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담배 규제때 처럼 국제적 조약까지 갈수도…게임계, 제도권과 손잡고 헤쳐나갈 방안 마련해야

세계 보건기구(WHO)의 게임 질병 코드 등재 방침이 알려지면서 전세계 게임계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이렇게 되면 각국의 보건 당국에서는 새로운 질병 분류책으로 ‘게임’을 신설해야 하는 데, 게임이란 대중 문화의 핵심 아이콘이 ‘정신 질환’이란 이름아래  놓일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질병코드 등재 여부 및 등재 시기를 결정하는 우리나라 통계청은 일단 5월 예정된 세계 보건 총회(WHA)의 결과를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또 ‘게임 장애’(Gaming Disorder)라고 언급하고 있는  새로운 질병 분류 코드 작업을 위한 11차 개정안(ICD-11)이 그대로 총회를 통과되더라도 이를 바로 등재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개정안 시행에 따른 문제점 등을 사전에 검토해야 하는 등 제반 사항을 살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에따라 2020년 전후로 이를 검토해 우리 보건 환경에 맞는지의 여부를 저울질한 이후, 수용 여부를 결정지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OECD 가입국인 우리나라가 WHO의 권고에도 불구, 독자적인, 혹은 과거의 ICD 버전만을 고집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여진다. 특히 WHO 지침이란 것이 권고 사항에 그친다 하더라도 국제기구에서 마련한 보건 규범을 마냥 외면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예상된다.

따라서 관건은 WHO의 이번 질병 분류 개정안이 총회를 그대로 통과할 것인가에 대한 여부인데, 그간 본부에서 예고해 온 상정 안이 수정되거나 철회된 사례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그 어느때보다 채택 가능성이 높다.

WHO에서 이처럼 게임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그만큼 게임이 미치는 정신적, 사회 병리적 영역이 매우 넓고 크다는 것을 뜻한다. 일각에서는 과학적 진단과 의학적 소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WHO측에서 ‘게임 장애’를 언급한 데 대해 아주 성급한 조치라는 목소리가 적지않다. 하지만 WHO는 특별한 하자가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이 시점에서 선제적 조치를 취하는 게 세계 보건 환경을 개선하는 데 더 맞는 일일 수 있다는 일부 의료계의 반응도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시간은 벌수 있겠으나,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란 점이다. 게임 맹주인 미국과 일본이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요량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현실적으로 ICD 새 버전을 외면할 수는 없어 보인다. 이 문제를 놓고 게임 산업계 관계자들과 소비자 단체간의 입장 차이도 묘하게 갈라지고 있다.

아케이드 게임을 비롯한 콘솔 게임과 온라인 게임, 모바일 게임 등으로 역사를 일궈 온 게임산업이 시장 개황 60여 년만에 최대의 위기에 봉착해 있는 것이다.

WHO의 등재 조치가 이뤄지게 되면 우선 담배의 사례와 같이 게임 유통을 제약하는 각종 국제 조약 등 후속 조치가 뒤따를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이같은 조치가 진행되면  게임 최대 수출국인 일본과 미국의 게임업체들이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수출 주도형인 우리나라 게임 산업도 예외는 아니어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여진다.  안타까운 점은 대표적인 문화 코드로 꼽혀온 게임이란 장르가 술과 담배, 마약, 도박과 같은 반사회적 중독 물질과 동일선상에 서게 된다는 사실이다. 전세계 게임계가 강력한 반발하고 나서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게임업계의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에 서 있다 할 수 있다. WHO의 등재 조치 이후 수순은 이를 각국별로 구체화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다.  실 예로, 금연 정책의 토대가 된 것은 지난 2005년 발효된 담배규제 기본협약(FCTC)에 따른 것이다. 이는 WHO의 담배 규제 조치 선언 이후 만들어진 국제 협약이다. 이를 통해 담배 제작 및 국제 유통을 정부가 규제토록 한 것이다.

언필칭, 그건 아니다며 손사래만 칠 것이 아니라 반면교사의 교훈을 찾는 등 대책 마련을 서두를 때가 아닐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선 민간기업의 노력뿐 만 아니라 학계의 관심과 이해가 절대적이다. 필요하다면 공동의 연구 과제를 수행하는 등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 시점에서는 적어도 게임계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직시하고 깨달아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도 게임 질병 코드 도입에 대해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엔터테인먼트쪽의 눈높이와 괴리 현상이 있다는 것이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위기는 기회라고 한다. 게임계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늘 그랬다. 산이 높은 만큼 골짜기 또한 깊었다. 그런 측면에서 게임계가 이 상황을 피하려 하거나, 괜한 호들갑만 떨 게 아니라 자신들을 반추해 보는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 하겠다.

늘 제기되는 말이지만, 게임은 태생적으로 과몰입과 사행 그리고 폭력성에서 피해갈 수 없다. 어쩌면 WHO의 최근의 움직임은 시작에 불과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첫번째 방안은 업계의 자율적 규제다. 더욱 철두철미해져야 한다고 본다. 또한 제도권과 손을 잡고 함께 나간다는 마음을 놓치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그들이 게임계의 손을 들어주고, 공동의 보조를 취할 수 있다.

WHO의 게임 질병코드 등재 문제는 하나의 난제이지, 풀수 없는 미제의 과제는 아니라는 점을 게임계가 잊지 말았으면 한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덩이 처럼 야단법석을 떨 일이 아니라, 실타래의 매듭을 하나 하나씩 풀어 가는 게 이 시점에서 필요한 지혜라고 생각한다.

[더게임스 모인 뉴스 1 에디터/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inmo@thegames.co.kr]

저작권자 © 더게임스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