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 기관장 대동한 거창한 행보…실질적인 것 보다는 생색내기, 전시용 방문이 아닌지

박 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9일 판교에 있는 게임업체들을 잇달아 방문했다. 문화부는 이번 박 장관의 판교 방문에 대해 최근 시장 부침 현상과 함께 세계 보건기구(WHO)의 게임 질병코드 도입 움직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임계를 격려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날 박 장관 판교 방문에는 게임계 산하 기관장들이 거의 망라 되다시피 해 규모를 짐작케 했다.

주무부처 장관이 산업 현장을 방문해 업계 관계자들의 민원을 청취하고 그들을 위무하는 일은 무엇보다 바람직한 일이다. 또 박 장관은 취임 이후 게임 산업계와의 과거 인연을 생각해 제일 먼저 판교를 방문했다고 한다. 게임계 입장에서 보면 눈물겹도록 고마운 일이다. 주무부처 장관이 그 것도 게임계의 산실이라고 하는 판교를 직접 방문하고, 또 과거의 연까지를 생각하며 현장을 찾아 줬으니, 이보다 좋을 순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장관에 취임하게 되면 현장 방문이라는 이름 아래 의례적으로 달려오는 곳이 이젠 판교라는 지역이 되지 않았는지, 정말 화급을 다투는 일이 있었다면 전시성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참석자 규모를 실무자 중심으로 축소해 방문할 수는 없었는지 등등, 갑자기 여러 잡다한 생각이 떠올랐다.

한국적인 정치 풍토에 비춰 보면 장관의 동선과 움직임엔 큰 의미가 있다. 그렇게라도 해야 공무원들이 그 쪽을 바라보고 챙기기 때문이다. 하물며 시선까지 외면한다면 그 산업계는 사양 업종으로 봐야 할 것이다. 냉정한 것 같지만 그 것이 현실이다. 그래도 장관 나들이에 게임업종이 제외되지 않고 그 일정에 속해 있었다 하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인데, 이를 그렇게만 해석해야 옳은 건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솔직하게 말하면 장관이 다녀간 이후로, 뭔가 달라져야 하는데, 이전 사례를 들여다 보면 그런 것을 눈을 씻고 봐도 찾아 볼 수 없으니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그래도 좋은 것이라고 한다면 유구무언일 뿐이다.

최근 들어 가장 뜨거운 이슈를 몰고 있는 WHO의 게임 질병코드 도입 움직임에 대한 논란은 퀘퀘히 묶힌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상당한 기간이 경과한 의제다. 게임계는 이 문제를 놓고 정부 측과 지속적인 대화를 나눠 왔다. 하지만 구체적인 대응 플랜이란 걸 그동안 한번도 보질 못했다. 문화부가 지난달 WHO측에 한국 정부의 입장을 담은 서한을 보낸 것이 전부일 정도다. 그 것도 오는 20일 WHO측에서 게임질병 코드 도입 여부를 묻는 의제를 본회의에 상정키로 결정하고 나선 이후다.

그간 정부의 대응 방안을 보면 관련 기관 및 단체를 통한 토론회 그리고 좌담회 등이 주 메뉴를 이뤘다. 이 것은 의안 채택을 막기 위한 해법 가운데 압박 수단은 될 수 있을 지언정 실질적인 비토 전개를 위한 움직임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하겠다.

WHO 측에서는 작년 4월 강경한 자세로 밀어 붙이던 이 문제를 갑자기 1년 정도 미뤄 다시 논의하겠다고 발표했다. 뒤늦게 알려진 바로는 산업계의 반발이 예상보다 컸고, 특히 미국과 일본에서 문제점을 제기하는 등 강하게 반대 입장을 표명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 때까지도 우리 정부는 강 건너 불 보 듯 했다. 그러나 국제 외교 무대에서 무임 승차 손님에겐 파이를 나눌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건 좀 다른 얘기다. 중국 당국이 게임 판호에 대해 지난 2년간 거의 묶어 두다시피했다. 여기서 판호라는 것은 영화로 얘기하면 개봉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이른바 판권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중국 당국은 이를 한국 게임에만 유독 그대로 적용하는 등 게임 시장 문을 꼭꼭 걸어 잠궜다.

중국 당국이 특히 괘씸한 것은 외국기업 가운데 목소리 큰 나라의 게임에 대해서는 차등 적용을 하는 등 선별적으로 문을 열고 닫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국 게임들은 한국기업들에 보란 듯이 국내 시장에 토해냈다. 한쪽 손으로는 자국의 문은 꽁꽁 가둬 잠그고, 다른 한쪽 손으로는 물줄기를 한반도로 돌려 자국의 이익을 쫌쫌히 챙긴 것이다.

이같은 일련의 행태들에 대해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문제점을 제기하는 등 강력히 항의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질 못했다. 판호와 관련해선 중국 당국과 실무 회담조차 열질 못했다. 중국 당국이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회의 문턱을 피해 갔고, 때가 되면 곧 풀릴 것이라는 그들의 입장을 곧이곧대로만 믿은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해를 거듭하다 지난달 겨우 매듭이 풀리긴 했으나, 중국 당국이 움직이지 않는 한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는 사실만 안겨주고 말았다.

그래서 장관이 제일 먼저 선택한 행선지가 판교였을까. 그렇게라도 해서 위로하고 달래 주기위해 부랴부랴 달려 온 것일까.

그러나 보다 이성적으로 게임과 관련한 각종 현안을 풀어 나가겠다고 한다면 박 장관이 의례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실질적이고 실효적인 행보를 보였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컨대 경기침체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업계의 처지를 보면 더 그렇다. 외교 문제는 현안처리 메뉴가 달라 그렇다 손 치자. 업계와 스타트업들의 자금난을 덜어 주기 위해 박 장관이 만사를 제쳐두고 경쟁적 관계이자 돈 많은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불쑥 방문했다고 하면 이를 쇼로만 받아 들여졌을까, 아니면 박 장관의 깊은 뜻으로 비춰졌을까. 적어도 박 장관이 산업에서 요구하는 것을 아는 장관이란 소리를 들을 수는 있지 않을까.

문화 장관에 취임하면 의례적인 것처럼 판교를 방문하는 데 대해 고맙다고 동의하고 싶지 않다. 민심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것에 기대어 보여주기 위한 무대가 되선 곤란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장관의 업계 현장 방문 일정에 대해 시시콜콜, 평가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적어도 구두탄에 그치는 민원 해결이란 이름의 현장 방문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민원 해결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장에 와서 업계의 목소리만이라도 제대로 듣고 돌아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짜피 선물 보따리를 내놓을 맘도 없었을테니까.

재탕 삼탕되는 정부 지원책을 장관의 목소리로 또다시 듣고 싶지는 않다.

[더게임스 모인  뉴스 1 에디터/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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