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콘텐츠 벤처 육성…대기업과 호흡이 맞아 떨어져야 '성공'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최근 검찰수사를 받고 있다. 한 직원이 A사로부터 업무 편의를 봐 주는 댓가로 큰 돈을 받았다는 것인데, 사실 진위 여부는 검찰측의 수사 결과를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대한민국 콘텐츠 분야의 본산이라고 일컬어 지는 곳에서, 더군다나 정부의 주요 산하기관이라는 곳에서 이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터져 나왔다는 건 대단히 유감스럽고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과거, 이전에도 이같은 일이 간혹 빚어지긴 했지만, 아주 자그마한 사건들이었다. 한콘진은 이에 따라 직원들의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업 과제와 관련한 업체와의 대면 자체를 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 개선을 추진하기도 했다. 또 사업 타당성 여부를 따져보기 위한 심사 평가단 및 위원 선정에 대해서도 전문가 그룹을 통한 랜덤 방식으로 진행토록 해 기관 내부인 또는 특정인이 심사를 좌지우지 할 수 없도록 시스템을 보완해 왔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같은 제도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열 사람이 달려 들어도 한 사람의 도둑을 막을 수 없다는 속담은 그래서 더 설득력을 얻는 것 같다. 하지만 기강 해이에다 근무 태만 등  한콘진이 조직 관리에 큰 헛점을 드러냈다는 세간의 비난을 면키는 어려워 보인다.

한콘진 내부 직원의 비리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를 이처럼 길게 언급하는 것은 때 마침 정부가 콘텐츠 산업 육성을 위한 전방위적인 계획을 세우는 등 큰 의욕을 보이고 있는 시점에서 엉뚱하게 비리사건이 불거져  나왔다는 데 대한 실망감 때문이다. 정부의 구체적인 밑그림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과거 국민의 정부 시절, 벤처 붐을 주도하던 방식으로 게임을 비롯한 콘텐츠 스타트업들을 지원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구체화하고 세부적인 그림을 그리는 곳은 다름아닌 한콘진과 같은 정부 산하기관이다. 그런데 이 모양을 드러낸 것이다. 기운을 빼도 이처럼 때 맞춰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까 주변에서는 한콘진을 믿을 수 없는 기관이라며 그 곳에서 관장하고 있는 e스포츠 분야를 따로 떼어자신들이 해보겠다고 야단이 아닌가.

어찌됐든 정부가 벤처 육성을 새삼스럽게 강조하고 나선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청년 일자리 창출 및 고용 증대를 위한 방안 가운데 최적의 방식은 벤처 육성 밖에는 답이 없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가시화하며, 실질적인 형태로 이끌어 낼 수 있느냐의 여부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정부의 지원책 등이 영구적일 수 없다는 현실적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불쏘시개 역할은 성실히 수행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이후까지는 기대하기 어렵다. 국제무역기구(WTO)의 규약이 그렇다. 따라서 정부 못지않은 다음의 역할은 대기업들이 수행해 줘야 한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대우영상사업단과 삼성영상사업단은 대한민국 콘텐츠산업 육성을 위한 아궁이 역할을 톡톡히 해 냈다. 특히 삼성영상사업단이란 조직은 남달랐다. 과연 이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 게임, 영화, 뮤지컬, 음악 등이 본 궤도에 진입할 수 있었을까 할 정도로 활약상이 컸다. 지금도 그 당시의 주요 멤버들은 현업에서, 또는 이선에서 활동중이다. 안타까운 점은 한치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조직을 완전 해체한 것이다. 산업에 불을 지피는 아궁이 하나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필자는 당시 신낙균 문화부장관을 만나 삼성영상사업단의 해체가 아닌 존속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이에 공감한 신 장관은 삼성그룹에 철수 방침의 철회를 요청하는 레터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상황을 예측할 수 없었던 삼성은 끝내 영상사업단 해체를 결정했다. 1995년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과학화 및 하드웨어와의 접목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겠다는 꿈을 키우며 만들어진 영상사업단이 불과 출범 4년여 만인 1999년 여름 산업계에서 완전 공중 분해된 것이다.

그러나 없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을 불살라 산업 주변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 해야 할 것이다. 게임 산업의 밑거름이 됐으며, 한국영화의 부흥기를 그들 페밀리들이 이끌었다. 척박하다 못해 뿌리조차 내리지 못할 것이라던 한국의 뮤지컬은 지금 브로드웨이 그 것과  못지않은 흥행 규모를 보이고 있다. 음악은 아예 한류 붐이란 대찬 기류를 지구상에 만들어 냈다. 대우영상사업단과 삼성영상사업단이란 조직과 인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란 추론은 더 이상의 칭찬 또는 과대 평가라고 할 수 없다.

시대를 마감한 용어라고 할 수 있겠으나, 민관 협력 없이는 지금과 같은 어려운 시장 경제를 이겨낼 수 없다. 정부에서는 씨앗을 뿌리고, 민간에서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다양한 채널을 열어 벤처를 지원하는 형식이 돼야 한다. 이 모습이 당시 IMF를 극복하던 그 모습이다. 한가지 더 추가한다면 규제를 대폭적으로 완화했다는 것이다. 벤처뿐 아니라 대기업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측면에서 정부가 최근 규제 샌드박스의 기준과 규모를 놓고 고민하며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노력은 나름 평가하고 싶다.

다만 이를 탄력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의 그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아쉬움이다. 그래서 나오는 얘기가 바로 삼성그룹의 콘텐츠 사업 재개의 필요성이다.

일각에서는 애플의 사업 다각화와 스마트폰의 수요가 정곡점을 맞이했다는 점, 그리고 이로인해 스마트폰의 수익률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삼성의 신 사업 구상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 것이 콘텐츠 비즈니스라는 것이다. 이같은 시도는 삼성도 살고 게임 및 IT 벤처도 일어나고 경제도 회생되는 일석 삼조의 득이 될 것이란 설명이다. 이를 놓고 보면 이전의 삼성영상사업단의 해체 결정은 삼성에 두고 두고 한이 되는 일이 되지 않았겠나 싶다.

벤처를 살려야 한다. 그러나 달랑 벤처만으로는 기동력이 떨어져 옴짝달싹 할 수 없다. 불꽃의 길을 한 곳으로 모아주는 아궁이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대기업의 역할이 있어야 하고, 그 같은 채널이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정부 정책도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이런 중차대한 상황에 한콘진의 때 아닌 직원 비리 소식은 또 뭐란 말인가. 한콘진 핵심부에 외부인들이 너무 많이 유입돼서 그런 것일까. 그러고 보면 안쪽 온도만 생각하고 바깥 쪽 기온은 들여다 보지 않은 탓도 있겠다.

[더게임스 모인 뉴스 1에디터/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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