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들의 의무 외면한 채 책임만 물으려는 태도 못마땅…게임의 제도화를 위한 법안 처리 급선무

국회는 최근 국감 증인으로 김 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을 불러 세웠다. 이전, 김 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과 이 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을 차례대로 증인석에 세운 국회는 이들을 잇달아 불러들여 뭔가 큰 뉴스 거리를 내놓을 듯 요란을 떨었지만, 결과는 소문난 잔칫집에 먹을 게 없다는 옛 말이 딱 맞다 할 만큼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했다.

이날 국회를 통해 첫 모습을 보인 김 사장은 검은 슈트 차림의 다소 굳은 듯한 인상이었지만, 의원들의 질의 수위가 예상과 달리 평이한 수준을 넘지 못하자, 자신있게 자신의 소신을 밝혀 나갔다. 순간, 장내에는 저 정도의 수준의 질의를 하기 위해 게임계 인사들을 국회로 불러 들였느냐는 비아냥 소리가 이쪽저쪽에서 들려 왔다. 굳이 그러게 하지 않아도 될 일인데, 국회가 억지를 썼다는 것이다.

기업의 임원들이 국회로 불려 나갈 경우 대부분 현안 질의보다는 윽박 지르기식의 질의로 곤욕을 치르는 일이 적지않아 각 기업에서는 국회 증인 출석을 되도록이면 피하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편이다. 특히 증인 선서 이후 의원들의 고압적인 질의 태도를 감내해야 하는 등 수모를 각오해야 한다는 점에서 각 기업들은 소속 임원들의 국회 출석을 극력 저지하려고 한다. 다행히, 과거와 달리 의원들의 질의 태도가 많이 순화(?)되긴 했지만, 증인을 향해 피의자를 다루는 듯한 밀어 붙이기식의 질의 행태는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이번 국감에서 김 사장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의 증인 채택을 강하게 밀어붙인 곳은 의외로 친 게임계 의원들이 많다는 더불어민주당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게 아니냐는 반응이 많았다. 특히 진보적 성향을 보여 온 S의원(민주당)이 이들의 국감 증인 채택을 강하게 밀어 붙인 것으로 전해지자, 주변에서는 의외라는 뒷말이 나왔다.

이번 김 사장의 국감 증언에 대해 게임계에선 예상외로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이번 국감을 통해 산업계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전달할 수 있었고, 김 사장이란 업계의 상징적인 인물이 게임 시장 현안을 직접 언급함으로써 무게감을 실어줬다는 평이다. 이를테면 변방의 놀이문화로 꼽히는 게임이 제도권의 중심이라고 여겨지는 국회에서 현안이자 쟁점으로 논의됐다는 점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는 것이다.

솔직히, 상당수 선량들은 게임에 대해 여전히 불량 청소년들이 즐기는 오락 기구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또 이들의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사회의 그 것과 별반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데 고민이 있다. 조금 깨어있다는 의원들만이 게임이 콘텐츠 수출의 50~60%를 점유할 만큼 경쟁력이 있는 문화 아이템이란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나머지 의원들은 게임은 커녕, e스포츠라는 새로운 형태의 경기 종목이 무엇인지 조차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 이러다 보니 게임은 폭력적이고, 사행성이 짙으며, 중독성이 강하다는 주장에 쉽게 공감하고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20대 국회에 진출해 있는 김 병관의원(민주당)의 고군 분투는 눈여겨 볼 대목이다. 왜냐하면 그는 게임계 출신인데다 의원들에게 게임에 대한 선문답을 명쾌하게 답해 줄 수 있는 적임자로 보여 지기 때문이다. 그는 또 지난해 업계 숙원 과제인 문화예술 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게임계 모두가 공감하는 말이지만, 게임이 종합 예술이라는 사회적 동의를 받는 과정에 게임계가 너무 소홀했다는 지적은 비단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 것은 오로지 시장만 키우면 쉽게 얻어지는 일인 줄만 알았다. 수출을 잘하고 경제에 이바지하게 되면 자연히 그 위치에 오를 것으로만 믿었다. 하지만 순진한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반세기를 흘려 보냈다.

문화예술진흥법은 대중문화 예술의 범위를 정해놓은 법률이다. 간단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제도권에서는 이 법안에 속하지 않는 장르에 대해서는 대중 예술이라고 칭하지 않는다.

1972년 제정된 이 법은 문학 미술 연예 음악 등을 문화예술의 범위로 정해 놓고 있으며, 몇 년 전, 법안 개정을 통해 만화 장르를 새로 대중 예술 범위로 편입시켰다. 김 의원이 내놓은 법안 개정안은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에 대한 답이 없다. 미뤄 짐작하면 게임에 대해 부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일부 의원들이 해당 상임위에 서 법안을 그대로 틀어 쥔 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감출 수 없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4년말 게임계를 위무할 목적으로 원로급 등 몇몇 게임계 인사를 대상으로 훈포상을 주는 방안을 추진한 적이 있다. 실무진은 이에 따라 포상 범위 등 법률적 검토 작업에 들어갔으나 계획은 흐지부지하게 없던 일이 돼 버렸다. 그 이유는 훈장을 줄 수 있는 법률적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방탄소년단이 최근 K팝의 명성을 전 세계에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화관문화훈장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대중 문화예술인이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는 사례는 적지 않다. 이 모든 것이 대중문화예술진흥법에 근거한 것이다.

올해로 게임산업이 이순을 맞이했다. 국내 게임 역사만 놓고 보더라도 거의 반세기에 가깝다. 그런 게임산업이 이같은 법률에 제외돼 있는 등 제도권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어찌보면 이에 대한 책임이 게임계 뿐 아니라 국회에도 없지 않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같은 국회가 게임계를 불러들여 콩놔라 팥놔라 하는 건 상당히 이율 배반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대한민국 온라인 게임 역사를 기록해 온 인사들에게 상은 주지 못할망정, 그들을 마치 죄인 다루듯 증언대에 서라며 윽박지르는 것은 아무리 에둘러 보아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 시점에서 국회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제발 입법기관으로서 할 일은 하면서 국회 활동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혼을 내려면 당근도 함께 줘야 한다. 게임계 인사들을 국회로 불러 들이려고 한다면 게임을 먼저 제도권으로 흡수하도록 하는 법 제도 정비를 서둘러 줬으면 하는 것이다. 그 것이 업계의 상징적 인물들을 국회로 초치하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더게임스 모인 뉴스 1에디터/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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