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 위원회서 만장일치 통과...우리나라는 2025년부터 적용될 듯

게임업계 반대 속에서도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제 11차 국제질병 표준분류기준 개정안(ICD-11)’이 25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72차 세계보건기구(WHO) 총회 B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B 위원회에서 통과된 새 기준은 28일 폐막하는 총회 전체 회의 보고를 거치는 절차만 남았기 때문에 사실상 개정 논의는 마무리됐다. ICD-11은 194개 WHO 회원국에서 오는 2022년부터 적용된다.

게임 질병 분류 코드는 명확히 규정되지도 않은 명칭을 비롯해 근거가 부족한 비과학적 분류 등 다각도로 문제가 제기됐으며 반대 여론이 거세게 이어져왔다. 또 이를 통해 게임에 대한 인식 역시 타격을 입게 되고 악의적인 선입견이 심화될 것이란 우려와 함께 게임 산업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WHO의 총회를 통해 ICD-11 등재가 결정됨에 따라 게임업계에 미칠 파장 역시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WHO가 2022년부터 게임 질병 코드의 도입을 권고한다는 점에서 당장의 변화보다는 이에 대비하는 각계의 행보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이 같은 WHO의 권고에 따라 한국 표준질병 사인분류(KCD)’에 게임 질병을 넣을지를 결정해야 한다. KCD는 1952년 제정된 ‘한국사인상해 및 질병분류’를 시작으로 2015년까지 7번의 개정을 거쳐 ‘KCD-7’으로 분류되고 있다. ‘KCD’는 5년마다 개정되고 있다. 앞서 7차에 이어 내년 고시를 목표로 8차 개정 작업이 진행될 전망이다. 때문에 2022년까지 유예 기간을 갖는 WHO의 ICD-11 개정안은 당장 내년의 KCD가 아닌 그 이후 순서로 적용된다.

현재로서는 WHO의 권고를 그대로 수용할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WHO에서 게임 질병 코드를 도입하면 이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KCD의 9차 개정 시기인 2025년 WHO의 게임 질병 코드가 우리나라에 적용되고 본격적으로 이를 통해 효력이 발휘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또 이제 게임질병 코드에 대한 갑론을박은 이 같은 KCD 수용으로 쟁점이 달라지게 됐다는 것이다.

게임업계는 이에따라 WHO의 질병 분류 오류와 허점을 알리는 동시에 무비판적 수용에 대한 위험과 피해를 경고하는데 힘쓸 전망이다. 이는 WHO의 총회를 통해 게임 질병 코드가 등재되는 것을 반대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립각을 세울 상대가 우리의 제도권이 된다는 점에서 격렬하고 소모적인 논쟁이 펼쳐질 가능성도 크다는 평이다. 특히 게임 과몰입 예방 및 치료 등을 위시한 WHO 코드 수용을 찬성 측과 이를 막으려는 친 게임계의 대결이 예상되고 있다.

앞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WHO에 ICD-11 반대 입장을 전달한 바 있다. ‘게임이용자 패널(코호트) 조사 1~5차년도 연구(건국대학교 산학협력단, 정의준 교수)’ 결과를 인용하며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은 부모의 양육 태도 및 학업 스트레스 등 다양한 심리사회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피력했다는 것.

때문에 문화부를 중심으로 게임 질병 분류에 대한 반대 입장 의견이 개진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반면 게임 질병과의 이해관계가 깊은 정신의학 등 의료계 집단에서는 복지부 및 여성가족부를 통해 여론을 만들며 대척구도를 만들어가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미 ‘셧다운제’ 도입을 통해 게임업계의 역량 부족을 드러낸 바 있다. 이는 게임계의 정치력 부족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게임계와 척을 지는 진영의 위세가 그만큼 대단해서 막을 수 없기도 했다는 평이다.

‘셧다운제’ 역시 실효성 없이 게임 산업에 막대한 피해만 초래한다는 무용론을 펼쳐왔으나 결국 도입됐다. 시행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됐으나 헌법재판소로부터 합헌 판결이 내려지는 등 게임계의 목소리가 전혀 닿지 않았다.

이번 게임 질병 분류의 경우 WHO를 통해 권고를 받게 됨에 따라 게임계의 주장을 전달하기 더욱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전 세계적 기구로부터의 결정인 만큼 공신력을 내세우기 용이해 여론의 지지를 받기 수월하기 때문에서다.

이에따라 전면 반대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빨리 인정하고 차선책을 선택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게임 질병 분류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더라도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WHO의 ICD에는 ▲적절한 게임 플레이 시간 조절 불가 ▲게임과 여타 행동의 우선순위 지정 장애 ▲게임으로 인한 부정적인 결과 무시 등이 게임 질병 분류 기준으로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향후 ICD의 효력이 발생하게 되면 이 같은 기준에 따라 게임 질병에 대한 진료가 이뤄지거나 처방이 내려지게 될 전망이다. 그러나 앞서 심도 깊은 연구 없이 질병으로 지정돼 오진의 우려가 크다는 지적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게임 그 자체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주지 않도록 하거나 게임계가 스스로 자정 작용을 할 수 있는 모양새를 만들도록 게임업계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고 그나마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게임 질병 분류 등재 어떻게 이뤄졌나>

업계 및 학계는 1996년 킴벌리 영 박사가 미국 정신의학회에 보고하면서 언급한 ‘문제적 인터넷 사용’이 게임 질병 분류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인터넷 과몰입에 대한 논의가 발전되는 과정에서 게임이 지목됐고, 이를 통해 게임 장애 및 중독을 다루기 시작하게 됐다.

이후 2013년 미국 정신의학회가 정신질환진단 통계편람 5판(DSM-5)에 ‘인터넷 게임 장애’를 추가 연구 필요 항목으로 포함시키면서 논란이 됐다. DSM-5의 게임 장애는 기준이 너무 넓고 모호하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학회 측 역시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2017년 WHO가 ICD-11에 게임 질병을 등재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반대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앞서 비판을 받아온 DSM-5를 비롯해 학계의 임상 사례 등을 통해 초안을 작성했다는 점 역시 WHO의 문제로 지적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HO는 지난해 총회를 통해 게임 질병 등재를 추진키로 했으나 결국 안건에 포함시키지 못하면서 논의가 미뤄지게 됐다. 이후의 유예 기간 동안 반대 목소리가 계속되긴 했으나 이를 철회하지 않고 다시 안건을 상정했다는 것.

결국 1년여 만에 게임 질병 분류가 WHO 총회 안건에 상정되며 해당 내용에 대한 개정안이 의결됐다.

[더게임스 이주환 기자 ejohn@thegames.co.kr]

저작권자 © 더게임스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