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게임 시범종목 채택으로 스포트 라이트 .... 용어 정비 등 국제 스포츠 외교에 대비해야 할때

부산의 수영구는 산과 바다를 함께 끌어 안고 있는 지형으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뒤로는 금련산이, 앞으로는 널따란 광안리 해수욕장이 자리하고 있어 옛부터 배산임해(背山臨海)의 고장으로 불려 왔다.

이 곳은 또 부산의 대표적인 놀이문화의 명승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정월 대보름에 열리는 ‘수영야류’와 ‘좌수영어방놀이’ ‘수영농청놀이’ 등은 서민의 풍류와 애환을 가감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민속 문화로서의 가치도 높게 평가되고 있다.

수영구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약 1.4 Km에 달하는 반원형 형태의 백사장을 끼고 있는 광안리 해수욕장이다. 바다 수면의 깊이가 일정해 여름 피서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광안리 해수욕장은 주변에 해상 복층 교량인 광안 대교가 놓여짐으로써 전국의 명소로 떠오르게 됐다.

하지만 이 곳은 불과 20여년 전에만 해도 아는 사람들만 드문 드문 찾아오는, 말 그대로 고즈넉한 어촌 수준에 불과한 해수욕장이었다. 그렇게 한적한 해수욕장이 전국적인 관심사를 이끌고,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4년 7월 ‘스타 크래프트’라는 게임으로 프로 게임 대회의 결승전이 치러진 덕분이었다.

지난 얘기지만, 주최측은 당초 예상 관람객 수를 그렇게 높게 잡아 놓치 않았다. 기껏해야 몇 만 정도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날 열린 결승전에 쏠린 팬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무려 10만에 가까운 팬들이 운집,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은 물론 주최측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같이 예상치 못한 반응에 놀란 곳은 선수들과 주최측 뿐 만이 아니었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현장 리포트를 통해 연일 이날 프로게임(훗날 e스포츠로 불림)대회의 열기를 보도하는 등 새로운 문화 기류의 탄생과 게임 팬들의 높은 참여도를 소개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e스포츠의 성지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e스포츠의 인구는 전 세계적으로 약 4억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하지만 그 증가 추세의 흐름은 예상보다 더 가파르게 전개되고 있다. 일각에선 2020년께이면 약 10억 명의 지구촌 사람들이 e스포츠를 즐기게 될 것이란 긍정적인 전망도 없지 않다. 이쯤 되면 하계, 동계 올림픽과는 별개로 글로벌 e스포츠 대회가 열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목소리도 나올 법하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2일 인도네시아에서 폐막된 제18회 아시안 게임에서 e스포츠 종목을 시범대회로 치른 데 대해 정식종목 채택을 위한 의미있는 첫 걸음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대회를 마침에 따라 조직위에서는 시범종목 채택에 따른 보고서를 별도로 아시아 올림픽 평의회에 제출하게 되겠지만, 관심도와 흥행 측면만 놓고 보면 정식 종목 채택 가능성도 없지 않다. 따라서 새 종목 채택을 둘러싼 각국의 힘 겨루기는 한층 더 치열해 질 것으로 예상된다.

e스포츠 무대에서 한 중 일의 경쟁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경쟁국인 중국은 이미 e스포츠 산업을 전략 콘텐츠로 지목해 놓고 집중 육성에 나선지가 상당히 오래 됐다. 대학에서는 게임학과에서 아예 e스포츠 부문을 떼내 e스포츠학과로 해 이론과 실무를 겸하도록 하고 있으며, 일본도 이에 뒤질세라 e스포츠 부문에 대한 정부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e스포츠 종주국이라고 불리는 한국 e스포츠계의 처지를 들여다 보면 안타깝기 그지 없다. 협회는 여전히 회장 부재인 상태이고, 학계의 관심은 e스포츠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온적이다. 정부는 잡음만 없으면 된다는 식으로, 오로지 안전 주행에만 신경쓰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게임업계의 e스포츠 부문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 움직임이다. 펍지의 경우 최근 e스포츠 육성을 위한 중장기 전략을 발표했고, 액토즈소프트는 전용구장 마련에 주력하는 등 e스포츠 산업 육성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e스포츠 부문에 대한 투자가 여전히 민간 베이스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 일본과 크게 대비된다 할 수 있겠다.

또 이 시점에서 간과해선 안될 것은 e스포츠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역사적 서술과 근거로 마련해야 할 것이란 점이다. 이러한 노력은 향후 있을지도 모를 종주국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며, 국제 e스포츠계에서 이니셔티브를 쥐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의 일환임엔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런 측면에서 다음의 글은 사족에 가깝다 할 것이다. 가끔 필자에게 e스포츠라는 용어에 대해 물어오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 어떻게 e스포츠란 용어가 만들어지게 됐느냐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용어는 어느 나라도 아닌 대한민국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간혹 해외 언론에서 e스포츠란 용어를 쓰긴 했지만, 아주 드문 사례였고, 이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고 체득케 한 것은 대한민국 e스포츠계이다.

특히 1999년 전자신문이 일간지로는 최초로 e스포츠 면을 개설해 e스포츠 용어를 쓰기 시작하면서 이 용어가 안착했다는 것이 정설이다.(북코리아 발행, 187쪽) 그럼에도 상당수 e스포츠계 인사들이 e스포츠란 용어가 어떻게 만들어 졌고, 어떻게 시작됐는지에 대해서도 까마득히 모른 채 e스포츠 산업을 논하고 있다. 한마디로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다. 그러니까 자꾸 중국과 일본에서 종주국 타이틀을 놓고 기웃거리는 게 아닌가.

e스포츠 산업이 글로벌화 되면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아지고 있다. 하물며 종주국 타이틀까지 잃고 싶지 않다. e스포츠의 성지인 광안리 해수욕장이 속한 부산 수영구는 충절의 고향이다. 때를 놓치면 수성의 기회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국내 e스포츠산업 육성을 위한 재정비의 노력이 절실한 때라 아니할 수 없다.

  뉴스 1 에디터/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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