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큰 이들이 지어준 끔찍한 이름 ... 그러나 게임은 게임일 뿐이다

게임이 괴물이 됐다. 산업 생태계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의학계에서는 그리 부르기로 한 모양이다. 목소리가 큰 그들이기에 그렇게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같은 경우, 자기들 맘대로 밀어 붙였다고 제도권에서 나무라야 하겠지만, 상대가 상대인지라, 정부 역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눈치만 보고 있다.

게임 역사 60여년 만에 치욕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인류의 문화가 게임으로 발전해 왔다는 고전적 이론을 내밀지 않더라도 게임은 인류의 근원적인 법칙이다. 게임으로 시작해서 게임으로 돌아가게 돼 있다. 그 모습을 게임기에 혹은 온라인을 통해서, 아니면 모바일을 통해서 재현해 놓은 것이 흔히 얘기하는 게임 소프트이다. 그런데, 그런 모습들이 중독 요소이고, 중독이 된다는 것이 세계 보건기구(WHO)의 해석이다. 그런 식의 논리대로 한다면 모든 삶 자체가 중독이라고 해야 옳다.

어쨌든 이 문제는 두고 두고 논란의 대상이 될 전망이다. 외신에 따르면 재론의 여지가 아주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다만 이런 일들로 인해 게임계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희생의 댓가를 치러야 하는 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영화가 빛을 발하면서 그 역시 핍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영화를 두고 마귀가 유혹하는 환영이라며 교황청에서 영화를 보지 못하도록 성도들에게 금지령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영화계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아주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만들어 선보이는 등 교황청 칙령에 대응했다.

음악이란 장르가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다가간 것은 19세기 후반이었다. 이전엔 귀족 문화의 일부분이었을 뿐이다. 그들은 음악회를 통해 의회 정치를 논하고, 사회를 들여다 보며 놀이를 즐긴 것이다. 평민들에겐 그저 그림의 떡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그 것을 내려 놓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축음기가 발명되는 등 문명의 거대한 족적들이 잇달아 이뤄졌기 때문이다. 대중음악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게임은 사실 무풍지대를 걸어 왔다. 제도권에서는 한갓 아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 정도로 여겼을 뿐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그게 아니었다. 그들이 게임을 통해 대중 문화와 미래 경제의 한 모서리를 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곳이 다름아닌 한국과 중국 게임계 였다. 게임기를 뛰어넘어 인터넷을 통해 온라인 게임을 선보이면서 세계 게임계의 흐름을 바꿔놓기 시작했다. 또 휴대전화가 보편화되자 이번에는 모바일 게임을 만들어 시장을 주도했다.

이같은 흐름은 세계 게임계가 이번 WHO의 게임 중독 결정 배경에 한국과 중국 게임계를 주목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되고 있다. 그다지 길다 할 수 없는 게임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과 중국 게임계가 병리적 현상을 야기함으로써 제도권에 빌미를 제공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아닌 걸 그렇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재미를 봤든, 판을 흔들어 됐든 게임은 오로지 게임이기 때문이다.

게임의 태생적인 문제점을 간과했다는 지적을 피해 갈 순 없다. 수출 효자 노릇한다는 칭찬에 이를 눈감아 왔다. 제도 정비에도 뒷짐을 져 왔으며 엔터테인먼트산업의 또다른 특질인 이웃과 사회에 대한 관심도 소홀히 해 왔다. 그렇다. 그 한가지, 게임만 내다보며 달려온 것이다.

그렇다고 게임이 괴물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원인이 아닌 결과물에 책임을 지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큰 사건 가운데 게임 중독으로 빚어진 사건은 단 한 차례도 없다. 게임과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는 사건은 없다할 정도다. 결국 이를 입증할 과학적, 의학적인 근거도 없이 게임을 괴물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게임계에 대한 제도권의 이같은 시선은 한마디로 게임계를 하대하는 것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다. 제도권에 족보도 없으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겠다 싶다. 하지만 그 것을 오로지 게임계의 책임이라고 돌리기엔 제도권의 박대와 철저한 외면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게임계의 한 인사에게 문화 훈포상을 시상하려 했다. 그러나 법적인 근거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게임 개발 및 유통에 관한 법률 등 진흥법은 있으나, 게임에 대한 문화 정의를 명시한 법률은 한줄도 없어 정부 관계자 조차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끝내 그 인사는 훈포상을 받질 못했다.

안타깝게도 그 관계 법령(문화예술진흥법)은 지금까지 국회에서 잠을 자고 있다. 게임계에 대한 사시적인 시각이 이 정도이니까 그렇게 마음대로 불러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제도권은 지금 모든 화살을 게임계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도도한 문명의 역사의 강은 멈추지 않고 흘러 간다.

영화가 그랬듯이, 그리고 음악이 그랬듯이. 그리고 대중 문화예술이 모두 그랬듯이. 게임은 게임일 뿐이니까.

[더게임스 뉴스 1에디터/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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