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계 일부 '모럴 해저드' 심각... 자기 절제, 사회를 향한 진정성을 보여줘야

게임계에 대한 제도권의 도덕적 잣대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엄격하다. 일부 스타트업 대표들은 이에 대해 다소 이해 할 수 없다는 예민한 반응을 보이지만, 상당수 게임업체들은 게임이란 장르의 특성상 그럴 수도 있는 것이라며 의외로 담담한 표정이다.

무엇보다 게임의 흥행성 못지않게 사회 병리적 현상이 매우 크고, 제도권에 미치는 영향 또한 적지 않기 때문이다. 또 게임과 경쟁의 위치에 있는 영화, 음악 등 엔터테인먼트 장르의 기업들은 그들 자신보다는 대중 속에서 숨을 쉬는 스타들에 의해 파이가 만들어지고 창출되는 반면, 게임기업은 그렇지가 않다는 점이 그같은 엄격한 잣대를 가져다 대는 배경이 되는 듯 하다.

게임은 개발자에 의해 창조된 아바타와 그의 놀이 그림을 통해 완성된 작품이다. 따라서 게임 개발자 또는 개발사는 자신들이 즐기는 놀이 문화의 조정자이자 창조자인 셈이다. 그들에게 기꺼이 세금(게임비)을 내고, 그들이 만들어 낸 피조물을 육성하는 등 끊임없는 관심과 성원을 보내는 것이다. 개발자에 대한 엄격한 도덕적 기준 요구는 어쩜 여기서부터 비롯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의 삶 역시 게임의 그 것처럼 버그가 생겨서도 빚어지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게임계 역시 이들의 눈 높이를 의식한 때문인지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대한 경계선은 일정 부문 지켜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아주 일부 게임인들의 일탈 행위다.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최 모 회장은 완구업계의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뒷 배경 하나 없이 오로지 빼어난 머리와 부지런함으로 회사를 일으켰다. 하지만 뒤늦게 게임계에 입문하면서 재미보다는 좌절을 맛 봤다. 어렵게 모은 상당한 재산을 게임으로 날렸다는 설도 있다. 그런 그가 모럴 해저드 논란의 방점을 찍은 것은 업계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앞으로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 나겠지만, 그의 이력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가 왜 그같은 무모한 짓을 했는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머리는 있으나 받쳐 주는 이가 없는, 말 그대로  흑수저이기 때문에 벤처에 뛰어 드는 것은 아니지만, 벤처를 창업해 성공한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흑수저 출신들이고 보면 무턱대고 아니다고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인 것 같다. 실제로 미국의 실리콘밸리 스타들을 보면 오로지 아이디어 하나로 벤처에 뛰어든 경우가 적지않다. 그렇지만 벤처로서 성공했다고 해서 제 멋대로 회사를 좌지우지 하지 못한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징벌적 퇴출을 당할 수 있는 제도적인 요인도 그 것이지만, 무엇보다 그렇게 해선 안된다는 그들만의 원칙이 묵시적으로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어깨를 펴고 금 수저처럼 한번 살아 보겠다는 과시욕도 그래서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 밖에서는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가려 한다면 나락으로 떨어질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일부 게임인들의 도덕적 해이는 산업인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경계선과 국민과 팬들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기 때문에 빚어진 일탈 행위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약간 다른 얘기지만 팬들의 시선을 두려워 한다면 결단코 마약이라는 금단의 열매에 기웃 거릴 순 없다. 국민을 조금이라도 의식한다면 자신에게 더 엄격하고 절제함이 있어야 했다. 또 산업인이라면 차세대에에게 남겨줄 그 무엇인가를 놓고 고민하는 자세를 보여줘야 옳다. 이런 마음 가짐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근접하는 모습 정도는 보여줘야 하는 데 그렇지가 못한 것이다. 함량미달인 때문인가, 아니면 풍토의 문제인가, 이에 대한 솔직한 답을 내놓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게임은 태생적으로 경계하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과몰입과 사행성, 폭력성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것들을 품고 제도권으로 진입한다는 것은 가히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1세대 게임인들은 이를 어렵게 이뤄냈다.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마치 불가항력적으로만 보여진 게임놀이를 철옹성과 같은 제도권에 안착시킨 것이다.

‘게임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의 물리학자 윌리엄 하긴보섬은 자신이 쥘 수 있는 게임에 대한 저작권 모두를 포기하고 이를 사회에 기부했다. 그는 게임이란 놀이가 지구촌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장르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했다. 그의 이같은 용단이 게임인의 정신적 유산이 되었고, 게임계의 정신이 된 것이다. 그래서 날아 오를 수 있었다.

일부 게임인들의 일탈 행위는 상당히 우려스런 수준이다. 특히 A사는 비위업체로 아예 이름을 드러낸 채 거명되고 있으며, 유명 게임 하나로 스타덤에 오른 B사는 창업주의 부도덕성으로 끊임없이 여론의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C사의 경우는 엄청난 순익을 거두면서도 사회 공헌도를 나타내는 각종 지표는 바닥을 치면서 파렴치한 기업이란 업계의 비난을 사고 있다. 이들의 이같은 행태는 무임 승차 수준에 있는 게 아니라 게임이란 동산의 미래의 나무를 마구 파헤치며 갉아먹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할 것이다. 이에따라 일각에서는 이들을 게임계에서 퇴출시켜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를 내고 있으나 뽀족한 수가 없다는 게 고민이다.

창공을 가르는 새는 위대하다. 그 누구도 범접할 없는 곳을 마음껏 날아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때론 질시와 시기의 대상이 되곤 한다. 게임계에 대한 제도권의 시선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알 수 없는 것들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면 일정 수준은 사회로 되돌려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문일 수도 있는 것이다.

태풍은 그냥 오지 않는다. 짙은 먹구름의 예고가 있다. 적어도 창조주의 흉내를 낸 것이라면 낮은 자세의 마음과 소외된 이들에 대한 측은지심의 따뜻함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멈추지 않고 계속 창공을 날 수 있다. 또 그 것이 게임계가 극복해 나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일부 게임인들의 도덕적 해이에 대해 그 전조의 증상이라고 한다면 너무 큰 비약일까.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기 마련이다.

[더게임스 모인 뉴스 1에디터/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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