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다가오는 총회 앞두고 '초비상'...근거부족·확대해석 등 일부 의학계 맹비난

본 회의 통과 땐 대형 태풍급 피해 우려

이달 20일부터 28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총회에서 게임과몰입에 대한 질병코드 분류를 논의한다. 이를 막기 위해 국내에서도 게임업계는 물론 정치권, 협단체, 학계 등 다양한 부문에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게임업계는 질병 분류의 근거 부족 및 확대 해석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특히 WHO의 게임 질병 분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이를 사전에 차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 이를 계기로 업계뿐만 아니라 제도권의 합심해서 게임의 가치를 올바르게 알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과몰입 질병코드 분류는 이미 일찌감치 게임업계뿐만 아니라 각계각층에서 우려를 사며 문제제기가 돼왔다. 당장 이달 총회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이를 막기 위한 국내외 대응 움직임이 활발해 지고 있다. 반대의견 전달과 새로운 단체 구성, 토론회 등이 속속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 기준‧절차 불투명 지적
WHO는 국제질병분류(ICD)의 제 11차 개정안에 '게임 장애'를 질병으로 등재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세계 보건 총회에서 최종 승인이 날 경우 2022년부터 효력이 발생하게 된다.

최근 게임 중독으로 인해 뇌의 일부분이 붓고 커진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돼 논란이 된 바 있다. 일부 매체에선 WHO의 게임 질병 코드화 움직임을 뒷받침할 근거라면서 게임 중독에 대해 위험성과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고 보도했다.

업계는 WHO의 질병 등재가 현실이 된다면 이 같은 사례가 끝없이 등장하게 될 것으로 우려를 표하고 있다. 

게임업계는 이미 명확히 규정되지도 않은 명칭을 비롯, 근거가 부족한 비과학적인 분류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향한 중독 프레임은 계속돼왔으며 이번 WHO의 질병화 분류 시기가 가까워질수록 이를 더욱 옥죄는 양상이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WHO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화 이슈에 대해 한국게임산업협회에서도 반대하는 의견을 제출하는 등 민・관 공동 대응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협회는 WHO ICD-11 의견 수렴 사이트를 통해 게임과몰입 질병 코드 신설에 대한 반대 의견을 전달했다. 특히 게임이용장애(과몰입)를 규정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기준과 절차가 불투명한 점을 문제로 제기했으며 게임이 사회적 의무 회피에 악용될 것으로 설명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 역시 게임이용장애에 대해 반대 입장을 냈다. 게임업계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의 반대 의견이 전달된 것이다. 

문화부와 진흥원이 전달한 의견서에는 ‘게임이용자 패널(코호트) 조사 1~5차년도 연구(건국대학교 산학협력단, 정의준 교수)’ 결과와 함께 현재까지 발행된 1~4차년도 보고서 원문이 참고문헌으로 포함됐다.

# 근본적 대안은 따로있다 
건국대 산학협력단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한국의 10대 청소년 2000명을 게임이용자 청소년 패널로 구성해 게임이 이용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게임 과몰입의 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이는 게임이용자 대상의 장기추적 연구로서 사회과학과 임상의학 분야 패널을 각기 조사해 게임 과몰입의 인과관계를 종합적으로 규명했다.

문화부와 진흥원은 의견서를 통해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은 게임 그 자체가 문제 요인이 아니라 부모의 양육 태도, 학업 스트레스, 교사와 또래지지 등 다양한 심리사회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패널조사 연구내용을 핵심적으로 피력했다.

또 임상의학적 관점에서도 게임 이용이 뇌 변화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와 같은 질환이 있을 때 게임 과몰입 증상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견서에는 게임 과몰입에 대한 진단과 증상에 대한 보고가 전 세계, 전 연령층에 걸친 것이 아니라 한국・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 국한됐고 청소년이라는 특정 연령층에 집중된 점에 대한 문제제기도 포함됐다.

강경석 진흥원 본부장은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화는 게임 산업에 대한 극단적인 규제책으로만 작용할 뿐 게임 과몰입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며 “본 사안에 대해 학계·업계 관계자들과 유기적인 공조를 통해 게임 과몰입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널리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토론회 역시 활발하다. ‘게임, 커뮤니케이션으로 읽기’에 이어 ‘태그톡, 게임장애 원인인가 결과인가’ 등 다양한 행사 및 토론회가 열리며 게임장애의 질병 코드 분류를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져왔다.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NDC)’ 강연에서도 청소년기 게임 과몰입 원인은 게임이 아니라 학업 스트레스 등이라는 내용이 발표됐다. 학계에서도 게임질병 분류에 이견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반대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 산업 전반 손실 불가피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관계자도 WHO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 스테트슨 대학교의 크리스토퍼 퍼거슨 정신의학과 교수는 진흥원이 개최한 ‘제4회 게임문화포럼’에서 “사람들은 운동이나 낚시, 또는 고양이 기르기 등에 이르기까지 여타 과도한 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특히 게임에 대해서만 심각한 문제로 삼고 있다”면서 “게임이 다른 것들 대비 중독성이 높다거나 특별한 영향을 미친다는 근거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게임 과몰입이 단일 장애라기보다는 증상으로 봐야한다"면서 "게임 과몰입을 원인으로 착각하면서 잘못된 방향의 정책들로 피해가 발생하게 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WHO의 게임장애 분류는 내부에서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진행됨에 따라 미국정신의학회(APA) 등이 반대 성명서를 내놓고 있다는 게 퍼거슨 교수의 설명이다. 높은 위양성율(오진)을 비롯해 정신질환에 대한 오해를 키우는 등 여러 부정적인 영향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퍼거슨 교수는 또 “청소년 시력 보호를 이유로 게임이용시간을 규제하는 중국과 같은 아시아 국가의 정치적 압력 개입도 의심된다”고 말했다.

한국 게임과 문화 관련 협·단체들이 게임질병분류를 반대하기 위한 공동대책준비위원회를 발족하는 등 집단 차원에서 목소리를 모으는 행보도 계속되고 있다. 위원회에는 43개 조직이 참여 중이며 그 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위원회는 게임 유저의 권익 보호를 위해 다양한 인권 단체에도 동참을 요청해왔다. 또 과거 대책위들과 달리 게임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 콘텐츠 협단체들이 참여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게임과몰입이 질병으로 분류될 경우 산업 전반의 막대한 손실은 물론 종사들의 사기저하가 불가피하다”면서 “이를 근거로 한 새로운 규제 등 다양한 문제점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를 표하고 있다.

문화연대 측은 “한국에서 게임은 셧다운제 시행과 함께 게임중독법 제정 논란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중독물질’과 ‘사행성조장 콘텐츠’라는 프레임에 갇혀 강력한 규제의 대상이 됐다”면서 “이번 WHO의 국제질병 분류코드 추진이 현실화된다면, 한국에서 게임은 보건적 질병의 대상으로 낙인찍히는 매우 불행한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게임스 이주환 기자 ejohn@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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