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인의 게임의 법칙] e스포츠 20년사에 버려진 10년 소사들…게임산업 역사를 축소, 왜곡해 버린 것

대한민국 건국일을 놓고 진영간 논란이 치열하다. 한편에선 1948년 8월15일을 건국일로 보자고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임시 정부의 법통을 언급하고 있는 헌법을 기초로 1919년 4월11일을 건국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자가 공부하던 초, 중고교 시절, 8월15일은 정부 수립일로 불렸다. 그러다가 한 세대가 흐르니까 슬그머니 정부 수립이 아니라 건국일로 바뀌었고, 이후 또 한 세대가 등장하니까 이를 놓고 갑론을박 수준이 아니라 투쟁을 하듯 싸움을 벌이고 있다.

마치 30년의 길고 짧음을 놓고 역사가들의 공방이라면 그나마 봐줄만 하겠지만, 그것이 진영간, 계층간 논쟁으로 이어지고, 결국엔 국민을 분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은 씻을 수 없는 과오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우리 민족에게는 큰 아픔이자 불행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매듭을 짓고 가야할 때 그 매듭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질질 끌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식민, 친일 역사를 청산하지 못해 끝내는 건국일까지도 혼선을 불러오고 있다는 일부 진영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지 않다.

나랏 일도 그렇지만 산업 역사와 기업소사 역시 그 것 만큼이나 긴요하다. 그 것이 종국엔 나라의 역사의 일부로 편입되고, 역사의 한 줄기로서 자리매김할 것이기 때문이다.

산업 역사가 상대적으로 창대하지 못한 게임산업은 겨우 60 여년의 성상을 쌓아 왔다. 윌리엄 하긴보섬의 ‘테니스 포 투’ 게임을 시초로 본다면 이제 환갑을 갓 넘은 셈이다. 우리나라의 게임역사는 70년대 만들어진 아케이드 게임과 대기업들이 일본서 들여 오기 시작한 컴퓨터 게임기도입 시기를 산업 태동 시기로 보고 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산업화를 꾀한 시기는 80년대 후반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이같은 산업 토양을 발판으로 만들어진 것이 온라인게임이다. 서울대 공대, 카이스트 등에서 인터넷을 접하며 성장한 이들 대학 출신들이 온라인게임을 개발, 상업화에 나서면서 게임산업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온라인 게임의 역사 시점을 어디에다 두고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1996년 발표된 ‘바람의 나라’와 1998년 선보인 ‘리니지’가 있다. 한 작품은 대단한 반향을 일으키며 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으나, 다른 한 작품은 그 정도는 되지 못됐다. 또 한 작품은 오늘날의 온라인게임의 전형을 보여주었지만, 다른 한 작품은 그런 수준에 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이 두 작품의 개발자가 공교롭게도 송재경이란 걸출한 인물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온라인게임 태동 시기를 1996년 ‘바람의 나라’가 발표된 때로 볼 것인가, 아니면 1998년 ‘리니지’ 출시 시기로 볼 것인가. 안타깝게도 이에 대한 결론은 여전히 미뤄지고 있다. 왜냐하면 단순히 게임 형식만 놓고 보면 이들 작품보다 앞서 발표된 온라인 게임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정의할 학계의 진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최근 한국 e스포츠협회가 ‘e스포츠 20년사’란 책자를 발간해 화제가 되고 있다. 관련 사진과 e스포츠 경기 결과를 상세히 기록 하는 등 e스포츠 20년에 대한 의미와 전망을 가득 담아 놓았다.

그런데 정작 책의 내용을 들여다 보니 ‘e스포츠 20년사’가 아니라 ‘e스포츠 10년사’였다. 10년의 역사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특히 e스포츠의 본산이라고 자부하는 대한민국 e스포츠 협회에서 만든 역사서에서 e스포츠의 태동 배경과 e스포츠에 대한 용어의 탄생 등이 쏙 빠진 채 두루뭉술 언급되고 있을 뿐 아니라 e스포츠 협회의 전신인 프로 게임협회의 족적들은 하나같이 지워져 있었다.

e스포츠산업은 미국 일본 중국 등이 호시탐탐 노리는 새로운 전략 요충지다. 그 때문인지 이웃한 일본 중국 등 후발 경쟁국들은 가져다 쓸 게 있으면 놓치지 않고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e스포츠 종주국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산하단체란 곳에서는 침소 봉대는 커녕 되레 존재하는 역사를 외면한채 축소해 버렸다.

이같은 일련의 사례들은 성장위주의 게임시장과 게임기업만 바라보는 미시적인 관점에서만 게임 산업을 평가한 데 따른 것이다. 문화, 사회적 관점에서 바라본 학계 연구는 상당히 찾기힘들다. 그렇다 보니 기술 개발 트렌드와 작품 평론을 모은 연구서가 전부다 할 정도다. 게임을 산업적 관점에서 거시적 안목으로 고찰하고 연구한 논문은 거의 찾기 힘들다.

가깝게는 20여년의 역사에서 좀 더 큰 시선으로 보면  40여년을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 게임 산업에 대한 학계의 연구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같은 역사적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한국 게임산업은 정통성 논란 등 혼돈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할 게 분명하다.

최근 몇 년 사이, 외신을 보면 온라인게임이란 장르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대신 PC 게임이란 장르가 등장했다. 온라인게임이란 장르를 PC 게임에 합쳐 놓은 것이다. 그 배경에 대해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하지만 일각에선 온라인게임이란 용어가 대한한국에서 만들어졌다 할 만큼 독보적이기 때문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미국 일본 등 선진 게임업체들이 PC 게임으로 이를 퉁쳐 버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사실 여부를 확인할 길은 없으나 온라인 게임 장르가 게임 장르 구분에서 사라진 건 확실하다. 문제는 이같은 배경 조차 모른 채 그들의 방식 그대로 PC게임이란 명칭을 내려받아 쓰는 일부 게임기자들의 행태다.

역사를 잊고 사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일련의 대한민국 건국일 논란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고 싶다.

매듭을 확실히 짓고 넘어가야 한다. 나라와 민족의 문제뿐 아니라 산업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늦었다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른 때다. 게임 산업의 역사를 제대로 평가하고 기록을 남겼으면 한다.

더불어 사족을 붙이면, e스포츠의 역사는 그 것이 일천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주변에 산증인들이 많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정확한 역사의 펙트를 기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e스포츠 20년사’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경기 기록 결과만을 집대성해 놓은 격이다. 그 안에서 시스템을 만들고 토양을 만든 사람들은 찾아볼 수 없다. 무성의한 것인지, 아니면 역사 의식이 없는 것인지.

도대체 그게 뭔가. 정말 창피할 따름이다.

[더게임스 모인 뉴스 1 에디터/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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