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게임산업 수차례 전진과 후퇴 반복…새로운 변화물결 기회로 삼아야

#1. 3년만에 학교로 복귀하다 보니 거의 몇 년 만에 1학년 수업을 하게 됐다. 학생들에게 전공 선택 이유를 물으니 상당수 학생이 게임을 좋아하는 부모님의 환경에서 성장하면서 호감도를 갖게 됐고, 게임분야 진로를 선택하게 됐다고 했다. 자녀의 진로를 걱정하는 부모님과 상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나로서는 이전에는 들어 보지 못한 얘기라 내심 놀라기도 했고 신선한 충격이었다. IMF경제위기이후 사실상 태동한 한국게임산업이 이제 20년이 넘는 역사성을 갖게 됐. 이러한 사실을 학과에 입학한 학생들을 통해서 실감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명실공히 부모와 자녀가 함께하는 게임세대간 연대와 공감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느껴졌다.

#2. 올해 게임산업 10대뉴스 가운데 하나를 꼽는다면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질병코드 등록’일 것이다. 게임산업진흥을 총괄하는 문화체육관광부나 게임업계가 대처할 겨를도 없이 규제부서 중심으로 속절없이 결론이 났다. 게임산업계를 옥죄는 각종 규제에 정점을 찍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학교에 있는 필자로서는 당장 입학자원 감소와 지역대학의 이중고 속에 대형 악재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매우 컸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년 이상으로 많은 학생들이 지원했다. 나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우선 전공이 개설된 지 10년을 훌쩍 넘어서면서, 매년 졸업학생 상당수가 지역과 수도권의 게임업계로 진출하고 있는 것이 평가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숱한 어려움과 도전에 직면하고 있지만 세월의 무게를 견뎌내고 우리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한국게임산업의 저력 때문은 아닌지 생각한다. 시대흐름에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훨씬 민감하다. 게임이 인공지능시대의 킬러콘텐츠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예민한 후각이 작용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3. “오직 나만이, 이 세계의 결말을 알고 있다.” 
웹콘텐츠 포털사이트인 ‘문피아’에서 연재 중인 ‘전지적 독자 시점’의 테마다. ‘전지적 독자 시점’은 오로지 자신만이 읽던 소설의 내용대로 바뀌어 버린 세계에서 주인공 ‘김독자’의 활약상을 그린 소설이다. 주인공은 소설에서 얻은 실마리를 활용해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대체 불가능한 히어로로 탈바꿈되어 간다. 2018년 2월부터 연재되고 있는 이 작품은 누적 조회 수만 2600만 뷰를 돌파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신과 함께’를 제작한 영화사 리얼라이즈픽쳐스와 극장용 장편 영화 5편 제작에 대한 판권 계약을 맺기도 했다.

한국게임산업의 지난 20년 역사 속에는 우리 게임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발전을 위한 비밀의 열쇠가 담겨 있는지 모른다. 게임산업의 현장은 장면 #1, #2에서 보았듯이 새로운 책임감이나 저력을 일깨워 주는 살아있는 교과서가 되어 가고 있다. 게임산업의 전 분야에서 지난 세월의 교훈을 성찰해, 소설의 주인공 ‘김독자’처럼 ‘전지적 게임 시점’의 ‘게임인’으로 거듭나는 지혜가 절실하다. 

#4. 필자는 IMF경제위기 직후인 1998년, 게임종합지원센터의 초대 사무국장으로 게임업계에 본격 입문했다. 우리나라 게임산업의 태동기에서부터 오늘에 이르렀으니 산증인의 한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초창기때를 생각하면, 손에 꼽을 정도인 창작게임역량, 상상초월의 부정적 인식, 무엇 하나 갖춰진 것 없는 황무지 수준의 생태계였다. 게임개발은 둘째로 치고, 해적국가 취급하는 미일선진국의 경계 속에서 어떻게 내재화된 성장동력을 이루어 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사의하고 기적에 가깝다. 한마디로 요약하기에는 너무 어렵지만 100만이 넘는 대규모 청년실업의 절박함과 풍부한 인적자원, 산관학연 모든 경제주체의 협력적 분위기, 김대중정부의 정책의지, 디지털 인프라 등이 기억에 남는다. 무엇보다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낙관주의를 뻬놓을 수가 없다.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실패도 많았지만 MMORPG, e스포츠, PC방, 부분유료화와 같이 한국게임산업의 트레이드마크가 되고 있는 것들이 이때의 도전으로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5. 2006년의 바다이야기사건은 혹독한 시련이었다. 고전을 면치 못하던 아케이드산업은 거의 궤멸되다 시피하고 30% 이상 급감한 연간 매출이 2010년에 이르러서야 2006년 수준을 회복했으니 가히 잃어버린 5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당시에 형성된 게임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게임산업진흥정책부서의 위축은 현재까지도 게임산업계의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바다이야기 사태 전후로 게임 주무부서는 인기부서에서 기피부서로 180도 선회했다. 아케이드게임산업은 개발유통역량의 잠재력, 타 산업과의 연관효과, 수출가능성 등에서 정책부서입장에서는 내심 가장 역점을 둔 분야였는데 결과만 놓고 보면 오히려 역효과만 낸 모양새가 되었으니 두고 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6. 2007년에 등장한 스마트폰은 세계 게임산업에 빅뱅을 불러 일으켰다. 우리나라 스마트폰은 피처폰의 경쟁우위 때문에 출시를 관망하다가 2년 반이 늦은 2009년 후반, 거의 2010년에야 본격 출시하게 된다. 1990년 초반부터 고수하고 지속되어 온 ‘디지털 퍼스트’ 전략에서 처음으로 실기한 사건으로 기억된다. 혹독한 대가를 치렀지만 모바일게임은 2017년을 기점으로 PC온라인게임을 넘어서서 한국게임산업을 선도하고 있다. 2019년 현재 한국게임산업은 성장지체와 양극화, 중국 등 글로벌이슈, 부정적 인식과 규제 등 숱한 숙제를 안고 있지만 강점 또한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1000개의 개발기업과 10만에 이르는 종사인력, 콘텐츠 수출의 과반에 달하는 한류의 킬러콘텐츠, 최첨단 기술과 제품의 테스트베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광고, 방송, e스포츠, 스트리밍 등 문화소비와 유행을 주도하는 디지털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7. “새로운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보다시피 지난 20년간 한국게임산업은 커다란 변곡점을 지나며 수차례 후퇴와 전진을 반복해 왔다. 현재는 아마도 4번째에 해당하며 이미 초대형 파도가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공지능, 가상현실, 5G와 함께 시작되고 있다. 이 쓰나미와 같은 거대한 파고가 가져올 변화를 한두마디로 정리하기란 불가능하다. 다만 게임산업에서는 콘텐츠산업을 넘어서 전 사회영역으로 확산될 기회가 오리라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고 한국게임산업을 리드해 나갈 ‘전지적 게임인’이 이번에는 지역이나 변방에서 출현하기를 소망해 본다.

이정현 전주대 게임콘텐츠학과 교수 gp3163162@gmail.com

저작권자 © 더게임스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