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콘텐츠 소비의 새 패러다임 제시…위기의 게임업계 다양한 시도 필요

지금은 오십대 중·후반이 되어버린 7080(70년대에 중고교를 다니고 80년대에 대학을 다닌)세대가 중고교 시절 가장 갖고 싶어했던 장비(?)중 하나가 소니의 워크맨이다. 커다란 헤드폰을 머리에 쓰고 허리에 장착(?)된 카세트플레이어에서 재생하는 인기 팝송가수의 노래를 반주삼아 롤러장(롤러스케이트장을 그렇게 불렀다)을 돌면, 주위의 남학생, 여학생들이 부러운 시선을 마구 날려주던, 그 시절 중고생들의 워너비 아이템 이었다. 

그런 워크맨이 세상에 등장한지가 올해 7월 1일자로 40년 이라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음악 소비자들의 기억 속에 워크맨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아날로그 음악기기 들은 MP3 플레이어나 DVD 플레이어 등 디지털 기기들이 제공하는 비선형성(non-linear)이나 무작위 접근성(random access)의 편리함에 점차 자리를 내주게 됐다. 디지털 기술을 통해, 음반 전체를 구입 하거나 앨범의 순서대로 음악을 들어야 하는 전통적인 소비 불편성을 해소하는 혁신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며, 이 또한 초창기의 파일 다운로드 및 소유 중심형 비즈니스 모델로부터 스포티파이나 멜론과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 및 사용 중심형 비즈니스 모델로 급속히 변화되는 파괴적 혁신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블록버스터를 침몰시킨 넷플릭스, 이세돌을 무력화시킨 알파고, 전세계 숙박산업과 교통산업을 재편하고 있는 에어비앤비와 우버 등 새로운 기술을 접목한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BM)들이 세상을 뒤흔들고 있는 이 시점에,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에 대응되는 콘텐츠서비스의 혁신 모델은 무엇일까?

최근에 '빛의 벙커 : 클림트'라는 몰입형 미디어 아트 전시회를 다녀왔다.

제주도 성산 일출봉 근처에 위치한 900평 규모의 광케이블 관리용 지하벙커를 개조해 프랑스에서 기획된 몰입형 미디어아트 AMIEX(Art & Music Immersive EXperience)를 구현한 것인데, 전시장에 입장하는 순간 관람객은 수 십대의 빔 프로젝터와 스피커에 둘러싸인 채 다이나믹한 미술작품과 음악의 흐름 안으로 빨려 들어가 거장의 예술에 완벽하게 몰입 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이해하는 전통적인 미술품의 감상은 관람자가 미술관 공간 내에 전시되어 있는 그림이나 조각품 등을 정적인 시각 이미지 형태로 경험하게 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물론 배경음악을 곁들임으로써 전시 공간 전체의 일관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빛의 벙커'를 통한 AMIEX의 경험은 완전히 새로운 예술 서비스 및 콘텐츠 소비의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관람객은 전시공간을 돌아다닐 필요 없이 그냥 서있는 공간 자체에서 미술품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벙커 공간 전체가 하나의 그림판 역할을 하며, 프로젝터를 통해 투사되는 디지털 영상들이 줌 인 줌 아웃, 페이드 인 페이드 아웃 되면서, 다양한 시간차와 공간차를 통해 동적 몰입 감상을 도와준다. 미술작품의 제공 흐름에 더불어 최적의 음악이 유연하게 융합되어, 시각적 경험 위에 청각적 감각을 더해 줌으로서 감상자의 감동을 극대화 할 수 있게 된다.

콘텐츠 산업 생태계가 빛의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전통적 성공 공식과 일차원적인 고객 니즈 충족만으로도 폭발적인 수요를 만들어내던 이전의 창작 패러다임은 점점 그 유효성이 줄어들고 있다.

게임산업 생태계에서도 이제는, PC게임이냐 모바일게임이냐, 가상현실(VR)게임이냐 증강현실(AR) 게임이냐가 더 이상 중요한 요소가 아닌 시대가 되고 있다.

일방적으로 생산되는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제품 지향(Production-Oriented) 모델의 답습이 아니라, 명확한 타깃 고객을 위해 새로운 콘텐츠 서비스 모델을 만들어 내기위한 지속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혁신의 출발점은 '고객 경험의 확장'에 있다.

'빛의 벙커'에서 보여주는 융합과 창의의 새로운 모델은 첨단의 기술을 어떻게 적용하느냐 하는 기술에 관한 문제가 핵심이 아니다. 활용된 기술은 의외로 간단한데, 다양한 각도의 디지털 이미지를 재생하는 수 십대의 프로젝터와 서라운드 음향을 발생시키는 사운드 장비 정도에 약간의 애니메이션 효과나 영상재생 효과 기술 정도가 필요할 뿐이었다.

그러나, 고객의 경험을 확장하기 위한 발상의 전환, 정적인(Static) 콘텐츠 패러다임을 뛰어넘어 동적이고(Dynamic) 몰입적인(Immersive) 경험을 제공하려는 새로운 기획과 시도가 오히려 콘텐츠의 본질적 문법에 충실한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게임 산업이 위기라고 한다. 그럴수록 우리가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따라가고 있던 길을 벗어나 새로운 고객 경험을 확장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

고민 많은 모든 분들께 '빛의 벙커' 방문을 권유 드린다.

김정수 명지대학교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jeieskim@mju.ac.kr

저작권자 © 더게임스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