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즐거움을 중심에 두고 충분히 논의돼야

게임의 기본적 정의는 ‘규칙을 정해 승부를 겨루는 놀이’이다. 여기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놀이’다. 놀이의 즐거움은 승부의 결과보다는 ‘승부를 겨루는’ 과정에서 핵심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는 로제 카이와의 저서 <놀이와 인간>을 통해 제시된 놀이의 네 가지 분류를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규칙과 경쟁을 경험하는 ‘아곤’, 특정한 역할을 경험하는 ‘미미크리’, 확률과 우연을 경험하는 ‘알레아’, 집중과 몰입을 경험하는 ‘일링크스’는 모두 게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에 해당한다. 각 요소들은 개별적으로도 작용하지만 복합적으로 구성될 수도 있기 때문에 게임의 즐거움은 그만큼 다양한 셈이다.

게임의 장르 역시 게임의 다양한 즐거움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장르별 특성에 따라 부각되는 즐거움의 요소가 다르다는 기본적인 속성 외에도, 게임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점차 다양해지고 세분화되는 게이머들의 취향과 더불어 게임 장르는 여러 장르가 서로 결합되거나 새로운 장르가 만들어지는 등의 방식으로 변화해왔다.

기존의 형식 내에서 새로운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은 물론, 장르의 경계를 폭넓게 넘어서거나 아예 새로운 장르의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매체와 두드러지게 구분되는 게임의 중요한 특징에 해당한다. 이러한 특징은 게이머로 하여금 게임을 통해 지속적으로 미지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게임의 새로운 경험을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규칙이다. 게임의 매력적인 세계관과 그것을 구현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게이머를 초대하기도 하지만, 게임의 세계에 발을 들인 게이머가 그 세계를 계속해서 경험하려면 난이도, 캐릭터 그리고 아이템 등 게임 방법에 관한 요소들이 적절하고 조화롭게 제공돼야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규칙은 게이머가 게임의 세계관에 공감하면서 게임의 방법에 동의하도록 하는 무게중심으로 작용한다.

한편 규칙 못지않게 게임의 즐거움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우연’이다. 게임이 소프트웨어를 매개로 한 제작자와 게이머 혹은 게이머들 간의 상호작용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게임에서의 우연은 계획되고 예정된 사건에 가깝지만, 게이머가 게임에서 경험하는 ‘우연’들은 게임의 즐거움을 배가시키곤 한다.

게임 도중에 뜻하지 않게 만난 캐릭터나 잘 모아둔 아이템이 게임 진행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는 경험은 게임에서 자주 겪는 일이다. 여러 게이머들과 함께 플레이하는 온라인 게임은 우연을 경험하는 경우의 수를 더욱 다양하게 한다.

종합하면 규칙과 우연의 조화는 게임의 즐거움을 좌우하는 관건이 된다. 게임을 하나의 세계에 비유한다면 게임의 규칙과 우연은 게임 제작자가 자신이 만든 세계에 부여한 세계관이자 작동원리에 해당한다. 게이머는 게임 플레이 자체 뿐 아니라 게임에 담은 제작자의 의도에 대해서도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에 이 부분 역시 게임의 즐거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게이머는 게임에서 경험하는 우연적인 상황 자체에 대해서도 재미를 느끼지만, 그 우연적인 상황을 배치한 제작자의 의도에 대해서도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창작물이라는 관점에서 게임의 예술성을 뒷받침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확률형 아이템’ 문제는 이러한 맥락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면서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 문제에 사회적인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확률형 아이템을 구입하는데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사용자들이 콘텐츠에 대한 비용을 지불한다는 관점에서 확률형 아이템은 부분 유료화 모델의 일환으로서 효율적인 수익 구조에 해당한다. 게임을 포함한 다수의 디지털 콘텐츠 가격이 점차 무료로 돼 가는 현실에서 실질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제작자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만 놓고 보면 사행성과 공정성을 중심으로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규제가 마련되는 것이 어느 정도 이해된다. 게이머는 적어도 지불한 비용만큼의 이익을 얻는 것을 보장받고, 게임사는 이를 보장하는 선에서 확률형 아이템을 운영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으로 충분한 걸까.

문제가 제기된 만큼 이를 합리적으로 해소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이 과정에서 게임의 즐거움을 중심으로 확률형 아이템을 다루는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졌는가에 대해 돌아볼 필요가 있다.

확률형 아이템은 온라인 게임의 부분유료화 모델과도 연관되지만 보다 긴 흐름에서 온라인 게임 아이템 현금거래와도 연관된다. 게임 속의 아이템을 현실의 화폐로 거래한다는 것에 대해 당시에 이루어진 논의를 돌이켜보면, 책임의 소재와 규제방안에 대한 논의는 활발히 이루어진 반면, 온라인 게임 아이템 현금거래가 게임의 즐거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 개발사와 게이머 그리고 관련기관이 게임의 즐거움을 중심으로 온라인 게임 아이템 현금거래에 대한 의견을 모았더라면 지금의 확률형 아이템 문제는 다르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따라서 이제라도 게임의 즐거움에 가장 큰 무게를 두고 확률형 아이템 문제를 함께 풀어보면 어떨까, 게이머와 개발사는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와 경험을 함께 만끽하는 관계이니 말이다.

[강지웅 게임평론가 iamwoong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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