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적폐논란 과연 적절한가…한건주의식으로 밀어붙이는 건 곤란

박 정희 정권 시절, 가장 뜨겁게 스크린을 달군 영화는 신 성일 안 인숙 주연의 ‘별들의 고향’이었다. 74년 개봉된 이 영화는 당시 청춘의 기수로 불리는 소설가 최 인호와 거장 신 상옥 감독 아래서 조연출을 맡아온 재간꾼 이 장호 감독이 손을 잡고, 당대의 명물 가수 이 장희와 기타리스트 강 근식이 음악을 맡는 것만으로도 세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특히 ‘별들의 고향’은 작가 최 인호가 대중 소설이란 이름을 기치로 내걸고 쓰기 시작한 신문 소설로, 20대 젊은층으로부터 적지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이를 놓고 보면 이미 흥행을 예고하며 만들어진 영화였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세인들의 관심은 여배우 안 인숙의 가슴 노출 컷에 쏠렸다. 영화 팬들을 끌어 들이기 위해 자극적으로 연출해 만든 스틸 컷이었겠지만, 이를 활용한 영화포스터는 당시 주류를 이룬 그 것들과는 자못 ‘격’이 달랐다. 어쨌든 이 영화는 관객 46만이라는 당시로선 상상을 초월하는 대히트를 기록했다.

이같은 성적으로 영화사는 활짝 웃었으나, 영화 심의를 담당하는 공연윤리위원회(공륜)는 때 아니게  홍역을 치러야 했다.

어떻게 여 배우의 가슴이 노출되는 신을 삭제하지 않고 그대로 심의 통과했느냐는 것이었다. 공륜은 이후 소재 제한과 표현의 자유를 억제하는, 통제와 검열의 주범으로 낙인찍혀 기관 무용론에 휩싸였다.

콘텐츠 제작자와 이를 심의하는 단체간의 사이를 놓고 흔히, 절대 갑과 을의 관계라고 한다. 그 만큼 심의기관의 입김이 세다는 뜻이다. ‘별들의 고향’에서 경아(안 인숙 역)의 파격적인 장면이 심의에서 살아 남지 못한 채 삭제 됐다면 과연 그같은 흥행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까. 그만큼 심의 기관의 영향력과 목소리는 절대적이었다.

공륜 이후 등장한 심의 단체는 영상물 등급위원회(영등위)였다. 헌법재판소가 공륜의 심의 행위에 대해 검열에 해당한다며, 영화 음악 등 문화 예술인들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등위는 공륜의 심의 기능을 대신하기 위해 정부가 급조해 만든 단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 때문인지 심의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중문화 심의에 대한 정부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 아주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특히 게임은 콘텐츠의 주류로 자리매김하며, 사회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영등위에서 떨어져 나온 게임물등급위원회(게임위)의 출범은 그런 측면에서 아주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2006년 여름 ‘바다 이야기 사태가 빚어지면서 영등위는 만신창이가 됐다. 솔직히, 이 게임은 릴 게임 형태의 아케이드게임으로, 특별히 눈여겨 볼 작품도 아니었다. 문제는 당시 오락실에서 이를 통해 상품권 제공이 가능토록 했고, 이게 사행의 단초가 됐다. 영등위의 일각에선 이 게임의 운용에 대해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꾸준히 보냈으나, 끝내 오락실에서 이뤄지는 사행은 막질 못했다. 온 나라가 ‘바다 이야기’ 사태로 진흙탕이 됐고, 게임은 도박이란 오명을 그대로 뒤집어 쓰고 말았다.

이같은 수모를 뒤로 한채 출범한 게 게임물등급위원회였다. 게임위는 말 그대로 서비스 기관으로 거듭났다. 김 기만, 이 수근, 백 화종(작고)으로 이어지는 역대 위원장들은 게임위를 탈 권위적인 기관으로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김 기만 초대 위원장은 게임의 대중화를 위해 게임계 인사들보다 더 발품을 팔며 민간단체 등을 접촉하며 다녔고, 백 화종 위원장은 직원들의 임금이 정부의 법리해석 착오로 예정일에 주지 못하게 되자, 자신의 집을 저당 잡혀 자금을 조달하기도 했다.

게임위의 문을 닫고 게임물 관리위원회(게임위)가 새롭게 출범한 것은 박 근혜 정부가 들어서기 이전인 2013년 12월의 일이다. 관계 법령 개정에 따라 명칭을 바꾼 게임위는 시대 변화에 따라 다양한 혁신을 꾀했다. 자율등급제를 도입했고, 민간 심의 단체의 출범을 알렸다. 외국 심의 단체와 제휴를 맺는 등 등급 선진화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 같은 게임위이지만 기관 무용론 및 심의 폐지론의 여론에서는 비켜서질 못했다. 이번에는 심의 기관의 본질적이고도 구조적인 문제점 때문이 아니라 적폐 청산의 연장선상에서 시장 퇴출이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 선봉에 서 있는 주 공격수들이 과거와는 다르게 게임 등 대중 문화계 인사들이 아니라 정치권 주변의 인물이거나 이해 득실에 따라 언제든 행동을 달리 할 수 있는 익명의 인사들이 적폐를 운운하며 그같은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과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함으로써 시작된 시민 저항 의식에서 시작된 게 아니라 상당히 정치적이고도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문제 제기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같은 접근방식은 걸리적 거리거나, 자신들을 불편하게 한다면 언제든 뽑아낼 수 있다는 우월적 심리와 이 기회에 무엇을 이루겠다는 한건주의에서 논의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게임위는 업계를 직접적으로 육성하고 지원하는 기관이 아니다. 업계 입장에서 보면 항시 불편한 존재다. 솔직히 말하면 없는 편이 낫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그리고 때 아니게 무슨 적폐의 대상이란 말인가.

[더게임스 모인 뉴스 1 에디터/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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