.

개발 업체인 펍지에서 ‘머신 벤’ 등 핵 방지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며 근절시키려 노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 유일하다 싶을 정도로 배틀로얄 장르를 장악하고 있는 배틀그라운드의 인기가 흔들리면 언제든지 에이펙스 레전드와 같은 경쟁작들에 위협을 받을 수 있다.

한편으론 서버를 분리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유저들의 주장도 있다. 중국 서버, 한국 서버 등 각 지역 서버를 별도로 운영하자는 의견이다. 이 방법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긴 하다. 다만 핵 근절에 직접적인 해결책이 될 순 없다. 실제로 배틀그라운드는 스팀에서 판매되는 글로벌 버전과 카카오에서 서비스하는 국내 버전이 별도 운영 중이다. 하지만 핵 유저들은 VPN(가상 사설망)을 통해 쉽게 서버를 넘어오는 것이 현실이다.

FPS 및 배틀로얄 장르뿐만 아니라 게임 모든 장르에 걸쳐 핵은 업체와 유저 모두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유저들 사이에선 매우 민감한 사항으로 작용하고 있다. 개인 방송인이 핵을 직접 사용한다는 의혹을 받아 유저들에게 강력히 비판받는 사건도 있었다.

핵과 같은 불법 또는 비인가 프로그램을 잡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개인 방송에서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 셈이다. 한 예로 중국 개인 방송인이 배틀그라운드 카카오 서버에 접속해 핵을 사용하는 것이 매체에 보도되기도 했다.

어렸을 적 스타크래프트가 한창 유행하던 때 게임 유저들한 한 번쯤 ‘show me the money’, ‘operation cwal’ 등 유명한 치트키를 사용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멀티 플레이에선 적용되지 않았지만 싱글 플레이에선 유용하게 쓰였다. 그 당시 치트키는 하나의 편리함에 불과했다.

지금은 편리함을 넘어 사용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불편을 주는 암적인 존재가 됐다. 게임은 그 존재에 감염되어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다. 게임이 아닌 핵이 진짜 ‘질병’ 역할을 하는 셈이다.

[더게임스 신태웅 기자 tw333@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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