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1월 31일 서울에서 초등학생(당시 국민학생) 정병섭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병섭 자살 사건으로 알려진 이 일은 만화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불러오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이후 정부의 후속조치 등으로 국내 만화시장은 큰 타격을 입었다.

당시에는 해당 사건을 만화와 적극적으로 결부시켜 마치 만화를 악의 축으로 몰아세웠다. 오래전 일을 다시 언급하는 이유는 최근 이와 유사한 일이 다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다수의 민관단체 및 정치권에서 얼마전에 발생한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을 적극적으로 게임과 연관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국정감사 현장에서도 한 국회의원이 나서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원인으로 게임을 지목했으며,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는 사건 발생 이후 게임 규제 청원들이 빗발쳤었다. 이 같은 모습은 마치 모든 악행의 원인을 게임에 전가하는 마녀사냥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느낌이다.

게임은 살인을 유발하는 중독물질이 아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18 게임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10대 38.1%, 20대 30.6%가 온라인 게임(PC)을 하는 이유에 대해 ‘지인이나 친구들과 게임을 하고 싶어서(관계유지를 위해)’라고 답한 것이다. 즉 디지털 시대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한 보편적인 놀이문화라는 것이다.

마치 아이들이 나가서 사방치기, 고누놀이를 하면 아주 건전한 놀이고,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하면 불건전하게 보는 이런 시각은 시대 변화를 고려하지 못한 부적절한 인식이라 생각된다. 물론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며, 철저한 조사와 처벌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이 모든 책임을 게임에만 돌리는 것은 지극히 부당하다고 느껴진다. 게임이 무슨 요술을 부려 유저를 살인기계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실제 커뮤니티 등에서도 게임을 하는 수 없이 많은 사람 중, 몇 명이 문제가 있는 것인데 마치 게임이 이를 유도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주장이 거세다.

국내 게임시장의 상황이 어렵다. 치열한 내수경쟁으로 중소 업체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으며, 중국 판로는 막혔다. 여기에 자국 내 규제로 중국 업체들이 국내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게임장애를 질병코드로 분류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굳이 자체적으로 게임업계의 사기를 꺾고 새로운 규제를 만들 필요는 없어 보인다.

만약 지금 어느 협단체에서 만화책이 아이들을 자살로 몰고 간다며 수 많은 만화책을 저질 도서로 못박고 이를 불태운다면, 시대착오적인 시각을 가진 곳이라며 조롱받을 것이다. 만화 시장의 경우 치명적 타격을 입고서야 이러한 시각이 정착됐지만, 부디 게임의 경우 이 같은 일이 없기를 희망하며 예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라는 어이없는 해프닝 정도로 추억되길 바란다.

[더게임스 강인석 기자 kang12@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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