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게임그래픽 기술발전의 명암
[논단] 게임그래픽 기술발전의 명암
  • 더게임스
  • 승인 2019.11.06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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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퀄리티 그래픽게임 쏟아져...재미보다 그래픽으로 승부하려는 풍토 우려돼

얼마 전 개봉한 영화,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를 보며, 문득 아주 오래 전에 보았던 '터미네이터2'를 되새겨 보았다. 물처럼 신체 부분들이 변신되는 미래형 안드로이드 T-1000에 사용된 3차원 모핑 기술, 그리고 핵에 의해 도시가 종말을 맞게 되는 장면 등이 무척 인상 깊었던 영화였다.

1990년대 초를 되짚어 보면, 헐리우드 영화들이 신작마다 3D 그래픽의 무한한 가능성을 경쟁적으로 투영하며 발전해 나가곤 했었다. 1989년 제작된 '어비스'에서는 물기둥이 사람 얼굴 형상으로 변하는 모습이 신선했었고, 1991년 위에 언급한 '터미네이터2', 그리고 1993년 '쥬라기 공원' 등이 흥행 성공과 더불어 그래픽 기술의 발전을 증명했다. 화면 전체를 화려한 CG로 덮는 대신, 1994년 '포레스트 검프'와 같이 영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하얀 깃털의 움직임을 통해 그래픽과 실사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는 방식으로도 3D 그래픽의 잠재력을 과시했다. 그래픽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이후 '다이나소어(2000)'나 '파이널 판타지: 더 스피릿 위딘(2001)' 등 풀 3D에 의한 세계 창출마저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게 된다.

게임으로 시선을 돌려보아도, 3D 그래픽의 발전은 2000년대 초 게임 역사에 큰 변곡점이 된다. '파이널판타지'의 새로운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등장한 시네마틱 영상들, 그리고 블리자드 신작의 동영상 파트 (SGR FMV – Silicon Graphic Rendered Full Motion Video) 등은 실제 게임 플레이 영상이 아니지만 게임에 대한 몰입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고, 2003년엔 고 퀄리티의 그래픽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리니지2' 전용 PC가 발매돼 당시 피시방 스펙을 한껏 높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게임에서 3D 그래픽의 득세는 1990년대 말 이후 퀘이크 엔진, 언리얼 엔진 등을 통해 현재 대세가 된 3D FPS의 단초가 됐고, 2D 기반의 도트 그래픽 디자이너 대신 3D 모델러와 3D 애니메이터라는 직종이 게임 개발업계에 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했다. 기술은 현재도 계속 발전 중이다. 콘솔 플랫폼에서는 이미 하이퍼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게임들이 허다하고, 이후 PC나 모바일 플랫폼에서도 현실과 다름 없는 그래픽으로 우리의 눈을 현혹시킬 게임들은 쏟아져 나올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의 발전이 분명 게임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내 개인적인 감상일까. 2000년대 고 퀄리티 그래픽을 내세운 게임들로 인해 유저들의 눈높이가 높아지고, 높아진 유저들의 기대를 맞추기 위해 많은 업체들이 그래픽 제작에 막대한 개발비를 투여하게 되고, 결국 대작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는 것을 우리는 보아왔다. 고 퀄리티 그래픽이 아니더라도 재미만 있으면 성공한다는 것은 누구나 말할 수 있는 논리이지만, 첨예한 경쟁의 시대에 보기 좋은 비주얼이야말로 최대의 경쟁력이라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자신의 돈이 아니라 투자를 통해 개발비를 확보해야 하는 개발사 입장에서, 다 만든 후 플레이를 통해 재미를 증명해 보겠다는 말에 혹해 막대한 돈을 대어줄 투자자를 찾는다는 것도 지난한 일이다. 보기 좋은 비주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유저가 아닌 투자자, 혹은 퍼블리셔의 입맛에 맞는 게임을 개발하는 환경으로 변천해 가고, 모험적이고 도전적인 시도 대신 시장에서 검증된 재미요소를 어떻게 더 잘 녹여내는가에 개발의 초점도 맞춰지기 쉽다. 결국 큰 돈을 들여 만들어진 게임은 가까스로 유저들의 시각을 만족시킬지언정, 대부분 그저 그런 스타일의 아류작으로서 폄하되기 일쑤다. “나도 이런 게임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라는 어느 개발사 대표의 푸념이, 단지 푸념으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

게임업계에 종사하며 무척 다양한 게임들을 보고, 또 플레이 해보았다 자부하지만, 그래도 내게 아직까지 최고의 게임들 중 하나는 1980년대 오락실에서 하던 '보글보글 (Bubble Bobble)'이다. 화려한 그래픽과 하이퍼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수많은 게임들이 난립하는 요즈음, 앞으로 그런 아기자기한 재미를 줄 수 있는 게임이 계속 만들어질 수 있을까, 한국에도 'CoC' '브롤스타즈' 등을 만든 슈퍼셀과 같은 회사들이 등장하고, 또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상념에 젖게 된다.

김정주 노리아 대표 rococo@nor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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