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게임에 대한 검찰의 몰 이해
[데스크 칼럼] 게임에 대한 검찰의 몰 이해
  • 김병억
  • 승인 2019.01.15 09: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슈팅게임 통해 병역거부자 진정성 판단…범죄와 게임 상관관계 입증 못해

신앙 등에 의해 군 입대를 거부해온 사람들이 이제는 범죄자가 아닌 대체복무자로서 사회에 떳떳하게 설 수 있게 됐다. 이는 우리 사회가 획일적인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때 아니게 게임이 얽혀들어 쟁점이 되고 있다. 검찰이 슈팅 게임 접속 이력을 통해 '병역거부'에 대한 진정성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나선 때문이다. 검찰이 병역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제주 지역 종교적 병역거부자 12명(1심 4명, 항소심 8명)에 대해 슈팅 게임 회원 가입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검찰청은 전국 각 검찰청에 병역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는 병역거부자들의 주장이 정당한지를 판단하는 10개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침에는 병역거부자가 종교적으로 여호와의 증인 등 특정 종교 신도인지, 평소 종교활동을 성실히 수행해 왔는지 등이 포함된다. 이 가운데 ‘서든어택’ ‘배틀그라운드’ 등 총을 쏘는 슈팅 게임 가입 여부도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것.

만약 병역거부자가 총기를 다루는 행위를 거부하는 '집총거부' 신념을 지녔다면 총으로 사람을 해치는 게임을 한다고 했을 때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게 검찰 측의 논리다. 검찰은 이에따라 슈팅 게임을 서비스하는 업체를 통해 병역거부자들의 접속 기록을 확인하고 있다고 한다.

슈팅게임은 총기를 다루는 게임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이 게임을 즐기는 모든 유저를 '잠재적 살인자'로 몰아가는 것은 비약이 너무 심하다고 할 수 있다. 외국에서도 총기난사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범인이 00 슈팅게임을 즐겼다'는 식의 마녀사냥이 벌어지곤 한다. 하지만 슈팅게임 때문에 살인자가 됐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적이 없다. 오히려 가정이나 사회의 불만요소로 인해 총기를 사용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우리나라도 이런 분위기는 마찬가지다. PC방에서 강력사건이 벌어지면 그 때마다 '범인이 00게임 유저였다'는 내용이 단골메뉴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선 일반인의 총기소유가 법으로 금지됐기 때문에 그동안 총싸움 게임이 큰 지탄을 받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병역의무 거부자에 대한 진정성을 판단하는 근거로 슈팅게임이 이용되면서 게임업계는 '어이없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게임은 기본적으로 경쟁과 협력, 그리고 성장이라는 요소를 근본으로 하고 있다. 슈팅게임뿐만 아니라 모든 MMORPG게임은 몬스터를 사냥하거나 상대 유저와 대결해서 승리하는 과정을 통해 캐릭터를 성장시킨다.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 간 승패를 가르는 PK(플레이어킬러)도 이뤄진다.

이렇다고 볼 때 모든 RPG 유저들은 '예비 살인자'라는 논리도 성립된다. 게임이 범죄자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너무도 비약적인 논리다. 게임을 통해 사회성을 배우고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긍정적인 요소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서로 싸우고 죽이는 일이 벌어진다고 해서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다. 

해외에선 게임을 통해 카타르시스 현상이 생기기 때문에 오히려 폭력성이 순화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총싸움게임이 실제 총기사용과 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범죄자가 게임을 즐길 수는 있지만 게임을 즐긴다고 해서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게임은 이제 소수 마니아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사회의 지도층들도 심심치 않게 즐길 만큼 대중화됐다. 그리고 검찰 내부에서도 많은 검사들이 게임을 즐기며 자란 세대일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수십년 전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말이 있듯이 게임은 어디에 넣어도 좋은 핑계거리가 된다는 그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게임에 대한 '마녀사냥'은 쉽게 멈추지 않을 것 같다.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라고 하는 검찰조직은 변화하는 시대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게임에 대한 몰이해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더게임스 김병억 편집담당 이사 bekim@thegames.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