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계를 만만히 보고 진행한 폭거 … 이젠 현안마다 놓고 치열한 논리 싸움 벌여야

세계 보건기구(WHO)의 심상찮은 움직임은 이미 지난해 부터 포착돼 왔다. 지난해 5월, WHO 측에서 게임 중독 의제 상정을 앞두고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 건 순전히 전략적인 측면을 고려한 때문이었음이 이번 B위원회의 회의 결과를 통해 입증됐다. 이들은 게임중독 코드 도입 추진에 대해 위원회의 만장일치란 이름으로 통과시켰다. 지난해 이때만 해도 게임중독에 대한 회원국들의 컨센서스는 제대로 이루어지기 이전이었다. 이를 질병코드(ICD)로 분류할 것인가 말것인가 하는 것은 후차적인 문제였다. 이를테면 다소 무리란 견해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1년 지난 이후 다시 논의하자며 계획을 미룬 것은 순전히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현 WHO 사무총장의 의중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란 게 WHO 안팎의 분석이다.

에디오피아 국적의 테드로스 총장은 외무, 보건 장관을 역임하고, 마거릿 챈 총장 후임으로 5년 임기의 WHO 최고의 수장에 올랐다. 그는 과거의 이전 총장과 달리 치열한 경선을 치르고 그 자리에 올랐다. 또 그는 에디오피아 보건장관 시절에도 빼어난 보건 행정 능력을 보여줘 에디오피아의 보건 개혁을 이끈 인물로 불려 왔다.

게임중독이란 의제를 꺼내든 이가 테드로스 총장이라는 설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그가 그 같은 의제 채택에 일정부문 역할을 했다는 데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일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데다, 보건 행정에서 보편적 건강 보장이란 비전을 말해 온 그이기에, 설익은 의제가 될 수 있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 게임 중독이란 화두를 과감히 총회에 붙일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다.

국제 질병코드로 등재되게 되면 각국에서는 이의 등재 여부를 결정져야 하는데, 바로 등재해서 시행해야 하는 강제성은 떨어진다. 하지만 이를 막연히 손을 놓고 있기는 쉽지 않은 노릇이다. 이미 질병이란 코드가 국제사회에 등장했고, 현상적인 것이 없으면 몰라도 그런 유사한 일들이 빚어지고 있다면 정부 입장에서 뒷짐만 짓고 있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B위원회가 국회로 보면 상임위 역할을 한 것이라고 보면 28일로 예정된 본회의 통과는 명약관화한 일로 보여진다.

결과를 놓고 보면 1년간의 유예기간 동안 게임계가 한 일이라곤 하나도 없는 셈이 됐다. 뒤늦게 정부와 학계, 게임계가 팔을 걷어 붙이며 달려 들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새삼 느끼는 것은 게임계의 태생적 체질이 어쩜 그렇게 국내외적으로 빼닯아 있는가 하는 점이다. 자기 자신 외는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나만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아주 이기적인 행태를 이번에도 여지없이 보여준 게임계였다.

시간을 되돌려서, 한국과 미국 일본 등 주요 게임 개발국들이 국제 공조를 통해 WHO에서 진행중인 질병 코드 도입 추진에 맞서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더라면 과연 결과는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예상대로 답은 나왔을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34인의 WHO 집행위원의 기표 행위에 뭔가 변화의 조짐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게임계가 순진한 건지, 아니면 세상 공부에 너무 등한시 하는 건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게임 외의 다른 공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데는 대부분 동의한다. 그렇다보니 세상 돌아가는 얘기에 대해 익숙치가 않다. 뭔가를 얻기 위해 진영 싸움을 벌이는 정치꾼처럼, 오직 투쟁의 역사를 통해 얻어진 전과를 자랑하는 저작권 단체들처럼 극단의 치열함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게임계가 때 아니게 동네 북이 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WHO의 게임중독 코드 도입 추진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게 아니냐는 필자의 견해가 단지, 제도권에 대한 피해 의식 때문일까.

게임계가 그저 분하고 답답하다며 속을 썩일게 아니라 억울하다면 지금이라도 세상 공부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당연하지 않다면 넘어가지 말고 문제점을 제기해야 하고, 부당하다면 소송도 불사해야 한다. 마음대로 게임을 배끼거나 가져다 쓰면 변호사를 내세워 이같은 행태를 막아야 하고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정치꾼도 돼야 한다. 지금까지 게임계가 보여준 순하디 순한 모습에서 가차없이 벗어나야 살 수 있다.

위메이드 장현국 사장은 차분한 성품의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조자룡의 검을 쓰는 인물로 통하기도 한다. 그가 ‘미르의 전설 2’와 관련한 저작권 침해 문제로 중국 기업과의 다툼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를 마무리 지으면 또 하나의 문제가 생겨나는 식으로, 지칠 법도 하건만 그는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맞서 싸웠다. 그리고 승전보를 알려왔다. 그러다 보니 그는 어느새 싸움닭이란 변명까지 따라 붙었다.

그런데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다행히 그에게 원군이 생겼다. 정부가 게임 등 해외 저작권 침해 업체들의 실태를 조사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막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필칭, 이런 식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치열하게 공부하고 싸워서 쟁취해야 한다. 정부의 후속조치는 그 전과의 덤인 것이다. 게임계에 요구되는 제도권과의 싸움은 이제 '장현국'식'이 돼야한다.

WHO의 게임질병 코드 도입 추진을 놓고 하늘만 바라보며 땅을 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어찌보면 게임계에 새로운 면모를 요구하는 시대적 요청으로 위로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 하더라도 공부에 게을리해서는 곤란한다. 게임 공부 뿐 아니라 돈을 버는 공부, 세상 살이에 기본이 되는 공부에 더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감히 넘보지 못한다. 게임계가 이젠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다. 싸움닭이 돼야 한다.

[ 뉴스 1에디터/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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