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탓 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봐야…사회공헌ㆍ정치역량 강화 등 과제

게임업계가 그동안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그동안 게임을 향한 '마녀사냥'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것은 일부 언론과 보수 정치인, 학부모단체, 학자 등을 통한 다소 감정적인 차원의 것들이었다. 하지만 최근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한 것은 종전의 비난이나 왜곡과는 다르다. 세계 의료계를 대표하는 기관이 게임을 질병으로 보고 본격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비록 이 제도가 국내에서 시행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고는 하지만 만약 이 질병코드 도입이 현실화된다면 게임업계는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 자명하다. 뿌리부터 흔들리게 될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더러운 병원균 보듯이 할 것이 뻔하다. 

그런데 이 문제를 놓고 게임계가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성명서를 발표하고 게임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WHO에 이의를 제기하는 등 부산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저기에서 '게임은 죽었다'며 아우성이다. 무슨 과학적 근거로 게임을 질병으로 규정했느냐며 비난하고 그들의 몰상식함을 탓하고 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WHO를 비난하고 잘못된 논리를 반박하는 것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다. 상황이 왜 이렇게 됐나 게임계가 부족한 것은 없었나 돌아봐야 한다. 이렇게 된 데에는 게임계의 책임이 전혀 없는 것일까. 남을 탓하기 전에 나를 먼저 반성해 봐야 하는 것은 아닌가.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이를 극복할 때 더 큰 기회가 찾아왔다는 것을 기억해 봐야 한다. 지금이 최대의 위기라면 이 고비를 넘기면 새롭고 엄청난 기회가 다시 찾아올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당장 시급한 발등의 불을 끄는 것이 중요하지 한가하게 나를 돌아볼 여유가 어디 있냐고 따질 수 있다. 하지만 '급할 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너무 서두르고 코 앞의 현안에 몰입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잘못된 것을 바꾸기 위한 투쟁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투쟁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의 잘못을 반성하고 변화하지 않는다면 투쟁은 오히려 힘을 약화시키고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투쟁과 함께 동시에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말이다.

이 참에 게임이 질병이 아니라는 것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확실히 보여주고 게임에 대한 오해를 풀어준다면, 그리고 그동안 모래알 같았던 게임계가 이번 기회에 똘똘 뭉쳐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더 큰 기회가 찾아올 수 있다. 하지만 이 위기를 그저 위기로만 보고 남 탓하는 데 모든 힘을 소모한다면 시민들이 외면할 것이고 결국 힘을 모두 소진하고 나면 무릎을 꿇고 말 것이다.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무엇일까. 남에게 책임을 돌리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을 찾아보는 것이다. 필자는 세가지 방안을 제안한다. 첫째 사회공헌이다. 둘째는 정치역량 강화고 셋째는 대중문화로 자리잡는 것이다. 이 세가지 과제가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게임중독 질병 코드의 도입은 그리 큰 문제가 안될 것이다. 

얼마전 국내 최대 기업 중 하나인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이 기업의 목표를 사회공헌으로 정하게 된 배경을 이야기했다. 그는 과거에는 기업을 키우고 성장시키는 것에 모든 것을 걸었지만 그것이 잘못된 방향이라는 것을 알았고 이제는 기업이 어떻게 하면 사회에 더 많은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목표로 정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최 회장은 큰 보람과 만족을 얻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SK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아내와 함께 '빌&멜린다 게이츠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에는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렌 버핏도 함께 참여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전재산의 절반을 이 단체에 기부해 인류를 위한 일에 쓰이도록 했고 많은 억만장자들이 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세계를 놀라게 했던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와 매켄지 베이조스의 이혼소식. 그리고 그 후 들려온 아내의 기부 소식으로 세계는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운 좋게 얻게 된 부를 다 갖는 대신 절반을 게이츠재단에 기부하기로 한 것이다.

사회공헌 기업은 단순히 착한 기업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한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그만큼 사회공헌의 중요성이 커진 것이다. 게임계도 그동안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해 왔다. 하지만 불우이웃돕기식의 생색내기에 그쳤다고 볼 수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봉사활동 말고 좀더 게임업계에 맞는 사회공헌이 필요하다. 게임 과몰입을 예방하거나 피해자들을 돕는 일에 더 매진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전재산을, 또는 절반을 내놓는 통큰 기부도 필요하다.  

다음으로는 왜곡된 인식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치적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코드로 지정한 것은 그들에게 게임업계의 입장을 어필할 만한 정치인이 없었고 그만한 역량도 없었기 때문이다.

국내에도 게임업계 출신 정치인은 웹젠의 오너인 김병관 국회의원이 유일하다. 친게임 성향을 갖고 있는 정치인들도 극소수 존재하지만 그들은 전문가가 아니라 젊은 층의 표를 의식해 활동하는 인물이 대부분이라 할 것이다. 정치적인 역량을 키우는 것은 하루이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또 돈만 있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니다.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사회지도층과의 교류와 협력이 뒷바침돼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아직 그러한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면 지금부터라도 10년, 20년 후를 내다보는 장기적인 투자와 교류 협력에 나서야 한다.

마지막으로 게임을 대중문화로 자리잡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직 역사가 짧다는 이유로 게임은 대중문화에 끼어들지 못하고 있다. 영화와 만화, 음악에 대해 중독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영화나 만화가 대중문화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화를 즐기는 이들을 마니아나 오타쿠 등으로 부르지만 이 용어는 질병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게임만 질병으로 규정되는 것일까.  

영화나 만화, 음악은 다양한 장르가 만들어지며 폭넓게 사랑받고 있다.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고 휴식이 되며 즐거움을 선사한다. 게임도 이렇게 다양해지고 위안과 휴식을 줄 수있는 작품들이 많아져야 한다. 이른바 '굿게임'이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감동을 주고 여운을 남기고 친구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작품이 늘어날 때 게임은 대중문화라는 철옹성을 뚫고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을 문화와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이 매우 어려운 과제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변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질병과 중독이라는 주홍글씨를 벗겨내지 못할 것이다. 지금이 바로 변해야 할 때다. 어영부영 하다가 이 마지막 기회마져 놓쳐버린다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더게임스 김병억 편집담당 이사  bekim@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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