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부 출입기자 시절이었다. 영상음반과에 아주 시골 청년같은 젊은 사무관이 새로 부임해 왔다. 영상음반과는 당시 프로테이프라고 불리는 비디오와 음악, 게임 정책을 총괄하는 부서였다.

대중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분야라서 민원이 많은데다, 부서에 대한 좋지않은 소문으로 직원들 사이에선 영상음반과로 발령나면 물 먹은 것이라고 불렸다. 이 젊은 사무관은 그러나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대중문화에 조예도 깊고, 산업에 대한 남다른 애정도 보였다. 자신이 물먹어서 이 부서로 온 게 아니라는 걸 마치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만날때 마다 부지런함을 떨었다.

하지만 기자들이 필요로 하는 '꺼리' 될만한 것을 제공(?)하는데는 인색했다. 가뭄에 콩나듯, 그리고 다 아는 사실을 모아놓은 , 요즘으로 말하면 찌라시 수준의 자료만 공개했다. 그런 그와 가까워진 것은 아주 가벼운 일을 놓고 논쟁을 벌인 이후부터다.

기억이 흐물흐물한데, 아마도 외국 음반 직배사의 시장 점유율을 놓고 설전을 벌였던 것 같다. 확실한 건 그의 주장이 예상외로 신선하고 상큼하게 다가왔다는 것이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임병수 과장(후에 문화부 차관보를 지냄)은 "그럴 줄 알았어. ㅎㅎ 아주  똑똑하잖아? 우리 문화부 직원들의 지적 수준이 이 정도야.  그 뿐이야? 산업에 대한 식견이 대단하잖아" 하면서 그의 편을 들어줬다.

그 젊은 사무관은 다름아닌 6일 오전 중국 출장 중에 타계 소식을 알려온 김 재원 국립 한글박물관 관장(53)이다.

 경남 사천 출신으로, 명문 진주고를 나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자마자 행정고시(30회)에 합격한 그는 부처 내 문화산업 부서만을  족집게로 찝듯이 근무해 왔다. 그는 이후 콘텐츠 정책관, LA 문화원장, 해외문화 홍보원장, 문화미디어 진흥단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부처 내에서 외도라고 한 것은 체육관광정책실장을 지낸 것이 전부라고 할 정도로 그는 문화 산업정책 수립과 기반 육성에 매달렸다.

외유내강형이라고 불릴 만큼 늘 겸손하면서도 추진력을 보여준 그가 큰 꿈을 이뤄보지 못한채  타계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가슴이 먹먹해 져 왔다.

 아까운 인재를 잃었다는 생각이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더게임스 모인 뉴스1 에디터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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