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영화 부흥에 새 인물들 큰 역할…게임계는 체화 못되고 1회성 그쳐

국내 게임산업의 역사는 한마디로 일천하다. 조립 게임기의 역사를 포함하더라도 30여년의 성상을 쌓았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영화와 음반산업은 1백 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고, 출판의 경우에는 가히 그 역사를 언급하기 조차 무안하다 할 만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국내 게임산업은 그러나 해마다 놀라울 속도로 성장해 왔다. 한 때 잠시 주춤하기도 했지만, 고속 성장한 산업 가운데 게임을 압도하는 업종은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큰 폭의 상승세를 이끌어 왔다.

그에 반해 산업의 자족 능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편이다. 개발 인력에 대한 고용 방식 뿐 아니라 경영 매니지먼트에 대한 노하우 또한 크게 부족한 편이다. 또 그 것 뿐인가. 경쟁 업종간 협업 경험도 일천하다. 이를 다시 말하면 게임만 바라보고, 그 것에만 매달려 왔기 때문이란 역설로 대변할 수 있겠지만, 게임 산업을 단순히 일회성 내지는 미시적 관점에서만 내다본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이같은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 가운데 하나로 쓰여진 게 ‘외지인’ 영입이었다. 개발과 경영을 분리하겠다는 기업에선 전문 경영인을 불러 들였고, 개발인력 부족으로 허덕이는 기업에선 정보 통신 분야 인력을 스카우트해 숫자를 맞췄다. 그렇게 숨을 돌리며 생존해 왔다.

하지만 자족 능력이 부족한 부문은 기업 못지않게 산업 인프라 부문도 처지는 마찬가지였다. 이에따라 유입해 들어온 이들이 법조계와 학계, 재계 출신의 인물들이었다. 문제는 이들이 산업에 급하게 투입됨으로써 시장의 안목을 견줄 수 없었거나, 또는 일회성에 그치는 프로젝트에만 쓰여짐으로써 산업과 동떨어진 얘기를 나열하는 등 되레 산업계에 혼선을 불러 오는 요인이 됐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손님과 같은 외지인들의 유입 수가 줄지 않고 계속 증가한 것은 산업이 그만큼 급성장했다는 뜻이다.

우성인자끼리의 결합은 열성의 성질을 지니게 된다는 게 일반적인 정설이다. 산업도, 사회도 대동소이하다. 그 때문인지 미국의 유명 대학에선 해당 학교 출신의 교수들을 절대 채용하지 않는다. 채용하더라도 그의 명성을 절대 평가하고, 학계에 이바지한 부문을 냉정하게 점검한 이후 채용 여부를 결정짓는다.

한때, 국내 영화산업은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허덕였다. 50~60년대, 아시아 시장을 주름잡던 한국의 영화가 70~80년대 들어서면서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아시아의 종이 호랑이 꼴이 된 셈이다. 그러던 국내 영화산업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후반부터 들이닥친 외지인들의 유입 때문이었다. 한국영화는 그 이전까지는 이른바 충무로 사람들이라고 일컬어지는 영화인들과 지방 흥행사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같은 영화 제작 구조가 외지인들이 들어오면서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이들 외지인들은 주로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온, 재벌기업 소속의 젊은이들이거나, 전문 캐피탈 소속의 매니저들이었다. 한국 영화는 이들의 열정에 의해 이내 곧 다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여기서 놓칠 수 없는 부문은 현재 국내 영화산업을 이끌고 있는 상당수의 주요 인물들이 이때 충무로에 입문한 외지인들이란 점이다. 그들은 원래의 기업으로 돌아가지 않고 혼탁한 영화판이라고 불리는 충무로 가에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외지인이란 경계 지역에 머물지 않고, 토착화된 충무로가의 사람으로 거듭났다.

국내 게임산업이 30여 성상을 쌓았음에도 계속 성장통을 겪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마치 손님처럼 처신해 온 일부 외지인들 때문이라는 지적은 영화산업의 성공 사례에 비춰보면 아쉽다 못해 뼈아프게 다가온다.

주요 게임기업 가운데 외지인으로써 토착화된 인물을 찾는다는 건 가히 모래밭에서 보석을 발견하는 격이다. 거의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게임 인프라 쪽으로 눈을 돌리면 더 심각하다. 영화계에 들어온 외지인들이 보석이었다면, 게임계에 들어온 외지인들은 한마디로 객간에 머문 ‘손님들’이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인프라 쪽 정부의 인재풀은 여전히 외지인들로 채워지고 있고, 지금도 그 인재풀은 금과옥조처럼 받들어지고 있다.

고루하다 할지 모르겠으나, 이젠 게임인의, 게임인에 의한, 게임인을 위한 판을 만들 시점에 서 있다 할 것이다.

영화계에 유입된 외지인들의 토착화가 하해와 같은 충무로가의 정서 때문에 흡수된 결과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산업의 정체성에 끌린 때문이었을까. 두 가지 이유, 모두 다 일 수 있겠지만, 굳이 후자라고 믿고 싶은 까닭은 영화계 만큼 자신들의 독보적인 영역을 외부 세력에 의해 빼앗기지 않고 당당히 지켜온 업종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게임계가 제도권에 보여준 것이 혹, 인류의 내일의 꿈과 희망이 아니라 겜블과 그 것을 통해 쥘 수 있는 돈 뿐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외지인들도 대충 돈벌이 식으로 머물다, 그렇게 떠난 것은 아닐까. 생각이 거기까지 머물다 보니 게임계에 유입된 외지인들에 대한 기억이 씁쓸하기만 하다.

게임인들도 이젠 당당히 지킬 것은 지키고, 정부에 요구할 것은 요구하는 등 전면에 나설 때가 됐다. 그러기 위해선 산업의 풍토를 바꾸고 분위기 또한 일신해야 한다. 이는 기득권 을 지키기 위한 배타적 발상에서 나온 게 아니라 산업의 정체성과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그리 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산업이 바로 서고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이를테면 그 것이 다름아닌 외지인이 게임계 사람으로 체화될 수 있는 풍토를 만드는 길이며, 게임계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지름길이 될 것이란 사실이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점의 게임계에는 게임을 모르는 무지한 외지인들이 너무 많고, 그들이 게임계를 좌지우지하며 흔들고 있다. 성장통이라고 하기엔 멋쩍은 현상이다.

[더게임스 모인 뉴스 1에디터/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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