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가 즐기고 있는 게임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필자는 크게 두 가지 갈래로 나누어 예측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게임을 즐기는 방식. 상호작용성을 지닌 놀이라는 본질은 동일하겠지만 구체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온 방식인 가상현실(VR)은 상상을 통해 게임세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에서 실제로 게임세계를 직접 경험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것으로 게임을 경험하는 방식을 확장시키고 있다.

사실 이 방식이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상상되고 시도되어 왔던 방식이 기술의 발전을 통해 실제로 잘 구현되기에 이른 것이다. 상상되어진 기술은 점차 구현되어져간다는 관점에서 보면, 앞으로 인간의 상상력을 보다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이러한 방식은 앞으로 더욱 세련되고 정교하게 발전할 것이다.

그뿐인가. 미래에는 게임을 할 때 컨트롤러를 사용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뇌파를 활용하는 기술이 더욱 발전해 생각만으로도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게 된다면 더 이상 컨트롤러가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냄새를 구현할 수 있게 되어 재료와 조리법을 선택하는 것에 따라 어떤 요리가 만들어질 수 있을지 경험할 수 있는 게임을 즐기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상들이 실제로 구현되는 시기가 되면, 아마도 게임에 관한 거의 모든 개념들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려야할 것이다. 전에 없던 새로운 개념들을 사용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고, 기존의 개념들 중 어떤 개념들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어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게임의 미래에 관해 상상해볼 수 있는 또 다른 갈래는 게임의 사회적 지위이다. 미래의 사회는 게임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사회는 현재 게임에 대한 상반된 관점을 가지고 있다. 긍정적인 관점은 여가를 보내는 여러 방식중의 하나로써 게임을 바라보는 반면, 부정적인 관점은 게임을 즐길수록 일상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것이라는 의심을 품고 있다. 서로 다른 이 두 관점은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지만, 미래에 게임이 사람들의 일상과 삶을 구성하는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요소가 된다면, 게임에 대한 관점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불필요해질 것이다.

올림픽은 4년마다 각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모여 최고의 기량을 지닌 선수를 가리는 전 지구적인 축제이다. 해당 종목에서 가장 우수한 기량을 지닌 선수는 누구이며, 자신의 국가가 어느 정도의 성적을 낼 것인지 궁금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이러한 관심은 올림픽 중계방송 시청률을 통해 가늠할 수 있는데, 점차 줄어들고 있는 시청률은 올림픽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이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다른 조사결과도 있다. 올림픽에 관한 시민들의 의식을 조사한 한국 갤럽의 발표에 따르면, ‘올림픽이 있어 생활이 더 즐거워졌다’고 응답한 비율이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당시 75%였던 반면, 2016년 리우 올림픽 당시에는 55%였다. 왜 사람들은 올림픽에 대해 점차 관심을 잃어가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를 고려해볼 수 있겠지만, 올림픽이 아닌 다른 것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그 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고, 각종 e스포츠 대회의 중계방송 시청률이 올림픽과 달리 빠르게 증가하는 것을 고려해보면, 게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스트리밍 미디어 이용이 증가하고 있는 흐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낮은 연령대일수록 전통적인 방식의 방송보다 스트리밍 방송을 더 선호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이미 전통적인 채널과 방송의 개념을 낯설어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본방사수’라는 용어의 의미가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될지 모른다.

이들에게 본방사수란, 지정된 시간에 완성된 프로그램을 단지 한 방향적으로 시청하는 것이 아니라, 스트리머가 예고한 시간에 맞추어 접속해 실시간으로 스트리머를 포함해 다른 접속자들과 함께 피드백을 서로 주고받으며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이러한 스트리밍 방송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지는 분야는 게임이다. 이는 게임을 하는 것뿐 아니라 함께 보는 방식으로도 게임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즉, 게임의 영역이 점차 늘어나는 것이다. 게임을 하지 않되 누군가 게임을 하는 방송을 보는 것을 게임을 한다고 봐야할까, 그렇지 않다고 봐야할까.

게임을 둘러싼 지형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현재 한국사회에서 게임에게 제기되는 질문들이 문득 낯설게 느껴진다. 게임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 상반된 관점이 여전히 충돌하는 가운데, 충분한 토론과 합의를 거치지 않은 규제 일변도의 정책이 게임 산업과 게임문화에 초래한 예견되었던 문제들에 대해 이제서야 반성과 논의를 시작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나치게 늦은 감은 있지만 오히려 사회가 게임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과정 없는 결과는 없고 현재를 거치지 않고 미래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강지웅 게임평론가 iamwoong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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